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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히말라야의 신과 거리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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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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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길 위에서 주운 한 마디]

“서로 다른 풍경, 낮은 땅으로 내려오는 신들”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풍경 하나.
인도의 델리에서 네팔의 카트만두까지는 버스로 30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버스는 델리를 출발한 지 2박3일 뒤인 51시간 만에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그사이 더러움의 최상급에 오른 국경의 밥집에서 먹은 계란 샌드위치가 설사를 불러왔고, 감기가 악화되어 끙끙거려야 했다. 국경을 넘어 네팔로 들어선 이후에는 정치상황- 네팔은 ‘마오이스트’라 불리는 반군들과 정부군간의 내전이 몇년째 계속되고 있었다- 으로 인한 지독한 검문들이 곳곳마다 이어졌다. 그때마다 버스는 선 채로 알몸수색을 당해야 했다.


타멜 거리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릭샤 운전사들. 신의 땅 네팔은 외국 여행객과 가난한 주민들의 엇갈린 풍경을 보여준다.

장난감 총을 해부하던 군인들

한번은 눈매가 날카롭게 생긴 젊은 군인이 수색을 시작했다. 유난히 긴 수색 끝에 그가 짐칸에서 찾아낸 건 비닐봉지에 포장된 장난감 총. 누가 봐도 뻔한 장난감 총을 꼼꼼하게 살펴보더니 마침내는 봉지를 찢고 본격적인 해체를 시도해 내부를 꼼꼼히 들여다본다. 그것도 모자라 총의 주인에게 왜 샀냐, 어디서 구입했냐, 얼마 줬냐 따위를 물으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개머리판으로 그의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소리치고 싶었다. “네 눈엔 이게 진짜 총으로 보이니? 이 바보 같은 놈아!”

먼지투성이가 되어 카트만두의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그날 밤부터 본격적인 배앓이가 시작됐다. 다음날 저녁까지 꼼짝을 못한 채 침대에 드러누워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로 달려가기만 사십여 차례. 이렇게 인도에서 네팔로의 국경 넘기는 늘 길고 고된 여정과 험한 도로 사정, 반복되는 검문과 지체로 사람의 몸과 마음을 골고루 지치게 만들었다.

풍경 둘.
설사를 앓으며 침대에 누워 있는 사이 디왈리 축제가 끝났다. 사람보다 신상이 더 많다는 나라에서 신을 기리는 축제는 많고 많지만 그 중에서도 디왈리 축제는 모두에게 인기 있는 축제다. 재물과 부를 가져다주는 여신 락시미를 위해 사람들은 집집마다 금잔화를 내건다. 이 꽃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 남편을 잡아가려는 악마에게 어진 아내가 간청했단다. 이 꽃이 시들 때까지만 그와 함께 있게 해달라고. 악마는 허락했고, 꽃은 영원히 시들지 않았다.

거리의 신상에 꽃을 바치는 네팔인. 사람보다 신상이 더 많다는 네팔의 거리 곳곳은 이처럼 작은 신전과 신상으로 가득하다.

디왈리 축제의 시작은 이 노란 금잔화를 내걸고 집을 청소하거나 새로 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축제의 밤이 되면 여신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집안으로 향하는 길목에 촛불을 밝히고 계단마다 꽃을 뿌려놓는다. 국경을 넘던 날,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거리는 온통 노란 꽃의 물결이었다. 그때 지쳐 있던 내 눈에 들어온 풍경. 썩은 물이 흐르는 개천가에는 천막을 치고 살아가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천막 입구에 매달린 노란 꽃 몇 송이. 신은 부자와 가난한 이, 권세 높은 이와 미천한 자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찾아오심을, 간절한 마음 하나가 곧 신에게 닿는 길임을, 찢어진 천막 위로 위태롭게 걸린 금잔화 몇 송이가 말해주고 있었다. 가장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조차 신의 이름을 부르는 곳. 디왈리는 끝났지만 여전히 노란 금잔화는 시들지 않고 집집마다 걸려 있었다. 마른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풍경 셋.
몸살에서 회복된 뒤 시내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 안에 있던 내게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돈을 주지 않는 게 원칙인 나는 애써 모른 척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고 말았다. 구걸하는 아이들 뒤에서 본드를 불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기껏해야 열살에서 열두어살 남짓, 그 어린 것들이 비닐봉지에 본드를 짜넣고 그걸 입으로 가져가 탐욕스레 빨아들이고 있었다. 본드를 마시는 모습을 본 것도 처음이었지만, 그 주인공들이 그토록 어린 아이들이라는 게 나를 절망케 했다.

내가 곧 이 땅을 사랑하게 되겠구나…

저 아이들은 누구의 잘못으로 저렇게 내몰린 것일까? 저토록 어린 아이들이 고작 본드에서나 삶의 위안을 찾도록 내모는 사회라니….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와 자괴감이 내 안 가득 차올랐다. 눈이 풀린 아이들이 본드를 마시고 있는 풍경의 뒷배경은 타멜이었다. 카트만두의 여행자 거리 타멜. 그곳에는 낡은 배낭을 메고 등산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밝은 표정으로 활보하고 있었다.

창마다 노란 꽃이 내걸린 축제의 끝과 본드 부는 아이들, 배낭을 멘 중년의 외국인들로 붐비는 타멜 거리. 그 엇갈리는 풍경 사이로 맑은 날이면 히말라야의 줄기들이 가까이 내려앉고는 했다. 히말라야와 신의 땅 네팔은 그렇게 서로 다른 그림으로 내게 다가왔다. 내가 곧 이 땅을 사랑하게 될 것임을, 헐거워진 바지를 추스르며 숙소의 옥상에서 별을 보던 밤,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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