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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석달 동안 네 번의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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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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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어떤 무슬림 남자도 믿지 마”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시장에서 이란 남자에게 엉덩이를 집혔다. 세바스티앙, 에밀과 같이 있던 시장. 한낮의 거리에서 그런 일을 당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비명을 지르다가 바로 쫓아가 그 자식의 팔을 잡고 돌려세웠다. 이미 상황 파악을 끝낸 에밀이 대차게 덤벼들며 그놈을 밀어붙이고, 무안을 줬다. 너무나 태연하게 시침을 떼는 놈. 사람들이 끼어들어 말리는 바람에 보내줬다. 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경험이다.”
(2005년 5월18일 이란 시라즈에서의 일기)

“세바스티앙을 만나러 가는 길. 한 남자가 “헬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나도 웃으며 “헬로!”라고 답하는 순간, 그 남자의 손이 내 가슴을 스윽 더듬더니, 재빨리 길을 건너 사라진다. 너무도 어이없이 당한 두 번째 성희롱. 이란에 들어온 지 일주일 만에 두 번째 겪는 성희롱이다.”
(2005년 5월21일 이란 에스파한에서의 일기)


파키스탄 라호르의 구왈만디 거리에서 식사 중인 남성들. (사진/ 김남희)

솔직히 말하자. 여자 혼자 이란과 파키스탄을 여행하는 일의 안전지수: 바닥이다. 파키스탄과 이란에 내가 머무른 시간은 석달. 그 석달간 나는 네번의 직접적인 성희롱을 겪었다. 그 땅에 들어서기 전까지, 지난 2년간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다녔던 테헤란에서는 거리를 나서는 일이 두려울 정도였다. 그 거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남자들의 눈길은 노골적이었다. 의도적으로 몸을 부딪치며 스쳐가는 남자들을 겪을 때마다 나는 모멸감과 분노로 몸서리를 치고는 했다. 이란에서 내가 만났던 여성, 파란은 내게 경고했다. “이렇게 일반화해서 말하는 게 미안하지만, 어떤 무슬림 남자도 믿지 마”라고. “왜냐하면 이슬람 사회에서 남자들은 여성에 대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교육받으며 자라니까.”

“네가 성희롱을 유도했다”

자신 역시 무수한 성희롱을 겪으며 살아간다는 그는 더 끔찍한 건 그걸 해결할 방법이 없는 거라고 말했다. 경찰서에 가봤자 증인을 세울 수도 없고, 세운다 한들 경찰의 답은 늘 똑같으니까. “네가 그렇게 유도했다. 네 옷차림이, 네 화장법이, 네 행동이 그렇게 유발한 거다.”

검은 차도르를 두르고 걷고 있는 이란 여성들. (사진/ 김남희)

결국 죄는 ‘정숙하지 못한’ 여성의 몫으로 돌아오는 사회, 그게 이란이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의 1980년대 법정의 한 풍경이 떠오른다.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해야 합니다”라며 자신을 강간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기소된 피고, 그 여성이 맥주에 붉어진 얼굴로 어두운 거리를 걷고 있었기에 보호할 가치가 없는 정조이므로 유죄를 선고할 것을 요청하던 대한민국 검사의 얼굴이.)

이란에서 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여자들이 다가와 묻고는 했다. 그 예쁜 옷은 어디서 샀느냐고. 내가 입고 있던 옷들은 파키스탄에서 천을 끊어 만든 흰색 혹은 밝은 노랑의 엉덩이를 덮는 웃옷과 같은 색깔의 짧은 스카프였다. 온통 검정색 일색인 이란에서 내 옷차림은 튀었다. 이란에서 여성은 엉덩이를 가리는 옷을 입고(엉덩이의 흔들거림으로 남성을 자극하지 않도록!), 스카프를 쓰는 게 의무이므로(외국인에 대한 특별우대는 없다!) 나 역시 그런 옷차림을 해야 했다. 내 옷은 그 모양에서 규칙을 따르고 있었으나 색깔은 몹시 도발적인 셈이었다. 우체국에서도, 시장에서도, 사원에서도 여자들은 내게 옷이 예쁘다며 한숨을 내쉬고는 했다. 그들의 옷차림을 제약하고, 그들이 머물러야 할 공간을 제약하고, 그들의 자유로운 사랑과 연애를 제약하는 사회.

파키스탄 페샤와르의 거리에서 장사 중인 남성들. (사진/ 김남희)

꿈마저 감시할 것 같은 사회

제약과 규제가 많은 사회는 허약한 사회이다. 마치 우리 사회의 사형제도가 우리에게 다른 방법으로 그들을 포용할 능력이 없음을 반증하는 것처럼. 옷의 색깔과 길이로, 스카프로 여성들의 삶을 제약하는 사회. 그건 위약함의 증거이자 스스로에 대한 불신의 표상일 뿐이다. 모두 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같은 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회를 나는 믿지 않는다.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사회는 내게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겉으로 드러난 단일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그 사회가 말살해왔을 소수의 삶, 그들의 비명이 터지지도 못한 채 짓눌려 있을 것만 같아서.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 다른 길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회. 그런 사회는 사람들의 꿈마저 같은 꿈을 꾸는지 감시할 것만 같아, 그 생각만으로도 내 잠자리는 따끔거린다. 그럼에도 이란과 파키스탄의 대다수 사람들이 보여주는 친절과 호의는 그 모든 불쾌한 경험을 잊거나 기꺼이 감수하고 여행을 계속할 의지를 부여해주고는 했다. 의심스럽다면, 다음편 이야기 “친절한 이란인 사례 모음 결정판”을 기다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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