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리턴>에서 살인사건 피의자의 변호사역을 맡은 배우 고현정. 네이버TV 리턴 채널 갈무리
고상한 아내, 천박한 정부 이들이 강인호의 집에 모여 우아하게 식사하는 장면은 역겨움의 정점을 찍는다. 화장실에서 오태석의 아내와 키스한 김학범이 립스틱 묻은 얼굴로 식탁에 앉자, 오태석은 다 아는 표정으로 “완벽하게 시치미를 떼는 내 아내를 본받으라”며 일갈한다. 오태석은 강인호의 집으로 염미정을 불러들여, 강인호의 아내 앞에서 모르는 사이인 양 연기를 해대는 두 사람을 보고 비릿한 웃음을 짓는다. 이런 변태적인 악취미로 가득한 인간들 사이에서 강인호의 아내 금나라(정은채)는 고결한 백합처럼 보인다. 금나라는 학부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대형 로펌에서 일한 경력까지 있지만, 결혼 뒤 전업주부로 살아간다. 그는 이것이 도태가 아닌 선택이었다고 믿는다. 강인호와 결혼한 이유도 ‘재벌 2세’이기 때문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어서’였다고 힘주어 말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강인호는 펜트하우스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호텔에서 염미정과 뒹굴면서도 아내 앞에서는 다정한 남편인 양 굴었다. 사실 거짓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아내와 가정을 사랑한다고 진심으로 믿으며, 염미정에게는 “아무 때나 내 욕구를 풀 수 있는 변기”라고 말한다. 그는 아내와 정부를 철저히 구분하기에, 정부를 둔 채 다정한 남편으로 사는 것은 모순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여기서 문제는 위선이 아니라, 여성을 ‘고상한 아내’와 ‘천박한 정부’로 나누는 이분법 자체다. 타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소중한 내 친구’와 ‘함부로 대해도 되는 타인’을 철저히 구분한다. 하지만 타자에 대한 폭력적 태도가 곧 그들 내부로 스민다. 염미정의 주검이 방아쇠가 되어 부유층 4인방의 우애가 파열되기 시작한다. 염미정의 주검을 발견한 그들은 자신이 당할 사소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주검을 암매장한다. 속옷 차림의 여자들을 도박 칩처럼 사용하던 이들에게 염미정 역시 가지고 놀 만한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강인호가 살인 누명을 쓴 상황에서도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친구의 살인 누명보다 자신들이 겪을 불이익이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타자를 자신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는 이들의 사고가 친구관계 안으로 스미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셋 중 가장 섬약한 서준희가 자수하겠다고 말하자, 김학범과 오태석은 그를 납치해 절벽 아래로 밀어버린다. 이것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다. 서준희와 다투던 김학범이 서준희의 머리를 내려친 것은 우발적이었지만, 그가 살아 있는 것을 알면서도 사고사로 위장하려 한 오태석의 행위는 고의였다. 이들은 죽은 염미정을 물건처럼 대했듯이, 살아 있는 서준희도 물건처럼 대했다. 친구를 죽여서라도 진실을 덮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준희의 주검이 바뀜으로써 이들은 더 큰 혼란과 자중지란에 빠져든다. 이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지옥’에 빠져 자멸 과정을 밟는 것은, 타자를 도구로 사고하는 윤리적 파탄이 미끄러운 경사면을 타고 도달하는 필연적인 결과다. 차별만큼 비겁한 역차별 최자혜는 성추행과 접대에 찌든 남성 변호사를 내보내고, 금나라를 새 파트너로 영입한다. “강인호를 무죄 방면시킬 전관 출신 변호사들은 많지만” 두 여성이 의기투합하는 이유는 남성 권력자들이 벌인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다. 9년 전 사건으로 부유층 4인방의 악행을 접했던 독고영(이진욱) 형사가 정의감으로 덤벼든다. 하지만 최자혜는 “그동안 법이 돈과 권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약했다는 것 인정해요. 하지만 차별만큼이나 역차별도 비겁해요”란 말로 타이른다. 안하무인의 특권층을 공분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으로 먼저 진실을 규명하고 공정한 법 적용으로 합당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원칙의 확인이다. 이는 적폐 청산을 위해 우리 사회가 견지해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공분에 들끓다 지레 지치지 말고, 법과 원칙을 지키며 끝까지 가야 한다. 질긴 자가 이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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