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적 논리학과 닮은 상반상성의 논리… 모순 극복하는 강한 사회비판의식 지녀
아무리 노자 할아버지라 해도 구름 위에서 신선처럼 초연하게 살다 간 건 아닐 것이다. 그에 관해 남아 있는 기록이 지극히 소략하기 때문에 그의 삶에 관해서 말할 때는 약간의 추리와 상상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남방의 초나라 사람으로서 주나라 왕실의 왕립도서관장을 지냈다. 그가 태어난 초나라는 중국 중원의 문화와는 좀 동떨어진 지역이었다. 춘추시기에 ‘왕’(王)이라 하면 그건 주나라의 천자를 가리키는 칭호였다. 제후들은 왕이라 칭하지 못하고 ‘공’(公)이라 칭했다. 제후들이 스스로를 왕이라 칭한 건 전국시기의 일이다. 그런데 유독 초나라 제후만은 춘추시기부터 스스로를 왕이라 칭했다. <춘추좌전>의 기록을 보면 초나라는 중원과 말도 약간 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서기 전 666년 초나라의 자원(子元)이 정나라를 침공한 적이 있는데 이때 정나라 사람들은 축구의 업사이드 트랙처럼 성을 텅 비워두는 ‘공성계’(空城計)를 써서 자원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이 대목에서 자원은 “초나라 말로 중얼거리며 성문을 나섰다. 그는 말하기를 ‘정나라에 사람이 있구나’ 했다”(<春秋左傳> 莊公 28)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보면 초나라는 이 시기에 이미 중원과는 다른 사투리를 썼음을 알 수 있다.
서양 연구자들의 신비주의자라는 낙인
노자는 중원의 중심 문화에서 동떨어진 초나라 태생으로서 주나라 왕실에 들어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 된 사람이다. 그는 문자기록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던 당시에 가장 많은 기록을 직접 접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기록으로만 접한 게 아니라 사실은 왕실 안의 갈등과 암투와 피비린내 나는 숙청과 보복의 과정을 숱하게 자기 눈으로 지켜보았을 것이다.
독일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를 비롯한 숱한 서양의 연구자들은 노자를 면밀히 검토해보지도 않고 성급히 ‘신비주의자’로 낙인찍는다. 노자에 대해 그보다 더 지독한 오해는 없다. 그는, 우리가 지난호에서 읽었던, “사랑을 받으나 미움을 사나 늘 놀란 듯하라”(寵辱若驚. 13장)든가, “재앙이여! 축복이 기대고 있는 곳이로다. 축복이여! 재앙이 엎드려 있는 곳이로다”(禍兮, 福之所倚; 福兮, 禍之所伏. 58장) 같은 구절에 담긴 역설적인 통찰을 탈세간의 심산유곡에서 바람 먹고 구름똥 싸며 내뱉은 게 아니었다. 반대로 그는 당대에 가장 화려한 문명이 만개한 세간의 한가운데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듯 기쁨과 슬픔, 상승과 몰락, 득의와 상심이 교차하는 삶의 격전지를 통과해왔기에, 그런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신비주의자이겠는가. 세간의 비통한 눈물과 캄캄한 절망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어떤 천상의 존재가 <노자>에 담긴 발언을 했다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의 밀도와 설득력이 훨씬 약했을지도 모른다. 형식논리학으로 포착되지 않는 사유라고 해서 비논리적이거나 신비주의인 것은 아니다. 자기와 다른 어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데서 인류의 사유의 폭을 제약하는 편견과 독선이 싹튼다. <노자>는 어떻게 보면 ‘할아버지의 철학’이다. 기나긴 삶의 터널을 거의 다 지나온 사람이 터널을 나서기 직전 멀리 뒤로 아른거리는 터널 초입의 아지랑이와 앞으로 탁 트인 터널 밖의 설경을 함께 보면서 남기고 간 철학이다. 노자의 사유가 대립의 양면을 함께 보는 철학이라 했을 때, 이런 사유에서 어떤 사태에 대한 가치판단이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예를 들어 재앙에 축복이 깃들어 있고 축복에 재앙이 도사리고 있다면, 가령 인민이 지배자의 억압에 의해 시달리고 고통받는다고 해서 지배자를 비난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고통은 언젠가 기쁨으로 전화할 것 아닌가. 상반상성의 논리를 이렇게 몰가치적인 회색논리로 보는 것 또한 노자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다. 마오쩌둥의 모순론은 노자를 이어받아 서양의 형식논리학은 상반상성의 논리학과 공통분모를 찾기 어렵지만, 변증법적 논리학은 상반상성의 논리학과 많은 점에서 닮았다. 