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 “우린 여기서 나쁜 소녀들이야”
파키스탄의 라호르에서 이란 국경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라호르발 퀘타행 기차는 오후 5시에 출발했다. 방마다 화장실이 딸린 4인실 1등석 컴파트먼트는 서늘하고, 조용하고, 안락했다. 게다가 차장의 배려로(파키스탄에서는 늘 있던 일이라 이제는 감동도 희미하다) 독방을 얻어 안락하게 하루를 보냈다. 기차는 한 시간 반의 연착 끝에 꼬박 스물다섯 시간이 지난 오후 5시50분 퀘타에 도착했다. 퀘타에서 국경인 타프탄으로 가는 버스는 저녁 6시 출발 예정이었다. 버스 출발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꼭 10분.
검은 차도르, 장례식 조문행렬인가
뛰다시피 역을 나서니 눈치 빠른 오토릭샤 기사가 “타프탄?” 외치며 다가왔다. 짐을 던져넣고 시동을 건 오토릭샤는 겁없이 차량 사이를 질주한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6시3분. 막 떠나려는 버스를 세워 표를 끊고 올라탔다. 다시 열세 시간을 달린 버스는 다음날 아침 7시에 국경인 타프탄에 도착했다. 한 시간 넘게 이민국이 열리기를 기다린 뒤, 국경을 통과하고 이란 땅에 들어섰다. 여기서 목적지인 야즈드까지는 다시 버스로 열세 시간을 가야 했다. 오후 두시에 출발한 버스는 메마르고 황량한 사막의 길을 가로질러 다음날 새벽 3시, 인적 끊긴 도시 야즈드에 나를 내려놓았다.
택시에 몸을 싣고 텅 빈 거리를 달리고 있자니 언제나처럼 두려움이 온몸을 죄어왔다. 낯선 이와 낯선 곳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와 의심. 그 의심 뒤의 또 본능적인 참회와 반성. 무사히 숙소에 도착해 잠자는 직원을 깨워 6명이 방을 나눠 쓰는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나니 새벽 4시. 2박3일에 걸친 국경 넘기. 단 한명의 여행자도 만나지 못한 채 내내 혼자여야 했던 외로운 국경 넘기는 친절하고 따뜻한 파키스탄과 이란 사람들 덕에 사고 없이 끝났다.
선잠을 자고 난 그날 아침, 처음 만난 도시의 풍경은 나를 경악하게 했다. 거리엔 온통 검은 차도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 여자들이었다. 장례식 단체 조문이라도 가는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커멓게 차려입은 여자들. 마치 도시 전체가 국장이라도 치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 역시 복더위에 머리를 뒤덮는 스카프를 써야 했기에 이래저래 몸과 마음이 다 불편했다. 사라와 마르지아를 만난 건 그런 마음으로 자메 모스크를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대학에서 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하는 스무살의 그들. 검정 차도르 대신 하늘색 스카프를 걸치고 청바지를 날렵하게 차려입은 그들은 모스크의 첨탑을 그리고 있었다. 우리는 곧 친구가 되어 그들의 안내로 옛 도시를 돌아다녔다. 야즈드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천국의 아이들>이 촬영된 곳이자 이란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기도 했다. 흙으로 지은 오래된 집들이 마치 미로처럼 얽히고설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시가는 매혹적이었다.
그 매혹적인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의 모습은 나를 슬프게 했다. 검정 차도르를 둘러쓰지 않은 그들의 옷차림이 예쁘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깔깔거리며 대답했다.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입는 우리를 ‘Bad girl’이라고 불러. 우린 여기서 나쁜 소녀들이야.” 테헤란이 집인 사라는 야즈드는 너무나 보수적인 동네이고, 사람들은 배타적이라 외부인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란의 상황은 놀랍다.
여기서는 남녀가 같이 거리를 돌아다니려면 경찰의 불심검문을 각오해야 한다. 관계가 뭐냐고 꼬치꼬치 묻고, 때로 집으로 전화를 걸어 확인한다. 남쪽 해안 도시에서는 아직도 결혼 초야에 피 묻은 천을 내걸기도 한단다. 여자아이들은 9살이 되면 무조건 스카프를 의무적으로 써야 하고, 외국인도 예외는 없다. 그에 비해 남자들의 옷차림은 얼마나 자유로운지. 여기 남자들은 죄다 딱 붙는 청바지에 윗단추를 몇개씩 풀어헤친 셔츠 차림이었다. 옷차림만을 두고 이야기한다면 이란은 파키스탄보다 더 여성에 대한 제약이 심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직도 처녀성 검사를…
그래도 자유의 물결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번져, 그들은 자유연애를 하고, 차도르를 거부하고, 앞머리를 다 드러낸 채 머리끝에 밝은 색 스카프를 겨우 걸침으로써 경찰의 단속을 피한다. 물론 이란에서는 스카프가 법적 의무사항이라 파키스탄처럼 벗고 다니는 용감한 여성은 한명도 볼 수 없다. 사라와 마르지아는 말한다. “여자들은 남자친구를 사귀고, 자유롭게 살아보기 위해서 대학에 오기도 해. 그리고 다들 연애를 시작해. 남자친구가 생기면 섹스만 빼고는 뭐든지 다해. 물론 어떤 애들은 용감하게 섹스를 하지만, 일부 남자들은 결혼 전에 신부의 처녀성 검사를 요구해서, 아직 그렇게 용감한 여성은 드물어.”
온몸에서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이라고는 얼굴뿐이라 흡사 무대용 분장처럼 진한 화장을 한 이란의 여대생들. 이렇게 밝고, 어여쁘고, 빛나는 나이의 청춘들을 검정 차도르에 가두어둔다는 것. 정말이지 폭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이란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검정 차도르로 인해 ‘매우 흐리고 불쾌지수 높음’이었다.
택시에 몸을 싣고 텅 빈 거리를 달리고 있자니 언제나처럼 두려움이 온몸을 죄어왔다. 낯선 이와 낯선 곳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와 의심. 그 의심 뒤의 또 본능적인 참회와 반성. 무사히 숙소에 도착해 잠자는 직원을 깨워 6명이 방을 나눠 쓰는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나니 새벽 4시. 2박3일에 걸친 국경 넘기. 단 한명의 여행자도 만나지 못한 채 내내 혼자여야 했던 외로운 국경 넘기는 친절하고 따뜻한 파키스탄과 이란 사람들 덕에 사고 없이 끝났다.

하늘색 스카프를 두르고 진한 화장을 한 그들은 검정 차도르를 입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야즈드에서 ‘나쁜 소녀들’로 낙인찍힌다. (사진/ 김남희)

모스크 앞을 지나가는 오토바이 뒷자석의 여자도 검정 차도르를 입었다. (사진/ 김남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