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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단순명료한 삶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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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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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길 위에서 주운 한마디]

독일- “여기선 독일식으로 할 거니까 예의상 거절하면 안 돼!”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로버트를 만난 건 지난해 봄, 네팔에서였다. 나는 랑탕 트레킹을 하던 중이었고, 그는 8천미터급 봉우리인 시샤팡마를 등반하기 위해 고소적응 중이었다. 그 마을에서 닷새를 머무르는 동안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는 독일에서 사는 오스트리아인이었고, 독일어 선생이자 두권의 산악 관련 책을 낸 프로 산악인이었다. 랑탕에서의 짧은 만남 이후 우리는 가끔씩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유럽에 올 기회가 생기면 꼭 독일에 오라는 그의 청대로, 나는 유럽에 들어선 뒤 독일로 건너갔다.


새벽 5시반 기상, 밤 9시 취침

그의 고향은 슈투트가르트에서 자동차로 30분, 남독일의 전형적인 중산층 마을 오스텔셰임(Ostelsheim)이었다. 로버트가 교사로 발령받은 ‘헤르만 헤세 김나지움’이 그의 고향에서 10분 거리여서 원정 비용도 저축할 겸 그는 잠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로버트의 집은 수학자 집안이었다. 아버지는 슈투트가르트대학의 수학과 교수, 어머니 역시 수학 선생, 로버트의 형도 수학자의 길을 가고 있었다. 가까이서 들여다본 수학자들의 생활은 숫자만큼이나 단순하고 명료했다. 새벽 5시반이면 온 식구가 일어나 6시에 아침을 먹는다. 낮에는 각자 일을 하고 저녁 7시면 다시 모여 저녁을 먹고 9시에 잠자리에 든다. 주말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산에서 보낸다.

랑탕 트레킹 중 휴식을 취하는 로버트. (사진/ 김남희)

로버트의 부모님 역시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암벽등반을 즐기는 분들이셨다. 그 집의 식사도 하루 일과만큼이나 간단했다. 아침은 엄마 도리스가 직접 구운 호밀빵에 치즈나 잼을 곁들여 차와 함께 먹는다. 점심은 정원에서 캐온 양상추 샐러드에 감자요리나 소시지, 수프를 곁들인다. 저녁은 다시 빵과 샐러드, 한 가지 정도의 뜨거운 요리. 고기는 거의 먹지 않고, 모든 채소는 정원에서 직접 키운 유기농들이다. 규칙적인 생활과 소식, 주기적인 운동은 이들 가족이 건강한 이유인 것 같았다.

식사가 끝나면 아버지와 아들이 부엌에 가서 설거지를 맡아 했다. 설거지뿐 아니라 많은 집안일들이 남자들의 손으로 이뤄졌다. 그 집 남자들은 집안일을 하며 ‘이건 원래 여자들의 일인데 내가 나서서 도와주는 거야’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집안일은 가족 구성원들이 당연히 함께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자연스러운 나눔은 마치 도덕경에서 말하는 ‘무위의 위’(無爲之爲)의 경지에 오른 자연스러움이었다. 그들의 문화가 우리와 참 다르다고 느낀 건 로버트의 아버지가 하노버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던 날이었다. 교회의 종이 밤 9시를 알리자, 어머니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면서 침실로 갔다(남편이 30분 뒤면 돌아오는데!). 그리고 20분 뒤에 도착한 아버지는 부엌에서 혼자 음식을 데워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한 뒤, 아침에 먹을 것을 식탁에 준비해놓았다.

수학자들의 집안은 늘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모든 것이 제자리에, 새것처럼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상태로 놓여 있었다. 부엌 싱크대에도 화장실에도 물기 한 방울 없어 설거지를 하거나 샤워를 할 때면 보통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다(유럽의 화장실에는 샤워 부스를 제외하고는 화장실 바닥에 물 빠지는 구멍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 샤워 커튼이나 유리 칸막이가 있는데, 그 집 화장실에는 커튼도 칸막이도 없어서 샤워를 하고 나면 사방이 물바다가 된다. 그래서 샤워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바닥을 닦으며 보내야 했다).

5일 만의 탈출, 재미가 없었네

내가 도착하던 날, 로버트는 내게 말했다. “여기선 독일식으로 할 거니까 한국식으로 세번씩 권할 거라고 생각하고 예의상 거절하면 안 돼!”라고. 그 집에서 나는 늘 독일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 위해, 즉 체면치례를 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요란하거나 격식 차리지 않는 그들의 단조로운 생활방식이 조금 건조한 듯 여겨지기도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 집을 5일 만에 탈출하듯 나온 건 우선은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유럽에서도 독일인은 영국이나 프랑스인들에 비해 유머감각이 떨어진다는 평을 듣고 있다).

로버트가 독일어 선생으로 일하는 헤르만 헤세 김나지움. 독일의 대문호 헤세가 수학한 학교다.

매사에 진지하고 분석적인 부모님, 단순명료한 생활처럼 역시 단순하게 반복되는 딱딱한 빵과 수프도 조금씩 지겨워졌다. 새벽 6시 기상과 밤 9시 취침이라는, 강요 없이 강제된 생활의 규칙도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소리 없이 다가와 수도꼭지를 잠그고 가는 몸에 밴 절약과 검소한 생활습관이 강제하는 긴장. 샤워 뒤 물기를 없애기 위해 바닥을 닦느라 보내야 하는 시간(누구도 바닥을 닦으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 집의 상태를 보면 최선을 다해 바닥을 닦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도 불편해졌다. 결국 난 ‘이 정도면 충분한 경험이야!’ 중얼거리며 5일 만에 수학자들의 집을 벗어나 프랑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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