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홈페이지 갈무리
김어준의 반응은 수세적이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4월16일과 17일 드루킹의 ‘경공모’ 회원들을 인터뷰해, “‘경공모’가 사이비 혹은 다단계와 비슷했으며, 김경수 의원이 운 없게 연루된 것 같고, 대선 때는 글을 퍼날랐을 뿐, 매크로는 없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사건이 선거법 위반과 부정선거로 확대되는 것을 막고, 드루킹의 망상적 면모를 부각하여 ‘개인적 일탈’로 봉합하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평소 김어준이라면, 3월21일 검거된 드루킹이 4월13일 언론에 공개되기까지 경찰은 왜 침묵했는지, 왜 김경수 의원과 관련된 내용은 제외한 채 검찰로 송치했는지, 지난 대선 직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드루킹 관련 제보를 받아 검찰에 수사 의뢰했으나 대선 후 무혐의 처리된 것과는 관련이 없는지에 ‘합리적 의심’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어준은 송기헌 의원 인터뷰를 통해, 대선 직후 더불어민주당의 드루킹 고발 취하 요청을 둘러싼 의혹을 에둘러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바닥 드러낸 성의식 김어준이 진영 논리에 따라 ‘쉴드 방송’을 한다는 논란은 이뿐이 아니다. 사퇴 압력을 받던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시켜 삼성증권 사태에 대해 인터뷰한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기식에게 해명 기회를 주고 김기식과 삼성의 대결 구도를 부각하여, ‘재벌 개혁을 위해 김기식을 지키자’는 프레임을 만들려는 의도가 확연했기 때문이다. 김기식은 선관위의 ‘위법’ 판정으로 결국 낙마했다. 최악의 편파성은 정봉주 ‘쉴드’ 방송에 있었다. 3월22일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김어준은 “정봉주와 특수관계인이라 발언이 조심스럽지만, 사실관계만 확인하겠다”며 특정 시간대 정봉주의 사진 780장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정봉주 주장과도 충돌하는 점이 있었지만, 마치 정봉주의 결백을 입증하는 증거인 양 제시되었다. 하지만 성추행은 그보다 늦은 시간에 일어났고, 결정적 증거가 발견되어 진실공방은 끝났다. 제작진은 사과했고, SBS 노사는 공정성에 문제가 있었음에 합의했다. 김어준이 친분 있는 정봉주를 옹호하기 위해 지상파 방송을 이용해 피해자를 ‘꽃뱀’으로 모는 2차 가해를 저질렀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김어준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얼마 전 ‘미투 공작 발언’과 함께, 성폭력에 대한 김어준의 사고를 드러낸다.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의 성추행을 폭로했을 때 김어준은 응원했다. 하지만 이윤택 등으로 불이 옮겨붙자 ‘미투 운동’이 진보 진영을 공격하는 공작에 활용될 거라는 예언을 내놓았다. 피해자들을 위축시키고 2차 가해를 불러올 수 있는 몹쓸 발언이었지만, 김용민·손혜원 등은 이를 두둔했다. 그러곤 곧 예언이 실현되었다. 안희정·정봉주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면서 진영과 공작의 관점으로 성폭행을 보는 것이 어떤 해악을 초래하는지, 김어준과 지지자들은 몸소 입증해 보였다. ‘비키니-코피 사건’부터 <나꼼수> 멤버들의 성의식은 바닥을 보였다. 여성을 정치적 동지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삼는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김어준은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들도 성에 대해 주체적이어야 한다느니, 엄숙주의를 깨야 한다느니 하는 ‘맨스플레인’을 펼쳤다. 성평등의 관점을 결여한 채 성적 자유만 진보로 여기는 남성 리버럴리스트의 한계를 드러낸 반응이었다. 사건이 있기 전 김용민은 “여성들이 <나꼼수>를 통해 정치에 눈뜨기 시작했다”고 발언했다. 여성을 정치적 각성의 주체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는 도구나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고는 여전하다. ‘미투 공작 발언’이나 강유미의 포지션이 이를 말해준다. 불평등한 젠더 구도 강유미는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하는 이)으로 설정됐다. 김어준과 SBS 기자의 설명을 들으며 초보적인 리액션을 하는 강유미는 일반 시청자의 눈높이를 대변하지만, 여기엔 젠더 구도가 깔려 있다. 강유미가 ‘무식하니까 용감한’ 포지션을 활용해 무모한 인터뷰를 감행하는 것은 때로 통쾌하지만, 그의 활약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는 김어준의 표정에 의해 불평등한 젠더 구도로 수렴된다. 2006년 <개그콘서트>의 ‘고고 예술 속으로’에서 황우석 사태를 기막히게 풍자했던 강유미가 당시 <딴지일보> 발행인으로 황우석을 옹호했던 김어준에게 ‘정알못’ 취급을 받는 젠더 구도야말로 아이러니의 극치가 아닐까. 김어준은 정치적으로나 성정치적으로나 점점 반동이 되어가지만, 이를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팬덤에 둘러싸인 채, 여전히 거악과 싸운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시대의 근심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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