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사고에 바탕한 실천 내세운 유위론… 손과 발이 따르지 않는 철학은 공염불
어떤 사상이든 이론의 정교함이나 논리의 정합성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없다. 어떤 사상이든 그 사상가가 처한 상황과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투한 결과가 응집된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춘추전국시기 즈음에 오면, 당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상은 크게 두 가지 계열로 나누어보는 게 가능할 듯하다. 하나는 ‘유위(有爲)의 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무위(無爲)의 철학’이다. 당대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이 무언가 적극적인 실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상 경향을 ‘유위의 철학’이라 부르자. 유가, 묵가, 법가가 여기 속한다. 이에 반해 인간의 인위적 행동과 욕망이 사회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므로 인간이 어떤 작위를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주장을 편 사상 또한 있었다. 이를 우리는 ‘무위의 철학’이라 부를 것이다. 도가가 대표적이다. ‘무위’를 주장했다고 해서 사회문제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오로지 개인의 안일과 평안만을 추구했다고 보는 건 선입견이다. 중국 고대 사상, 중국 고대 사회과학의 주요한 특징은 유위의 논리, 유위의 사회과학만 존재했던 게 아니라 ‘무위의 논리’, 무위의 사회과학도 함께 등장했다는 데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무위의 사회과학은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반성을 포함하고 있다. 19세기 이후 유럽에서 발전해나온 근대 사회과학에는 이런 반성이 빠져 있다. 인간 행위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이 결여된 채 ‘유위의 논리’로만 사회과학을 구성할 경우, 사회공학적 사고에 대한 적절한 견제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현실 사회주의는 그런 좋은 사례의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인간의 실천
지금의 주제와는 벗어나는 이야기이지만, 고대 중국에서 유위론과 무위론의 논쟁은 전국시기를 거치면서 하나의 유기적인 사상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겪는다. 가령 노장사상 계열에 속하는 황로학파의 경우 “임금은 무위하고 신하는 유위한다”(君上無爲, 臣下有爲.)는 이론을 내놓기에 이른다. 묵가사상은 유가와 더불어 인간의 적극적 실천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 유위의 사회과학, 유위의 철학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묵자는 실천을 매우 중시했다. 묵자의 사상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인간의 실천이다.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말이라면 귀하게 여기고, 실천에 옮길 수 없는 말이라면 천하게 여기라. 실천에 옮길 수 없는 말인데도 그걸 귀하게 여기는 건 공리공담을 즐기는 짓이다.”(言足以遷行者常之, 不足以遷行者勿常. 不足以遷行而常之, 是蕩口也. <貴義>) 마오쩌둥의 <실천론>을 연상시킬 만큼 묵자는 실천을 강조하고 중시했다. 실천할 수 없는 이론이나 사상을 입에 올려선 안 된다. 사회문제에 대한 대안을 사고할 때 그게 실천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부터 먼저 사고해야 한다. 올바른 노선이라고 받아들여진 길은 또한 반드시 실천에 옮겨져야 한다. 묵자는 말한다. “정치란 것은 입으로 말한 것을 몸이 반드시 실행하는 것이다.”(政者, 口言之, 身必行之. <公孟>) 공자는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政者, 正也.)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묵자 또한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엇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로만 해서는 안 되고 실제로 그것을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묵자가 보기에 무엇이 올바른지 알면서 이를 실천에 옮기지 않는 것도 죄악이다. “입으로는 올바름에 대해 말하면서 이를 실천하지 않는 것은, 잘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죄를 범하는 짓(犯明)이다.”(言義而弗行, 是犯明也. <魯問>) 올바름을 실천에 온전히 옮기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쉽사리 자기 생각을 굽히거나 타협해서는 안 된다. 묵자는 말한다. “올바름을 행하다가 불가능한 게 있다 하더라도 그 올바른 길을 어겨서는 결코 안 된다. 