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파리, 유랑민들의 하룻밤

581
등록 : 2005-10-19 00:00 수정 :

크게 작게

[김남희의 길 위에서 주운 한 마디]

프랑스-“이렇게 초대하면 정말 멋진 세상일 텐데”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스티브를 만난 건 서점에서였다. 소르본대학 근처의 골목에는 등산을 비롯한 야외활동에 필요한 장비를 파는 가게들이 스무곳도 넘게 몰려 있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내가 제일 좋아했던 일은 그 가게들을 일없이 기웃거리는 것이었다. 그가 일하던 곳은 여행 관련 서적을 전문으로 파는 곳이었다. 영국에 관한 도보여행 책을 찾던 내게 그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그건 또렷한 한국말이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모국어를 들은 내가 외쳤다. “당신, 정체가 뭐야?” 그가 한국말로 대답했다. “저는 스티브입니다”라고.


그렇게 우린 친구가 되었다. 스티브는 한국에 거주한 적이 있었고, 한국인 여자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안동 권씨 집안의 딸과의 연애는 4년 만에 끝이 났는데, 이유는 그의 아버지가 외국인 사위를 결사 반대했기 때문이다(이런 일에 목숨 건 반대를 표명하는 한국인들의 심리조사를 한번쯤 해보고 싶다). 그 이야기를 하며 스티브는 말했다. “난 일종의 인종차별을 당했던 거야.” 스티브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성폭력 상담소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 경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국 사회의 이중적인 성의식과 가부장적인 모습을 끔찍이 싫어했다. 다음날 런던으로 떠날 예정이었던 내게 스티브가 말했다. 돌아오는 날, 자기 집으로 놀러오라고.

스티브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파리 시내 야경. 어린 왕자처럼 그도 외로운 날에는 해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 같다. (사진/ 김남희)

런던에서 돌아온 뒤 스티브의 초대를 받았을 때 나는 좀 망설여야 했다. 이 인간이 거리에서 만난 여자들을 집으로 끌어들여 토막 살인을 자행하는 희대의 살인마가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 있지? 대부분의 강력 범죄가 멀쩡한 외모를 갖춘 빼어난 매너를 가진 백인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던데, 그런 면에서 스티브는 완벽하잖아? 선천적으로 타고난 소심함에 혼자 여행하는 여자의 몸에 밴 조심성까지 겹쳐 오래 망설여야 했다. 결국 다른 친구에게 그의 집 전화번호와 이름을 자연스레 알려놓는 작전을 수행한 뒤에야 그의 집으로 향했다.

“난 한국에서 인종차별 당한 거야”

기대(?)와는 다르게 손님이 나만은 아니었다. 스티브가 여행 중에 만난 덴마크인 한나, 베트남계 프랑스인 탄, 그의 애인 캐롤린,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그 밤의 초대받은 손님들이었다. 다음달이면 1년 예정으로 아시아 여행을 떠날 예정인 탄과 캐롤린도 나처럼 여행서를 사러 왔다가 스티브를 만났다고 했다. 우리는 조PD의 음악을 들으며, 일본음식을 시켜먹고, 그가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물건들을 구경했다. “이렇게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거리낌 없이 집으로 초대하고, 우리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초대를 받아들이며 살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세상일 텐데….” 캐롤린의 중얼거림에 우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면에서 스티브의 경계 없는 순수함을 우리는 인정해야 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의 방은 온통 여행에 관한 책, 여행에서 모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건 정착민의 방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배낭을 꾸릴 수 있는 사람의 집이었다. 장소는 파리였지만, 아직 아무 곳에도 집을 짓지 않은, 유랑하는 이들의 고향이었다. 그 밤, 스티브는 우리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17살 때 어머니가 사고로 죽고, 18살 때 아버지가 어린 동생만 데리고 떠나버린 뒤 그는 늘 혼자 살아왔다. 그해 암벽등반을 하다가 추락해 의식불명에 빠져 있어야 했다. 기적처럼 깨어났을 때 그는 평생 운동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있었다. 20살이 되던 해, 할아버지가 죽고 보험금이 들어왔다. 그 돈으로 그는 여행을 떠나 세상을 떠돌았다. 그가 파리로 돌아와 정착한 건 지난해, 11년 동안 세상을 여행한 뒤였다. 그는 아직 완벽한 정착민이 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집에는 아직 풀지도 않은 짐들이 있었고, 가까이 만나는 이들은 모두 여행 중이거나 여행을 준비 중인 사람들이었다. 그는 심정적 유랑민인 셈이었다.

스티브의 방에서.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탄, 캐롤린, 스티브. (사진/ 김남희)

외로움이 외로움을 나누다

스티브와 한나, 탄과 캐롤린 그리고 나. 그날 우리가 나눈 건 외로움이었다. 세상에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며, 외롭지 않은 가슴이 또 어디 있을까. 우리는 다 외로웠고, 정거장 같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떠나고 돌아오고,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떠나고…. 우리가 살아갈 앞으로의 삶이 어떤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외로웠고, 지구라는 별 주위에서 혼자 반짝이는 소행성들이었다. 그날 에펠탑의 불이 꺼지는 모습을 지켜보며(스티브의 아파트는 파리 시내에서 보기 드문 고층 건물이었다. 29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파리의 야경은 아찔했다) 몹시 외로울 때는 해지는 모습을 본다는 어린 왕자를 생각했다. 어느 날엔가는 의자를 돌려가며 43번이나 해지는 모습을 보았다는 어린 왕자. 다섯이 나란히 베란다에 서서 파리의 야경을 바라보던 그 밤, 외로움은 외로움끼리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건 따뜻한, 온기 나는 외로움이었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