형식논리학은 어떤 사물 안에 모순이 있다면 그것은 “환영”일 뿐이라고 말한다. 형식논리학자들은 ‘모순’이란 인간의 사고 안에서만 존재하지 현실에 실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형식논리학의 신봉자 시드니 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로부터 이미 논리학의 이론은 판단, 판정, 논증 속에 모순이 있을 수는 있지만, 사물이나 현상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본다”고 잘라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 근대 독일의 헤겔과 마르크스, 현대 중국의 마오쩌둥 등 변증법적 논리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형식논리학의 이런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형식논리학자들이 ‘모순’을 인간의 관념 안에 가둬두려 한 데 반해, 그들은 모든 존재에 모순이 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령 마오쩌둥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물도 모순을 포함하지 않은 것은 없으며, 모순이 없다면 세계도 없다.”(沒有什마事物是不包含矛盾的, 沒有矛盾就沒有世界. <矛盾論> 2) 마오의 이 구절은 <중용>에 나오는, “성실함이란 사물의 처음과 끝이니, 성실하지 않으면 어떤 사물도 존재할 수 없다”(誠者, 物之終始. 不誠無物. <中庸> 25)는 어법을 연상시킨다. ‘성실함’(誠)을 ‘모순’으로 대치했을 뿐이다. 마오는 중국 고전을 열심히 폭넓게 탐독한 사람이므로 아마도 중용의 이런 말투를 알게 모르게 본받았을지 모른다. 마오는 <모순론>에서 ‘상반상성’의 논리를 모순의 투쟁성과 통일성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한다. “우리 중국인들은 늘 말하기를 ‘서로 맞서면서 서로 이뤄준다’(相反相成)고 한다. (…) ‘서로 맞선다’(相反)는 것은 모순하는 쌍방이 서로 배척하고 투쟁하는 것을 말한다. ‘서로 이뤄준다’(相成)는 것은 일정한 조건 아래 모순하는 쌍방이 서로 연결되어 동일성을 얻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투쟁성은 동일성 속에 있지만, 투쟁성이 없으면 동일성은 없다.”(<矛盾論> 5) 노자가 말하는 상반상성과 마오가 해석한 상반상성 사이에는 건너기 어려운 심연이 놓여 있다. 마오는 ‘상반’을 모순의 ‘투쟁성’으로, ‘상성’을 모순의 ‘동일성’으로 해석한다. 마오에 따르면 서로 대립하는 쌍방은 자기의 존립 근거를 상대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서로 의존적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태로의 지양을 위해 서로 투쟁하는 관계이다. 그가 보기에 모순의 투쟁성은 절대적이지만 동일성은 상대적이다. 마오에 따르면 모순에는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이 있다. 적대적 모순이란 노예와 주인처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관계를 말한다.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의 구별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적대적 모순이 비적대적 모순으로 전화하기도 하고, 비적대적 모순이 적대적 모순으로 전화하기도 한다. 가령 남자와 여자는 본디 인간을 구성하는 비적대적 모순이지만, 가부장제를 타도하기 위해 싸우는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적대적 모순으로 전화하기도 한다. 마오의 시각에 따르면 적대적 모순은 투쟁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마오는 루쉰의 다음 시를 즐겨 인용했다. “눈썹 치켜 떠 수천 사내의 손가락질을 차갑게 대하고/ 고개 숙여 달게 어린아이의 무등말이 되어주리.”(橫眉冷對千夫指/ 俯首甘爲孺子牛) 그는 <옌안 문예 좌담회에서 남긴 강화>에서 이 시를 “마땅히 우리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수천 사내”를 “적”으로, “어린아이”를 “무산계급과 인민대중”이라 해석했다. 루쉰처럼 “어떤 흉악한 적들이 둘러싸 손가락질하더라도 우리는 굴복하지 말아야” 하며, 모름지기 혁명가와 작가는 “무산계급과 인민대중의 무등말이 되어야 한다”는 게 이 시에 대한 마오의 정치적 해석이다. 여기서도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의 대비가 드러난다. 