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손바닥문학상 최종심이 열렸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왼쪽)과 김금희 소설가. 김민섭 작가(가운데 컴퓨터 화면 속)는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류우종 기자
산 사람은 죽은 이들을 딛고 일어선다
길에서 죽는 이들, 호주머니가 얇다 못해 투명한 이들, 쉽게 타인의 경멸을 받는 이들, 벌레나 곰팡이, 소주와 함께 뒹구는 이들은 오늘날 가장 귀한 글감이 돼준다. 그들이 자기 육체를 갈아넣어 번 돈으로 희망을 품는 일은 급강하할 위험성과 공존하기에 스릴감을 자아낸다. 근성 있게 임시직에 오래 머무는 이들 덕택에 현 사회구조는 더 단단해지고, 그런 만큼 우리는, 작가들은 성찰할 것이 더 많아진다. 육체노동자들의 힘든 삶을 이야깃거리로 삼은 작가들에게 이런 냉소로 반응할 독자도 있겠지만, ‘고라니들’ ‘화이불변’ ‘불안할 용기’는 소재와 주제를 착취하지 않고 어제 죽은 이들의 몸을 딛고 내일의 한 줄기 빛을 만들어내는 점에서 뛰어나다. ‘고라니들’은 되풀이해 읽을수록 더 좋다. 애도의 행위를 몇 초의 묵념으로 그치지 않고, 삶 속으로 끌고 들어와 자신을 변화시키도록 하는 이야기다. 산 사람은 죽은 이들을 딛고 일어선다는 것을 잘 드러낸 소설이다. 로드킬당한 동물들은 사람(혁과 사장)의 생을 바꿔놓는다, 동물을 쓰레기 취급하는 데서 동물 구호자로. 작가는 짧은 글 속에서 주인공이 형질전환을 일으키도록 성큼 발을 내디딘다. 아이러니의 기법도 돋보인다. 로드킬당한 사체를 수거하는 말단 노동자들은 간접살해의 증거를 수집하는 권위 있는 형사 같고, 도륙의 현장을 기록하는 역사의 산증인 같다.‘화이불변’은 ‘당신의 죽음이 나의 삶이 된다’는 명제를 선연히 드러내는 작품이다. 팬데믹 시대에 택배노동자와 음식배달 라이더들은 동종업계에 속해 있다. 두 바퀴는 네 바퀴보다 열등하지만, 라이더는 택배노동자처럼 돈을 꼬라박을 위험성도 없고 음식배달이 늘어 횡재하기도 한다. 라이더들에게 택배 트럭은 걸리적거리는 존재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배려하면서 상대의 목숨을 살린다. 소설 속에서 “(라이더) 진기를 향해 달려드는 트럭은 온통 흰 국화로 뒤덮여 있었”다. 이는 내 죽음으로 길을 낼 테니 당신은 살아가라는 메시지다. 중산층 그리고 소득 하위 50% 사람들이 서로의 창에 상대의 얼굴을 반사시켜 우리는 그리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인식하게 해준다. ‘불안할 용기’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그리는 젊은 작가의 꿈을 가장 명시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머리는 굴리지 않고 ‘몸’만 쓰는 육체노동자들은 사실 몸 자체가 지식의 장(場)이다. 그들은 자기 몸을 통해 자기 처지를 배워간다. 독자에게 오늘과 내일 사이에 놓인,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사회 조건을 되묻도록 자극하는 이 작품은 성찰적인 문장으로 설득력을 높인다. “무뚝뚝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엄마는 너무 뜨거워 돌이 된 것이겠지. 엄마의 언덕은 여전히 뜨겁다.” 이런 문장이 참 인상적이었다.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쉽게 위축되지 않는 ‘자기 입장’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잘 짠 구도나 문장, 서사로 판단할 때도 있지만 때로 그 글이 가진 생생함과 핍진성,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소중한 씨앗 같은 새로운 시선이 되는 경우도 있다. 내 입장에서 손바닥문학상은 후자가 기준이 됐다. 그런 점에서 ‘고라니들’은 기존 문학에서도 좀처럼 보지 못한 로드킬 처리 노동자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다뤄 좋았다. 그간의 로드킬이 도로 위의 운전자나 탑승객들이 ‘승차’한 채 맞는 어떤 비극과 공포를 그리는 소재로 다뤄졌다면, ‘고라니들’은 그 사건 이후 실제로 주검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옮겨지며 그 담당자는 어떤 심리적 과정을 겪으며 노동하는지를 다룬다. 그것이 단순한 물체가 아니기에 30분을 늦게 나서더라도 죽음의 목격을 피하고 싶은 노동자들, 서로 다른 입장에서 계속 반목하는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의 죽음을 계기로 오히려 화해에 이르는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화이불변’은 배달노동자의 삶을 다룬 글로, 현장의 분위기를 핍진성 있게 전달하는 매력이 있었다. 주문자가 건네는 지폐 단위를 유심히 바라보며 색깔로 판단하는 디테일이라든가, 편의점 앞에 모인 배달노동자들이 서로의 처지에 대해 오히려 정확히 아는 것을 꺼린다든가, 그것이 모두 이 노동이 가진 불안정성 때문이라든가 하는 부분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대면이 어려워진 팬데믹의 현장, 각자 더 고립된 채 어쩔 수 없이 적대와 불신의 농도를 높여나간 우리의 지난 2년이 잘 그려졌다는 판단이 들었다. ‘불안할 용기’는 프랜차이즈 드라이브스루 매장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자신이 처한 노동조건과 팬데믹이라는 사회적 변화를 잘 교차해 젊은 세대의 세태감각을 보여준 글이다. 