
사진=이정우 선임기자
글을 쓰는 몸이 되어보자
그는 쓰는 사람이자 가르치는 사람이다. 20년 넘게 언어, 말, 글쓰기의 교육현장에 있다. 해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고 그들이 쓴 글을 보고 있다. 그가 교육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는 무엇일까. “요즘 학생들을 보면 이전 세대 학생들보다 자기 언어로 생각을 잘 표현해요. 무척 솔직해요. 기발하고 젊은이다운 위트가 언어에 녹아 있어요. 그런데 자신의 삶을 사회적 맥락과 연결해보는 걸 어려워해요. 자기가 대면하는 타자와의 공감대와 접점을 찾는 경험이 많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그는 ‘호모 비블로스’(기록하는 인간) 수업을 진행하며 타자와 나, 나와 사회를 만나는 시간을 학생들에게 마련해주려고 한다. 가족, 친구 등 누구든 한 사람을 정해 그에 관한 에세이를 쓰는 수업이다. “한 사람을 정해 A4용지 60장 정도 되는 에세이를 쓰고 그걸 책으로 묶어 내요. 출판 전 과정을 다 하는 수업이에요. 쉽진 않죠. 처음에 60명 정도 수강 신청했다면 다들 떨어져 나가 결국엔 20명 정도만 남아요.(웃음)” 그가 이 수업을 통해 바라는 것은 개인 고백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타인을 관찰해 르포르타주를 완성하는 것이다. “같이 알바하는 언니를 주인공으로 쓴다면 언니의 주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비정규직의 사회적 맥락을 짚어내는 거죠. 교내 청소노동자에 관해 쓴다면 전혀 다른 공간에 있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관찰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삶의 도약은 ‘이질성’을 경험할 때 생기는 거니까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두 가지를 강조한다. 간절함과 솔직함이다. “이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수 있다는 강한 간절함으로 써야 합니다. 쓰고자 하는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야 하고요.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나 고민된다면 내 이야기를 들어줄 타인을 가늠해보면 됩니다. 이걸 드러내면 타인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생각하는 거죠.”글의 틀이라는 정형을 내면화할 필요도 있다고 말한다. “외국에서 글을 처음 쓰는 이들에게 5단락 글쓰기라는 형식에 대해 말해요. 시작과 끝, 그리고 세 단락짜리 몸통을 쓰라고. 이렇게 쓰기 전에 나의 글쓰기 버릇, 예를 들어 글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어떤 문장 형태로 쓰는 걸 좋아하는지 등을 잘 알아둘 필요가 있어요. 그걸 잘 들여다보면 내가 생각하는 방식, 사유의 틀을 알게 돼요. 내 글의 장단점을 찾을 수 있어요.”그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하든 항상 ‘글을 쓰는 몸’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글을 쓰는 몸이란 이런 거예요. 책상에 앉아 글을 쓰지 않고 술을 마시거나 운동하든지 딴짓을 하더라도 머릿속 한편에는 계속 글에 대한 무의식이 흐르는 거예요. 그래야지 모든 행동이 결국엔 글로 수렴돼요.” 
5년 전 친구가 선물한 풍란 7개를 키우며 마음을 다스리고 글을 쓴다. 이정우 선임기자
글쓰기를 가르치며 느끼는 변화
글을 처음 쓰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이야기를 꺼냈다. “영화 <시>에서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사과를 들고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라고 하잖아요. 관찰의 시간이 필요해요. 처음에는 겉을 보고 그다음엔 속을 보고 그 대상의 주변을 보고 그 모든 게 연결되는 것을 보고요.” 무엇보다 내 경험을 쓰는 게 중요하다. 일단 써보는 것이다. “몸을 움직여야 걸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 학기 동안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글을 보면 그제야 개별자로서의 삶이 보인다. 글 속에 담긴 그들의 관계나 감정 등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학생도 있다. 글을 통해 처음 자기 정체성을 고백했던 학생이다. “10년 전 글쓰기 수업 때였어요. 한 학생이 처음으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글로 썼어요. 저에게 와서는 ‘선생님한테는 이야기해도 될 것 같아서 썼다’고. 그다음에는 글쓰기를 같이 한 조원들에게도 이야기했대요. 조원들이 용기 내 고백한 그를 지지해줬어요. 제가 처음 들은 고백이고 그 학생도 처음 한 고백인 만큼 그때 일이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그런 처음이 중요하죠. 솔직한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시작이 되니까요. ” 책 만들기 수업에서 가장 힘든 건 성적을 매기는 일이다. 상대평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적을 어렵게 매긴 뒤 항상 학생들에게 장문의 사과 메일을 보낸다고 한다. “제가 대학에 있으면서 가장 하고 싶은 게 상대평가를 없애는 거예요. 상대평가는 정말 반교육적이에요. 글쓰기 교육할 때 더욱더 그걸 느낍니다. 다른 사람의 글을 강평할 때 동료애를 갖고 봐줘야 하는데 이렇게 상대평가를 하면 그게 가능할까요. 다른 이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으려고 남의 글을 헐뜯기 바쁘죠.”성적으로 매길 수 없는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그는 “글을 읽다가 이 친구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글”이 있다고 한다. “글에 글쓴이가 녹아 있어, 마치 내게 가까이 와서 속삭이는 것” 같은 글, 그런 글을 읽으면 “내가 그 친구에게 다가가 말해주고 싶어진다”고 한다.그는 이어 요즘 좋아하는 책도 소개했다. 일본의 우치다 다쓰루가 쓴 〈스승은 있다〉. 선생이 학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책에서 ‘선생은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구절이 나와요. 선생이 학생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면 학생이 ‘왜 저런 이야기를 하지’라며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끝없는 수수께끼 같아야 한다고. 그걸 읽으며 선생의 태도와 자세를 고민했어요.” 그는 글을 쓰고 누군가 쓴 글을 보며 글을 쓰는 동력에 대해 생각한다. “몇몇을 빼고 사회구조 속에서 낱낱의 개인은 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어요. 실존적인 측면에서도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서 약한 존재고요. 약한 사람들은 세상살이를 하면서 무력감이나 억울함을 느껴요. 그걸 표출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많지 않아요. 그래도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어요. 나라는 약한 존재가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감각이 들 때 내가 역사의 현장에 있다고 느껴져요. 그 순간에는 언제 죽을지 모르고 회사에서 언제 떨어져 나갈지 모르는 실존적 연약함을 이겨내는 강한 동력이 생겨요. 그렇게 모든 인간이 약한 존재라는 걸 아는 사람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글을 쓰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지부진하지만 그래도 기어코
3시간여에 걸친 ‘장거리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의 책 <말끝이 당신이다>에 있는 문장을 빌려 물었다. 지금 마음속에 어떤 문장이 있는지. 그가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문장이 아닌 한 단어가 떠오르네요. 제가 좋아하는 단어예요. 지지부진!(웃음) 우리 삶은 보통 지지부진한 것 같아요. 지지부진하지만 그래도 기어코 가야 하는 거죠.” 걷고 또 걷는데도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삶. 멈춘 듯 보이지만 멈추지 않는 삶. 그는 삶의 길을 “주변을 보듬고 세상과 연대하는” 새로운 말과 언어를 찾으며 걸어가고 있다.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