인민대중의 무등말이 되려고 했던 사람들 다산 정약용의 시에도 루쉰의 시와 닮은 분위기의 작품이 하나 있다. “술에 취해 주정부리는 수천 사내들 가운데/ 선비 하나 몸가짐 단정히 태산처럼 앉아 있네/ 수천의 사내들 저마다 손가락질하며/ 이놈 혼자 미쳤다고 말하네”(후수千夫裏/ 端然一士莊/ 千夫萬手指/ 謂此一夫狂 ‘憂來’ 12-6) 루쉰이나 다산이나 나라꼴이 말씀이 아니던 시절을 치열하게 살다 간 사람들이다. 숱한 골보수 고집불통들과 탐욕스런 기득권자들의 심기를 벅벅 긁어댔으니 그들의 집중적인 성토와 공격목표가 되는 게 당연했다. 그들은 둘 다 수천 사내들의 손가락질 앞에서는 눈썹 하나 꿈쩍않고 태산처럼 버티었지만, “어린아이” 앞에서는 기꺼이 무등말이 되고자 한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적대적 모순관계에 있는 적에 대해서는 비타협적인 투쟁을, 비적대적 모순관계에 있는 보통사람들과는 헌신과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행동방식이 우리에겐 더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노자는 다른 목소리로 말한다. leess@hani.co.kr

독일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를 비롯한 숱한 서양의 연구자들은 노자를 면밀히 검토해보지도 않고 성급히 ‘신비주의자’로 낙인찍는다. 노자에 대해 그보다 더 지독한 오해는 없다. 그는, 우리가 지난호에서 읽었던, “사랑을 받으나 미움을 사나 늘 놀란 듯하라”(寵辱若驚. 13장)든가, “재앙이여! 축복이 기대고 있는 곳이로다. 축복이여! 재앙이 엎드려 있는 곳이로다”(禍兮, 福之所倚; 福兮, 禍之所伏. 58장) 같은 구절에 담긴 역설적인 통찰을 탈세간의 심산유곡에서 바람 먹고 구름똥 싸며 내뱉은 게 아니었다. 반대로 그는 당대에 가장 화려한 문명이 만개한 세간의 한가운데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듯 기쁨과 슬픔, 상승과 몰락, 득의와 상심이 교차하는 삶의 격전지를 통과해왔기에, 그런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신비주의자이겠는가. 세간의 비통한 눈물과 캄캄한 절망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어떤 천상의 존재가 <노자>에 담긴 발언을 했다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의 밀도와 설득력이 훨씬 약했을지도 모른다. 형식논리학으로 포착되지 않는 사유라고 해서 비논리적이거나 신비주의인 것은 아니다. 자기와 다른 어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데서 인류의 사유의 폭을 제약하는 편견과 독선이 싹튼다. <노자>는 어떻게 보면 ‘할아버지의 철학’이다. 기나긴 삶의 터널을 거의 다 지나온 사람이 터널을 나서기 직전 멀리 뒤로 아른거리는 터널 초입의 아지랑이와 앞으로 탁 트인 터널 밖의 설경을 함께 보면서 남기고 간 철학이다. 노자의 사유가 대립의 양면을 함께 보는 철학이라 했을 때, 이런 사유에서 어떤 사태에 대한 가치판단이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예를 들어 재앙에 축복이 깃들어 있고 축복에 재앙이 도사리고 있다면, 가령 인민이 지배자의 억압에 의해 시달리고 고통받는다고 해서 지배자를 비난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고통은 언젠가 기쁨으로 전화할 것 아닌가. 상반상성의 논리를 이렇게 몰가치적인 회색논리로 보는 것 또한 노자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다. 마오쩌둥의 모순론은 노자를 이어받아 서양의 형식논리학은 상반상성의 논리학과 공통분모를 찾기 어렵지만, 변증법적 논리학은 상반상성의 논리학과 많은 점에서 닮았다. 형식논리학은 어떤 사물 안에 모순이 있다면 그것은 “환영”일 뿐이라고 말한다. 형식논리학자들은 ‘모순’이란 인간의 사고 안에서만 존재하지 현실에 실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형식논리학의 신봉자 시드니 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로부터 이미 논리학의 이론은 판단, 판정, 논증 속에 모순이 있을 수는 있지만, 사물이나 현상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본다”고 잘라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 근대 독일의 헤겔과 마르크스, 현대 중국의 마오쩌둥 등 변증법적 논리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형식논리학의 이런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형식논리학자들이 ‘모순’을 인간의 관념 안에 가둬두려 한 데 반해, 그들은 모든 존재에 모순이 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령 마오쩌둥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물도 모순을 포함하지 않은 것은 없으며, 모순이 없다면 세계도 없다.”