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 “모든 셈은 알라가 하실 거야.”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사례 1
마이단에서 두 시간 거리인 칼람으로 트레킹을 나섰다. 이상기후로 겨울 내내 폭설이 내렸다더니, 이곳으로 오는 길도 며칠 전에야 겨우 뚫렸다고 한다. 도로 곳곳에 생긴 눈터널 사이를 차는 거북이처럼 기었다. 마이단에는 봄이 오고 있었는데, 칼람에 오니 아직 겨울의 서슬이 퍼렇게 살아 있다.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전나무 숲으로 갔다. 맵고 알싸한 공기와 따뜻한 햇살,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하는 설산. 숲에 들어선 것만으로 숨이 편안해진다. 숲에서 나오니 버스는 이미 끊겼다. 도로에서 차 얻어타기를 시도했다. 막 마을에 들어선 나딤은 차 한잔을 마신 뒤 우리를 마이단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에게 차와 다과를 대접받고 마이단으로 출발했다. 우리 때문에 일부러 두 시간을 달려온 뒤, 다시 그 길을 되짚어 돌아가야 하는 나딤.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시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 말에 그가 대답했다. “나를 위해 기도해줘. 모든 셈은 알라가 하실 거야.” 알라의 셈은 알라의 것으로 남겨놓고, 우리는 음료수와 담배 한 보루로 우리의 작은 셈을 치렀다. / 2005년 3월12일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둥실.
사례 2
오늘은 훈자로 올라가는 날. 마이단에서 카자켈라로, 다시 푸리로, 그곳에서 히치하이킹으로 차를 얻어탔다. 샤미르자 아저씨(사실 나이는 나보다 한살 어린데, 도저히 또래라고 볼 수 없는 성숙한 외모로 인해 그냥 아저씨로 부르기로 했다)를 비롯한 세명의 남자들이 길기트 근처의 칠라스로 가던 중이었다. 지프차의 뒤칸에 대형 배낭 세개와 작은 배낭들을 싣고 나니 사람의 몸은 억지로 구겨넣어야 했다. 길은 멀고 험했다. 샤미르자 아저씨는 가는 길 내내 식당에서도, 찻집에서도 ‘손님’인 우리가 돈을 내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새벽 2시. 길기트를 120km 남기고 칠라스의 샤미르자 아저씨 집에 도착했다. 우리를 위해 호텔을 잡아주겠다는 아저씨를 말려 아저씨 집 거실 바닥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피곤한 탓인지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차파티와 계란, 뜨거운 차로 아침을 먹고 난 뒤 샤미르자 아저씨는 우리들을 길기트까지 태워다주셨다. 다시 세 시간을 되돌아가야 하는 아저씨들께 담배와 아이들 간식거리 등을 사드렸다. 돌아서는 우리 뒷모습에 아저씨는 오래 눈을 두고 계셨다. / 2005년 3월14일 흐리고 빗방울 똑똑.
사례 3
이슬라마바드에서 다시 훈자로 올라가는 버스에서였다. 밤 11시 반. 버스가 잠시 섰다. 화장실을 찾는 내게 식당 앞에 서 있던 젊은 남자가 안내를 자청했다. 건물 안의 화장실로 데려간 그가 “OK?” 하더니, 내 팔을 고의적으로 ‘꼬-옥’ 잡았다 놓는다. 이게 말로만 듣던 파키스탄 남자들의 외국인 여성에 대한 성추행이라는 걸 깨달은 건, 이미 그가 번개처럼 사라진 뒤다. (남들처럼 엉덩이를 잡혔다면 사리분별이 좀더 빨랐을 텐데, 담력이 부족한 놈에게 팔을 잡히는 바람에 잠시 멍하니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뒤 그놈을 찾아 두리번거렸더니, 우리 버스의 승객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자초지종을 말하니, 바로 근처에서 차를 마시던 경찰(장총을 든 세명의 경찰!)에게 일러 순식간에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들었다. 마치 흉악범이라도 되는 듯, 그 자식을 잡아야 한다고, 파키스탄 남자들 얼굴에 먹칠하는 놈이라며 나보다 더 분노하는 동네 사람들. 얼굴을 기억할 수 있겠냐고, 어디서 만났냐고, 가게를 하나씩 뒤져보자고 흥분한다. 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해, 그 사나이가 잡혔다 하면 현장에서 돌팔매질로 사망할 것 같은 분위기라, 괜찮다며 내가 그들을 달래야 했다. 이제부터는 절대로 화장실도 혼자 가지 말라고 당부하는 우리 버스의 승객들.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 / 2005년 3월27일 훈자로 올라가는 버스에서.
사례 4
다시 버스가 섰다. 목적지인 알리아바드를 한 시간 남기고. 도로변에서 한 가족이 베고 있던 나무가 도로를 가로지르며 쓰러질 듯 말 듯 공중에 걸리는 바람에 차량 통행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였다면 어땠을까? 차들이 급정거하고, 경적을 울려대고, 욕설이 오가지 않았을까? 여기 사람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버스에서 내려서 나무 위로 올라가 도끼질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다 함께 힘을 모아 나무를 치우고 도로를 정리한다. 그 상황에 대해, 버스를 세우고 기다려야 하는 그 몇십분의 기다림에 대해, 아무도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없다. 몸에 밴 인내인가, 협동의 습관인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지금 이 장면이 몹시 아름답다는 것! / 2005년 3월28일 훈자로 오는 길에서.

‘협동’은 파키스탄 사람들이 살아온 오래된 방식이다. 마을 남자들이 다 함께 수로를 청소하고 미리 준비한 음식을 나누고 있다. 훈자. (사진/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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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단과 칠라스에서 만난 동네 꼬마들(맨 왼쪽). 3월 중순이었는데도 아직 겨울의 흔적이 짙던 칼람(가운데). 가축을 먹일 꼴을 베어오던 칠라스 동네 아저씨가 웃고 있다(오른쪽). (사진/ 김남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