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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밤중 트럭타기 대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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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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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 “절대 안 돼. 트럭 운전사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굴미트(Gulmit. 2700m)로 트레킹을 나선 길.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이 수줍은 인사를 건넨다. 나도 미소를 돌려주며 걷는다. 오르막길을 오른 지 한 시간 만에 카마리스 마을 도착. 먼 산에 눈을 두고 있는데, 키가 훤칠한 소년이 쭈뼛거리며 말을 걸어온다. 영어를 곧잘 하는 저우딘(16). 그의 안내로 안드라 포트(Andra Fort)로 향했다. 무너진 돌담이 옛날을 짐작케 하는, 폐허인 성벽. 성벽에 올라서니 눈앞에 걸리는 것 없이 온 마을과 산이 들어온다. 저우딘이 손으로 가리키며 알려준다. “저건 굴미트 빙하, 저 아랫마을이 굴킨 마을, 바로 눈앞의 뾰족산은 파수 피크.”

길 없는 길을 돌아 만난 굴미트 빙하


성벽을 둘러본 뒤 저우딘의 집으로 갔다. 교복을 갈아입고 온다고 했을 때 미리 일렀는지, 저우딘의 엄마는 마른 삭정이를 지펴 화덕에 차파티를 굽고 차를 끓이고 있다. 밭에 나갔던 저우딘의 아버지도 들어오셨다. 살구씨 기름에 적신 차파티 몇장과 두어잔의 차를 마신 뒤 굴미트 빙하로 향한다. 가는 길, 저우딘이 온 동네 사람을 다 인사시킨다. “우리 숙모.” “사촌들.” “옆집 아저씨.” “우리 동네 최고 입담꾼 할아버지.” 그 입담꾼 할아버지가 우리를 물 먹였다! 수로를 따라 가려던 우리를 제지시키고, 지름길이라며 알려준 길이 죽음의 바위고개다! 가도 가도 끝없는 바위길. 흙이 쓸리고, 돌들이 굴러떨어지고, 길은 가파른데 빙하는 손앞에 잡힐 듯 말 듯 절대로 가까워지지 않는다. 길 없는 길을 치고 두 시간을 올라가서야 겨우 빙하 앞에 섰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굴미트의 어린 학생들이 수줍게 웃고 있다. 파키스탄 시골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이다. (사진/ 김남희)

내려오는 길에는 저우딘 삼촌 집에 들러 차와 빵, 버터(집에서 암소의 젖으로 직접 만든!)로 요기. 삼촌은 카라치에 돈 벌러 가고 숙모와 딸들만 이 집에 살고 있다. 이 동네 남자들은 대부분 카라치나 라호르 같은 도시로 나가서 일을 한다. 여기서는 척박한 땅을 힘겹게 일구어 소득 없는 농사를 짓는 일 말고는 일이 없으니. 파키스탄 최고의 대학 카라치 대학에 들어가 엔지니어가 되어 고생하는 부모님을 편하게 모시고 싶다는 저우딘. 그가 아랫마을까지 따라 내려온다는 걸 말려서, 혼자 길을 나섰다. 내려오는 길, 뒤를 돌아보면 저우딘은 꼼짝 않고 바위 위에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카라코름 고속도로에 내려서니 카리마바드로 가는 차는 이미 끊겼다. 차를 얻어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이에 동네 청년 모하메드 이삭은 뜨거운 차를 대접해주고, 동네 사람들에게 차를 빌릴 수 있는지 알아보고, 말상대가 되어줬다. 마침내 두 시간 만에 대형 트럭이 와서 섰다. 트럭이라도 타고 가겠다는 나를 강력하게 제지하는 이삭. “안 돼! 트럭 운전사들이 얼마나 위험한데! 내가 여기 살면서 매일 겪어봐서 아는데, 트럭 운전사들은 정말 저질이야! 게다가 낮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밤이잖아. 절대 안 돼! 좀더 기다려보든가, 아니면 이 마을에서 자고 내일 새벽에 출발해.” 옆에서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까지 나서서 트럭은 위험하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이 사내들에게 잘 보여야 해!

소심하고 겁 많은 나. 갑자기 간이 졸아들며 위기감이 격렬하게 솟아오른다. 그래도 모험을 감행하기로 결의. 마침내 내 의지에 꺾인 이삭과 동네 청년들이 결국 앞장서서 트럭 운전사를 찾아나섰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던 운전사에게 다가가더니, “이 여자는 한국에서 온 내 친구이니(‘애먼 짓 할 생각은 하덜 말어!’ 이런 뉘앙스다), 카리마바드까지 안전하게 태워다 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되는지 트럭 번호를 적고, 자신의 집과 회사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도착하는 대로 전화하라고 당부하는 이삭. 덧붙이기를, 이 운전사는 다행히도 도시 사람이 아니라 훈자 사람이라 믿을 만하다고 한다.

카라코롬 고속도로 옆에 위치한 산간 마을 굴미트. 뾰족한 산과 빙하가 유명하다. (사진/ 김남희)

파키스탄에 넘어온 이후 꼭 한번은 타보고 싶었던, 그 화려한 트럭이 아닌가. 설레는 마음 반, 긴장된 마음 반으로 트럭에 올라타니 자그마치 네명의 남자들이 내게 인사를 건넨다. 어두운 불빛을 배경으로 드러나는 검은 수염의 사나이들. 간이 푸~욱 졸아든다. 다행히 이 남자, 비샤라프. 중국에서 옷과 신발을 사들여 라호르에 내다파는 무역업을 하는 그는 영어를 조금 했다. 아, 이 사나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두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을 했는지!

혹시라도 딴 맘 먹을까봐, 우호적 분위기로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되도록 종교나 정치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하고, 파키스탄 음식이나 음악 이야기, 비샤라프의 가족 이야기를 화제로 끌고 나가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달리던 트럭이, 마침내 두 시간 만에 카리마바드에 섰다. 숙소에 들어서니 굴미트 마을의 이삭이라는 청년이 내 도착 여부를 묻는 전화를 걸어왔다는 메모를 전해준다. 고마운 이삭. 모험으로 가득했던, 아드레날린이 팡팡 솟구쳤던 하루! 혼자 다니는 일의 짜릿함을 만끽한 트레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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