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에서 최민수는 중동 갑부가 된 중년 남자를 그린다. 드라마는 아랍 세계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을 강화한다. MBC <죽어야 사는 남자> 현장포토
문화 다양성이 부족한 한국의 이중 잣대 드라마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한국인의 편견을 강화한다. 이것은 실질적인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낳는다. 지금 한국에는 무슬림 이주민이 존재하며, 한국의 문화콘텐츠는 전세계 무슬림과 직접 만난다. 중동 및 이슬람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 1970년대 오일머니와 만수르의 표상 사이에 놓일 때, “중동으로 돈 벌러 가자”는 박근혜의 말은 가능해도 그곳에서 온 이주민이나 그곳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살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결과 무슬림 노동자에게 삼겹살에 소주를 회식으로 강요하는 사장님이나, 케이팝을 즐기는 히잡 쓴 소녀들에게 스킨십을 시도하는 가수가 등장한다. 한류가 수출되는 것엔 으쓱해하지만, 이를 볼 수용자들의 문화에는 무관심하다. 드라마 속 장달구는 공항에서 환영받는 아이돌을 보고 “기능올림픽 수상자들이냐?”고 묻는다. 자신이 떠나온 ‘1970년대 한국’에 사고가 고착됐음을 보여준 장면이지만, 드라마의 인식도 여기서 멀지 않다. 얼마 전 SNS에서 타 문화의 존중 없는 콘텐츠로 논란이 된 예가 또 있었다. 이효리의 신곡 <화이트 스네이크>에는 ‘가야트리 만트라’가 삽입돼 있다. 가야트리 만트라는 힌두교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경구로, 힌두인들이 매일 새벽 암송한다. 명상음악 형태로 암송되기는 했어도, 대중음악에 삽입된 예는 극히 드물다. <화이트 스네이크>를 접한 남아시아인들이 무례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물론 이효리가 인도 문화의 존중 없이 사용했다고 말하긴 힘들다. 이효리는 2011년 인도에 봉사활동을 간 이후, 렌틸콩을 알리고 요가를 수련하는 등 인도 문화에 친연성을 보였다. 2015년에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마힌드라그룹 회장에게 자신의 요가 사진과 함께 “부디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당신의 나라 인도의 사랑을 주세요. 나마스떼”란 트윗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효리가 얼마나 인도 문화를 사랑하는지는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2009년 인도인 교수 인종차별 사건에서 보듯이, 한국에서 남아시아인들은 차별당하고 있다. 힌두교에 대해서는 주요 종교라는 인식도 없다. 이 상황에서 힌두교의 가장 상징적인 경구를 노래에 삽입하고 인도풍 의상과 요가 동작을 활용한 춤사위로 관능적인 무대를 펼치는 것을 두고, 단지 문화 다양성이 부족한 한국에서 인도 문화의 대중 접점을 높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예컨대 한국에 온 이주민이 새벽마다 만트라를 암송하는 것은 미개한 짓으로 간주되지만, 이효리 무대에 녹아 있는 인도 문화는 신비하고 힙한 것으로 소비된다면 이는 타 문화를 이중 모독하는 행위 아닐까. 차별과 혐오에 대한 낮은 인식 지난 4월에는 예능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홍현희가 흑인 분장에 미개인 복장을 하고 나온 것이 외신에 알려져 공분을 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1980년대 ‘시커먼스’도 흑인 비하냐?”는 황당한 두둔 발언이 나오는 등 차별과 혐오에 대한 낮은 인식을 드러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문화를 돈 벌어주는 수출상품으로 볼 뿐, 세계인과 소통하는 장으로 보는 인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악의가 없더라도, 헬조선의 궁핍함을 드러내기 위한 자조 섞인 차용이거나, 문화적 변방에서 문화 교류에 앞장서려는 선의가 있더라도, 타 문화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진정한 글로벌리즘은 아직 멀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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