비유를 들자면 마치 목수가 나무를 깎다가 잘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먹줄을 어기지 못하는 것과 같다.”(爲義而不能, 必無排其道. 譬若匠人之 而不能, 無排其繩. <貴義>) 나무에 먹줄을 긋고 반듯하게 깎아나가다 보면 옹이를 만나 깎기가 힘든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듯하게 깎아야 할 재목을 옹이를 피해 울퉁불퉁하게 깎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얘기다. 불의에 맞서기 위해 정의의 전쟁 준비 묵자에게는 ‘10대 강령’이라고 할 수 있는 열 가지 주장이 있다. (묵자의 10대 강령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보기로 한다.) 그는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온몸을 다 던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령 그의 10대 강령 가운데 “침략전쟁에 반대한다”(非攻)는 주장이 있었다. 그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침략당한 나라의 성을 찾아다니며 방어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이미 앞에서 살펴봤지만, 초나라가 공수반이라는 당대 최고의 기술자에게 운제(雲梯)라는 공격무기를 개발하도록 해 송나라를 공격하려 할 때, 묵자는 침략전쟁이 벌어지기 전 초나라 왕을 만나 침략전쟁을 중지할 것을 설득하고, 최종적으로 공수반을 만나 성의 모형을 만든 뒤 자신이 개발한 방어무기를 통해 공수반의 공격무기를 얼마든지 다 막아낼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전쟁 도발 계획을 중단시켰다. 그는 또 노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제나라의 태왕과 그의 장수 항자우를 만나 침략전쟁을 중단하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특히 항자우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제자 승작을 그의 수하에 들어가도록 해 침략전쟁을 막으려 하기도 했다. (동서횡단 38 참조) 묵자의 전쟁관은 소련의 전쟁관과 매우 닮았다. 소련은 전쟁에는 크게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이 있다고 보았다. 모든 침략전쟁은 불의의 전쟁에 속한다. 그러나 침략전쟁에 맞서 싸우는 민족해방투쟁, 파시즘에 반대하기 위한 연합국의 전쟁 등은 정의의 전쟁에 속한다. 묵자도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이 있다고 보았다. 모든 침략전쟁은 불의의 전쟁이지만, 이 침략전쟁을 막기 위한 방어전쟁은 정의의 전쟁이다. 묵자는 방어전쟁이라는 의로운 길을 실천하기 위해 방어전술과 방어무기를 크게 발전시켰다. 오늘날 남아 있는 묵자 53편 가운데 <공수>(公輸), <비성문>(備城門), <비고임>(備高臨), <비제>(備梯), <비수>(備水), <비돌>(備突), <비혈>(備穴), <비아부>(備蛾傅), <영적사>(迎敵祠), <기치>(旗幟), <호령>(號令), <잡수>(雜守) 등 13편은 방어기술과 방어전술, 방어무기에 관한 내용들이다. <비성문>은 성채 공방전술을, <비고임>은 적이 흙을 높이 쌓아 성채를 공격할 때의 방어전술을, <비제>는 운제를 이용한 성채 공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비수>는 적의 물 공격(水攻)에 대비하는 전술을, <비돌>은 성의 돌문을 통한 침입에 방비하는 방법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묵가 집단의 성채 방어전술은 매우 뛰어났다. 그래서 ‘묵수’(墨守)란 말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묵자는 이처럼 “정수리에서 무릎까지 다 닳아 없어지더라도 세상에 이롭다면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摩頂放踵利天下, 爲之. <孟子·盡心> 上-26) 삶을 살았다. 묵자는 올바르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은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어떤 사상이나 주장이 올바르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당대 최고의 과학기술자답게 묵자는 자신의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생각을 펴나간다. “컴퍼스에 들어맞는 것을 동그라미라고 하고, 컴퍼스에 들어맞지 않는 것을 동그라미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동그라미와 동그라미가 아닌 것은 모두 정확히 알 수 있다.”(中吾規者, 謂之 , 不中吾規者, 謂之不 . 是以 與不 , 皆可得而知也. <天志> 中) ‘컴퍼스’라는 기준이 있다면, 어떤 원형의 물체나 그림이 정원인지 찌그러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또 먹줄이 있으면 선이 반듯한지 휘었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묵자는 노동의 경험에서 자연히 어떤 법도, 표준, 기준이 반드시 필요함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정확한 작업을 위해 필수적인 컴퍼스와 먹줄에 해당하는 어떤 표준이 사상, 이론, 사회과학에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이론과 올바르지 않은 이론, 실천 가능한 이론과 실천할 수 없는 공리공담을 구분해낼 수 있다. 