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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쾌락의 흔적을 화폭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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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1-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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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철학카페 11|욕망의 파노라마(I)-춘화(春畵)의 세계

육체적 성애로 풀어낸 대중의 일상성… 뜬구름 같은 세상살이에서 벗어날 수 있나

사진/ 무사, 승려, 도부상, 서민 아녀자, 기녀와 그들의 하녀들, 배우들과 그들의 팬 등 에도와 오사카의 거리에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였다.
‘근대성’에 관한 많은 규정이 있다. 역사를 이루는 갈래는 무수하며, 각 갈래마다 근대성의 문턱에 대한 이해는 다르다. 인식론적 맥락에서는 ‘선험적 주체의 탄생’을, 경제학적 맥락에서는 ‘산업자본주의의 탄생’을, 정치학적 맥락에서는 ‘근대 민주주의의 탄생’을, 지리학적 맥락에서는 ‘지리상의 발견’을, 물리학적 맥락에서는 ‘가속도 법칙의 발견’ 등등, 무수히 많은 종류의 근대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각 갈래의 문턱은 매우 상이하며 그 편차는 몇백년이 될 수도 있다(물리학적 근대성은 17세기에 배정되지만, 근대 민주주의는 19세기가 되어서야 본격화된다). 또 반드시 한번의 문턱만이 근대성을 알리는 것도 아니다(민주주의의 탄생은 여러 단계를 거쳐서 형성되었다). 근대성 및 탈근대성을 둘러싼 논의들이 그토록 혼란스러운 것은 논의의 맥락을, 즉 역사에서의 갈래들과 문턱들을 분명히 하지 않아서이다.

대중의 탄생으로 근대사회로 이행


만일 우리가 근대성 논의에서 정치, 경제, 문학, 물리학 등등 사회의 한 측면에 주목하기보다 사회 전체에 주목할 경우, 다른 규정들보다 상대적으로 일반적인 한 규정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드러나는 근대성의 문턱은 바로 ‘대중의 탄생’이다. 민중, 인민, 군중 등등과 뉘앙스를 달리하는 ‘대중’이라는 존재의 탄생. 근대사회란 곧 대중의 탄생이다.

그러나 그 전에는 대중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대중이라는 개념을 일상성을 통해서 규정한다면, 대중이란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했다. 대중이란 동서고금을 초월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살아가는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다. 먹고살기 위해서 버둥대고, 육욕과 더불어 살아가며, 싸우고 화해하고 울고 웃으며, 성장하고 결혼하고 직장을 가지며…, ‘세상’을 가장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측면에서 바라본 인간, 그것이 대중이다. 따라서 근대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탄생한 것은 엄밀히 말해 대중이 아니라 대중문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근대사회에서 문화란 소수의 점유물이었으며, 대중문화란 ‘문화’로서 존재하지 못하는 대중의 웅얼거림과 몸짓들로 존재했다. 근대성의 탄생은 곧 대중문화가 사회의 전면에 드러나면서 삶의 구석구석을 지배하게 된 것을 뜻한다.

대중의 가장 일상적인 관심사는 아마도 세 가지일 것이다. 돈, 권력, 쾌락. 먹고사는 것, 타인보다 더 인정받는 자리에 앉는 것, 그리고 섹스, 스포츠, 도박 등등의 신체적 쾌락. 흔히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드가 현대 사상의 지도리를 연 인물들로 평가받는다면, 아마도 그것은 이들이 인간을 그 가장 원초적인 삶의 모습, 즉 대중의 모습에서 포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플라톤의 시대에도 대중은 존재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의 대중문화는 근대사회의 소산이며, 또 대중문화가 현대사회를 만든 것이다.