자본주의가 완숙한 시점에 사는 우리에게 노동은 사실 아주 까다로운 주제다. 일하면서 돈을 버는 행위에 대해 말한다는 건 사실상 우리 삶의 총체에 대해 비평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익숙한 틀을 가져와 이야기하기 쉬운데 이 글은 전혀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 여기에는 자신의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프로세스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있고, “바이러스가 퍼져도 우리는 햄버거를 먹고, 기후위기가 닥쳐도 우리는 햄버거를 만”든다는 각성과 통찰이 있고 근성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삶을 사는 방식일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쉽게 위축되지도 타협되지도 않을 ‘자기 입장’이 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자신의 노동자적 입지를 감각하면서도, 생활의 주체가 ‘나’라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고 말하는 응모자에게 나는 여러 번 배우는 마음이 됐고 최종적으로는 이 글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됐다.김금희 소설가일상을 버틴 사람의 언어들
모든 일하는 사람과 일상을 버티어내는 사람의 몸에는 차곡차곡 언어가 쌓인다. 일과 일상은 서로 연동하면서 한 사람의 삶을 만들어낸다. 그것을 발견하고 옮겨적은 한 개인의 글에는 힘이 있다.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지평을 넓혀주는, 그런 글이 된다. 이번 손바닥문학상에 제출된 작품 중에는 일을 통해 일상을 사유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된 개인들의 서사가 많았다.‘고라니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타인의 노동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로드킬당한 동물의 사체를 수습하는 그들이 왜 신고가 들어오면 30분 이후에 출발하는지, 그들이 어떻게 사체를 수습하는지, 그러면서 어떤 감정이 되는지 알려준다. 그 발견하고, 담고, 화장하는, 정해진 매뉴얼에서도 인간의 사유는 끊임없이 개입한다. 그 어느 노동에서든 죽음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우유 같은 것’을 주면 되나, 하는 생명의 언어를 길어올리는 일이 가능하다. 죽음이라는 어둠을 다루지만 그 반대편의 세계로 문득 나아가는 주인공을 통해 그 이상의 희망을 전하는 작품이다.‘화이불변’은 배달대행 노동을 다룬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이후 배달대행 노동은 익숙하고 흔한 것이 됐다. 우리는 거기에서 ‘힘듦’과 ‘거침’을 함께 읽어낸다. 열악하고 고된 노동에서, 이제는 ‘딸배’라고 희화화할 만큼 부정적인 면을 더 떠올리게도 됐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른 편에서 발견한 우리 모습이 담겨 있다. 그를 세워두고 내기 당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무심히 말하는, 외부인은 승강기를 이용할 수 없으니 계단으로 올라가라고 다그치는, 엄마 말 안 들으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며 아이를 바라보는,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는 우리들이. 음식 빼먹기가 그런 유치한 모멸감에 대한 유치한 보복이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저 아프고 미안할 뿐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닮은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한발 내디디며 유치하지 않은 세계로 나아간다. ‘불안할 용기’의 주인공은 패스트푸드점의 드라이브스루 파트에서 일하는 파트타임 노동자다. 자신의 노동이 아니라면 감각할 수 없었을 여러 상황과 감정이 애틋하다. 그들은 단순히 헤드셋으로 주문만 받는 것이 아니다. 냉동감자를 기름에 담고 빼고, 얼음이 떨어지면 채우고, 컵과 트레이를 ‘와시’하고(씻고), 쓰레기봉투도 묶어낸다. 이것은 그의 일은 아니지만 손과 발이 쉴 틈 없는 동료들을 돕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이처럼 모든 노동은 서로에 대한 선의의 개입으로 오늘도 유지된다. 노동이 매뉴얼로만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일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법이다. 그는 매니저실의 문을 열고 할 말이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용기를 낸다. 그러나 어디에서든, 타인에 대한 선의의 마음들이 결국 그의 어떤 일도 일상도 버티게 만들어낼 것이다.김민섭 작가
쓰러진 것의 존귀함

쿨해지고 싶어서
오늘보다 나을 내일의 나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