이론과 사상을 검증하는 세 가지 표준 묵자는 이론과 사상을 판단하고 검증하는 기준을 세 가지 제시하고, 이를 ‘삼표’(三表)라 불렀다. “말에는 세 가지 표준이 있다. 무엇을 세 가지 표준이라 하는가. 바탕으로 삼은 것, 근원으로 삼은 것, 그리고 실용성 이 세 가지를 말한다. 어디에 바탕할 것인가. 위로는 옛 성왕의 일을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어디에 근원을 둘 것인가. 아래로 백성들의 귀와 눈의 실제 상황을 살펴야 한다. 어떤 실용성을 가져야 하는가. 정치와 사법제도에 적용해서 국가와 인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을 일러 말에 세 가지 표준이 있다고 한다.”(<非命> 上) 첫 번째 표준은 인류의 간접경험, 두 번째 표준은 인민의 직접경험, 세 번째 표준은 실천 가능성을 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묵자는 자신의 ‘10대 강령’을 이상의 세 가지 표준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추구해 들어갔다. xuande@hanmail.net

지금의 주제와는 벗어나는 이야기이지만, 고대 중국에서 유위론과 무위론의 논쟁은 전국시기를 거치면서 하나의 유기적인 사상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겪는다. 가령 노장사상 계열에 속하는 황로학파의 경우 “임금은 무위하고 신하는 유위한다”(君上無爲, 臣下有爲.)는 이론을 내놓기에 이른다. 묵가사상은 유가와 더불어 인간의 적극적 실천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 유위의 사회과학, 유위의 철학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묵자는 실천을 매우 중시했다. 묵자의 사상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인간의 실천이다.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말이라면 귀하게 여기고, 실천에 옮길 수 없는 말이라면 천하게 여기라. 실천에 옮길 수 없는 말인데도 그걸 귀하게 여기는 건 공리공담을 즐기는 짓이다.”(言足以遷行者常之, 不足以遷行者勿常. 不足以遷行而常之, 是蕩口也. <貴義>) 마오쩌둥의 <실천론>을 연상시킬 만큼 묵자는 실천을 강조하고 중시했다. 실천할 수 없는 이론이나 사상을 입에 올려선 안 된다. 사회문제에 대한 대안을 사고할 때 그게 실천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부터 먼저 사고해야 한다. 올바른 노선이라고 받아들여진 길은 또한 반드시 실천에 옮겨져야 한다. 묵자는 말한다. “정치란 것은 입으로 말한 것을 몸이 반드시 실행하는 것이다.”(政者, 口言之, 身必行之. <公孟>) 공자는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政者, 正也.)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묵자 또한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엇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로만 해서는 안 되고 실제로 그것을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묵자가 보기에 무엇이 올바른지 알면서 이를 실천에 옮기지 않는 것도 죄악이다. “입으로는 올바름에 대해 말하면서 이를 실천하지 않는 것은, 잘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죄를 범하는 짓(犯明)이다.”(言義而弗行, 是犯明也. <魯問>) 올바름을 실천에 온전히 옮기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쉽사리 자기 생각을 굽히거나 타협해서는 안 된다. 묵자는 말한다. “올바름을 행하다가 불가능한 게 있다 하더라도 그 올바른 길을 어겨서는 결코 안 된다. 비유를 들자면 마치 목수가 나무를 깎다가 잘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먹줄을 어기지 못하는 것과 같다.”(爲義而不能, 必無排其道. 譬若匠人之 而不能, 無排其繩. <貴義>) 나무에 먹줄을 긋고 반듯하게 깎아나가다 보면 옹이를 만나 깎기가 힘든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듯하게 깎아야 할 재목을 옹이를 피해 울퉁불퉁하게 깎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얘기다. 불의에 맞서기 위해 정의의 전쟁 준비 묵자에게는 ‘10대 강령’이라고 할 수 있는 열 가지 주장이 있다. (묵자의 10대 강령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보기로 한다.) 그는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온몸을 다 던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령 그의 10대 강령 가운데 “침략전쟁에 반대한다”(非攻)는 주장이 있었다. 