‘풍속화’라는 개념의 규정은 일정치 않지만, 우리는 풍속화를 “대중의 일상성을 표현한 그림”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풍속화가 꼭 근대의 산물은 아니다. 대중의 일상성을 표현한 그림은 늘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문화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고,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대중이 형성된 것은 역시 근대에 이르러서이므로(각 문화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18세기에 이르러 현대적 의미에서의 대중성이 도래했다고 할 수 있다), 풍속화의 본격적인 발전 또한 근대사회가 도래하면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허무와 쾌락은 대중문화의 철학

사진/ 가장 유명한 우키요에중 하나인 이 춘화의 부채 위에는 기타가와의 이름이 쓰여 있다. 보는 이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연인은 넋을 잃고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대중문화의 영원한 철학은 허무주의와 쾌락주의이다. “인생은 뜬구름 같은 것이다. 먹고 마시고 놀자.” 유행가는 끊임없이 이 양대 주제를 노래한다. 고독하고 불안한 인생,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세상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쾌락 중에서 사랑- 좁은 의미의 남녀간의 사랑, 더 좁혀 말해 육체적 성애(性愛)가 동반되는 사랑- 보다 더 큰 쾌락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 대중문화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타령’과 센티멘털리즘(感傷主義)이 등장하게 된다.

대중문화의 이런 이상을 충족시켜주는 곳, 술과 고기가 있고, 남자와 여자가 있고, 노래와 춤이 있는 곳, 그곳은 바로 ‘극장’이다. ‘물랭루주’의 꿈. 극장이 있는 곳에 스타가 있다. 때문에 대중문화는 언제나 ‘스타’를 중심으로, 특히 여자 스타(美人)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때문에 근대적인 대중문화의 탄생은 또한 연예계의 탄생이기도 하다. 이전의 ‘예술’과는 개념을 달리하는 ‘연예’의 탄생. 그래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대중문화는 연예인들을 둘러싸고 형성되었다. 연예인들은 돈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연예계는 또한 자본주의와 떼어서는 존립하지 못한다. 대중문화, 연예계, 자본주의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전통사회에서의 ‘문화’란 궁정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도 그렇거니와 헤이안(平安)시대(9세기 말∼12세기 말), 가마쿠라(鎌倉)시대(12세기 말∼14세기 중엽), 무로마치(室町)시대(14세기 말∼17세기 초)를 거치면서 전개된 일본 고유의 문화도 한편으로는 궁정을 중심으로 한 사치스러운 문화를, 다른 한편으로는 불교계를 중심으로 한 형이상학적 문화를 두축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에도(江戶)시대(1615∼1868)에 들어와서, 특히 중기 이후 이제 궁정문화와도 불교문화와도 판이하게 다른 새로운 문화가 등장한다. 말 그대로 강호(江湖)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궁정과 사찰에서만 이루어지던 문화는 이제 ‘거리’로 내려오게 된다. 이 거리는 물론 ‘도시’이다(시골을 대상으로 하면 이야기는 또 다르다). 근대성의 탄생은 또한 근대적 도시의 탄생이기도 하다.

고독한 인생을 빛내주는 섬광

사진/ 판화 <불을 피우고 있는 두 여인>. 우키요에의 대가인 기타가와 우타마로는 '조닌'이라 불리는 도시 서민의 일상 생활을 묘사하는 작품을 제작했다.
서구와의 무역이 늘어나면서 이제 지위는 낮지만 돈을 축적한 새로운 계층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는 서민에 불과했지만 으리으리한 저택을 비롯해 다양한 부의 과시를 통해서 점차 사회적 역량을 축적해갔다. 호상(豪商)들은 막대한 돈을 투자해 궁정문화와도 불교문화와도 다른 새로운 대중문화를 만들어갔다. 마치 오늘날의 재벌들이 스포츠와 연예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듯이. 이렇게 형성된 문화는 이제 도시의 풍경을 바꾸었으며 조닌(町人)들, 즉 도시 서민들의 문화를 지배했다. 궁정 연극인 노(能)와 대비되는 새로운 형태의 연극인 가부키(歌舞伎), 화려한 유곽들과 극장들, 재능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미인들(遊女), 거리를 북적대는 조닌들, 아름다운 유녀들을 찾아 꾸역꾸역 몰려드는 호상들, 문인들, 출판업자들(당대는 출판업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시대이기도 하다), 연예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당연히 화가들도 끼어 있었다. 뜬구름과도 같은 인생, 그 인생을 섬광처럼 빛내주는 쾌락의 밤들, 에도, 오사카, 교토 등의 밤이 깊어갈 때 화가들의 화폭도 채워져갔다. 우키요에(浮世畵)가 탄생한 것이다.

철학아카데미 원장 elandamour@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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