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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불법은 불법으로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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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3-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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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복제 소프트웨어 기습단속 논란… 공공의 이익 무시한 막가파식 행태 난무

사진/www2.bsa.org/korea
“컴퓨터는 공공자금으로 공공이 주창해 개발한 것입니다. 50년대 이것이 처음 개발된 것은 100% 공적인 비용을 통해서였습니다. 인터넷도 똑같습니다. 생각, 주창자,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모두 30여년 동안 공공분야에서 앞장서고 돈을 대서 창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막 빌 게이츠 같은 자들에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user.chollian.net/~marishin/eco/hchomsky.html)

이것은 좀 지나친 진술로 보일 수 있다. 뭐든지 이런 식으로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면 소유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갑자기 불법복제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습단속이 일제히 이루어지고 있다. 주로 벤처 등 소규모 회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어느 회사는 몇억원의 벌금을 물게 되었다더라, 또는 몇천만원을 들여 소프트웨어를 모두 새로 구했다더라 하는 파산에 가까운 절박한 사정들이 들려온다. 또한 시중 소프트웨어 정품이 모두 동이 났고,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려받는 일부 유통업체도 있으며, 몇몇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배후조종으로 엄청난 이익을 올렸다는 흉흉한 소문들이 그 반대쪽에 있다.

특히 이번 단속에서 검경을 지원했던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or.kr 혹은 www2.bsa.org/korea)에 대한 비난이 심각하다. 국제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 회원사들의 소프트웨어만 단속대상이었고 수색영장이 제대로 제시되지 않고 사법권이 없는 협회 직원들이 월권행위를 한다는 등 항의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불법성 여부를 따지기 힘든 레지스트리(사용흔적)조차 남아 있으면 안 되니까 컴퓨터를 전부 포맷해야 한다는 엄포를 놓아 업체들의 업무를 마비시킨 점 등도 문제가 되고 있다. 검열기구가 국가에서 기업으로 옮겨가고 기업의 이득을 보호하기 위해 개인들을 항시적으로 감시하며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올 만도 하다.

사진/studioai.net/antispc
그래서 며칠 전엔 안티 사이트까지 생겨났다. 안티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tudioai.net/antispc)는 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의 부당한 행위들을 고발하기 위해 생겨난 게시판 위주의 사이트이다. 방문자들이 단속활동에 대한 속보와 피해수기를 올리며, 서로 정보를 나누고 있다. 이 밖에도 하드디스크를 바꿔치기 한다, 컴퓨터를 책상인 것처럼 위장시킨다,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를 망가뜨린다 등 단속을 피하기 위한 기상천외한 방법들도 올라온다. 한 해커는 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의 메인 컴퓨터를 침입했다며 수두룩한 불법 소프트웨어 목록을 올려놓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사이트에는 단지 불법적 단속뿐 아니라, 단속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마치 미개인에게 공짜로 맛을 보인 뒤 두고두고 착취해먹던 식민주의자들처럼 공짜, 아카데미버전, 단속소흘 등으로 제품을 확산을 시킨 뒤 이제 와서 단속하는” 소프트웨어 거대기업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물론 아직 발상은 혼란스럽고 논리도 빈약하다. 더구나 모인 사람들은 카피레프트 등을 부르짖는 사회운동가들이 아니라 현행 저작권법에 기대어 있는 회사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아이러니일 수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방법은 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가 제공하는 소프트스캔이라는 ‘프리웨어’로 사용중인 컴퓨터를 검색해보고, 불법복제품을 지우고 새로 구입하거나(비록 2주나 지나야 재고가 있다지만), 매일 일정한 사용료를 내고 정품을 사용할 수 있는 와우프리(mainasp.com) 등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참여연대(peoplepower21.org), 진보네트워크(www.jinbo.net) 등 정부 단속절차에 법적인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단체들과 함께 법적 대응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좀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 특허 등 지적재산권이 컴퓨터 등 디지털 매체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논의 말이다. 그리고 독점적 가격 형성, 소프트웨어 업체가 아니라 소비자와 매체만이 감당해야 하는 복제차단의 책임, 컴퓨터 1대에 소프트웨어 1개, 개인적 복제와 대여조차 금지라는, 언제 어떤 여론을 들어 제정되었는지 궁금한 현행 법제도에 대한 좀더 깊은 논의를 위한 장이 생겨나길 기대해본다. 공공의 세금으로 형성된 환경이 일개 기업이 아닌 공공의 이익에 복무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광범위하긴 하지만 무시되어선 안 될 원칙이다.

이수영/ 인터넷 서퍼·자유기고가 chine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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