그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침략당한 나라의 성을 찾아다니며 방어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이미 앞에서 살펴봤지만, 초나라가 공수반이라는 당대 최고의 기술자에게 운제(雲梯)라는 공격무기를 개발하도록 해 송나라를 공격하려 할 때, 묵자는 침략전쟁이 벌어지기 전 초나라 왕을 만나 침략전쟁을 중지할 것을 설득하고, 최종적으로 공수반을 만나 성의 모형을 만든 뒤 자신이 개발한 방어무기를 통해 공수반의 공격무기를 얼마든지 다 막아낼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전쟁 도발 계획을 중단시켰다. 그는 또 노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제나라의 태왕과 그의 장수 항자우를 만나 침략전쟁을 중단하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특히 항자우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제자 승작을 그의 수하에 들어가도록 해 침략전쟁을 막으려 하기도 했다. (동서횡단 38 참조) 묵자의 전쟁관은 소련의 전쟁관과 매우 닮았다. 소련은 전쟁에는 크게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이 있다고 보았다. 모든 침략전쟁은 불의의 전쟁에 속한다. 그러나 침략전쟁에 맞서 싸우는 민족해방투쟁, 파시즘에 반대하기 위한 연합국의 전쟁 등은 정의의 전쟁에 속한다. 묵자도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이 있다고 보았다. 모든 침략전쟁은 불의의 전쟁이지만, 이 침략전쟁을 막기 위한 방어전쟁은 정의의 전쟁이다. 묵자는 방어전쟁이라는 의로운 길을 실천하기 위해 방어전술과 방어무기를 크게 발전시켰다. 오늘날 남아 있는 묵자 53편 가운데 <공수>(公輸), <비성문>(備城門), <비고임>(備高臨), <비제>(備梯), <비수>(備水), <비돌>(備突), <비혈>(備穴), <비아부>(備蛾傅), <영적사>(迎敵祠), <기치>(旗幟), <호령>(號令), <잡수>(雜守) 등 13편은 방어기술과 방어전술, 방어무기에 관한 내용들이다. <비성문>은 성채 공방전술을, <비고임>은 적이 흙을 높이 쌓아 성채를 공격할 때의 방어전술을, <비제>는 운제를 이용한 성채 공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비수>는 적의 물 공격(水攻)에 대비하는 전술을, <비돌>은 성의 돌문을 통한 침입에 방비하는 방법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묵가 집단의 성채 방어전술은 매우 뛰어났다. 그래서 ‘묵수’(墨守)란 말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묵자는 이처럼 “정수리에서 무릎까지 다 닳아 없어지더라도 세상에 이롭다면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摩頂放踵利天下, 爲之. <孟子·盡心> 上-26) 삶을 살았다. 묵자는 올바르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은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어떤 사상이나 주장이 올바르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당대 최고의 과학기술자답게 묵자는 자신의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생각을 펴나간다. “컴퍼스에 들어맞는 것을 동그라미라고 하고, 컴퍼스에 들어맞지 않는 것을 동그라미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동그라미와 동그라미가 아닌 것은 모두 정확히 알 수 있다.”(中吾規者, 謂之 , 不中吾規者, 謂之不 . 是以 與不 , 皆可得而知也. <天志> 中) ‘컴퍼스’라는 기준이 있다면, 어떤 원형의 물체나 그림이 정원인지 찌그러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또 먹줄이 있으면 선이 반듯한지 휘었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묵자는 노동의 경험에서 자연히 어떤 법도, 표준, 기준이 반드시 필요함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정확한 작업을 위해 필수적인 컴퍼스와 먹줄에 해당하는 어떤 표준이 사상, 이론, 사회과학에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이론과 올바르지 않은 이론, 실천 가능한 이론과 실천할 수 없는 공리공담을 구분해낼 수 있다. 이론과 사상을 검증하는 세 가지 표준 묵자는 이론과 사상을 판단하고 검증하는 기준을 세 가지 제시하고, 이를 ‘삼표’(三表)라 불렀다. “말에는 세 가지 표준이 있다. 무엇을 세 가지 표준이라 하는가. 바탕으로 삼은 것, 근원으로 삼은 것, 그리고 실용성 이 세 가지를 말한다. 어디에 바탕할 것인가. 위로는 옛 성왕의 일을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어디에 근원을 둘 것인가. 아래로 백성들의 귀와 눈의 실제 상황을 살펴야 한다. 어떤 실용성을 가져야 하는가. 정치와 사법제도에 적용해서 국가와 인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을 일러 말에 세 가지 표준이 있다고 한다.”(<非命> 上) 첫 번째 표준은 인류의 간접경험, 두 번째 표준은 인민의 직접경험, 세 번째 표준은 실천 가능성을 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묵자는 자신의 ‘10대 강령’을 이상의 세 가지 표준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추구해 들어갔다. xuande@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