(沒有什마事物是不包含矛盾的, 沒有矛盾就沒有世界. <矛盾論> 2) 마오의 이 구절은 <중용>에 나오는, “성실함이란 사물의 처음과 끝이니, 성실하지 않으면 어떤 사물도 존재할 수 없다”(誠者, 物之終始. 不誠無物. <中庸> 25)는 어법을 연상시킨다. ‘성실함’(誠)을 ‘모순’으로 대치했을 뿐이다. 마오는 중국 고전을 열심히 폭넓게 탐독한 사람이므로 아마도 중용의 이런 말투를 알게 모르게 본받았을지 모른다. 마오는 <모순론>에서 ‘상반상성’의 논리를 모순의 투쟁성과 통일성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한다. “우리 중국인들은 늘 말하기를 ‘서로 맞서면서 서로 이뤄준다’(相反相成)고 한다. (…) ‘서로 맞선다’(相反)는 것은 모순하는 쌍방이 서로 배척하고 투쟁하는 것을 말한다. ‘서로 이뤄준다’(相成)는 것은 일정한 조건 아래 모순하는 쌍방이 서로 연결되어 동일성을 얻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투쟁성은 동일성 속에 있지만, 투쟁성이 없으면 동일성은 없다.”(<矛盾論> 5) 노자가 말하는 상반상성과 마오가 해석한 상반상성 사이에는 건너기 어려운 심연이 놓여 있다. 마오는 ‘상반’을 모순의 ‘투쟁성’으로, ‘상성’을 모순의 ‘동일성’으로 해석한다. 마오에 따르면 서로 대립하는 쌍방은 자기의 존립 근거를 상대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서로 의존적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태로의 지양을 위해 서로 투쟁하는 관계이다. 그가 보기에 모순의 투쟁성은 절대적이지만 동일성은 상대적이다. 마오에 따르면 모순에는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이 있다. 적대적 모순이란 노예와 주인처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관계를 말한다.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의 구별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적대적 모순이 비적대적 모순으로 전화하기도 하고, 비적대적 모순이 적대적 모순으로 전화하기도 한다. 가령 남자와 여자는 본디 인간을 구성하는 비적대적 모순이지만, 가부장제를 타도하기 위해 싸우는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적대적 모순으로 전화하기도 한다. 마오의 시각에 따르면 적대적 모순은 투쟁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마오는 루쉰의 다음 시를 즐겨 인용했다. “눈썹 치켜 떠 수천 사내의 손가락질을 차갑게 대하고/ 고개 숙여 달게 어린아이의 무등말이 되어주리.”(橫眉冷對千夫指/ 俯首甘爲孺子牛) 그는 <옌안 문예 좌담회에서 남긴 강화>에서 이 시를 “마땅히 우리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수천 사내”를 “적”으로, “어린아이”를 “무산계급과 인민대중”이라 해석했다. 루쉰처럼 “어떤 흉악한 적들이 둘러싸 손가락질하더라도 우리는 굴복하지 말아야” 하며, 모름지기 혁명가와 작가는 “무산계급과 인민대중의 무등말이 되어야 한다”는 게 이 시에 대한 마오의 정치적 해석이다. 여기서도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의 대비가 드러난다. 인민대중의 무등말이 되려고 했던 사람들 다산 정약용의 시에도 루쉰의 시와 닮은 분위기의 작품이 하나 있다. “술에 취해 주정부리는 수천 사내들 가운데/ 선비 하나 몸가짐 단정히 태산처럼 앉아 있네/ 수천의 사내들 저마다 손가락질하며/ 이놈 혼자 미쳤다고 말하네”(후수千夫裏/ 端然一士莊/ 千夫萬手指/ 謂此一夫狂 ‘憂來’ 12-6) 루쉰이나 다산이나 나라꼴이 말씀이 아니던 시절을 치열하게 살다 간 사람들이다. 숱한 골보수 고집불통들과 탐욕스런 기득권자들의 심기를 벅벅 긁어댔으니 그들의 집중적인 성토와 공격목표가 되는 게 당연했다. 그들은 둘 다 수천 사내들의 손가락질 앞에서는 눈썹 하나 꿈쩍않고 태산처럼 버티었지만, “어린아이” 앞에서는 기꺼이 무등말이 되고자 한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적대적 모순관계에 있는 적에 대해서는 비타협적인 투쟁을, 비적대적 모순관계에 있는 보통사람들과는 헌신과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행동방식이 우리에겐 더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노자는 다른 목소리로 말한다. leess@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