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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끝나지 않는 삶의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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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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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길 위에서 주운 한 마디]

인도- “구루는 만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만날 수 있다”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벌써 며칠째 설사에 열감기… 아주 미치겠다. 빌어먹을 인도 돌팔이 의사가 준 약 먹고 마구 구토하고 밥도 못 먹고…. 여기서 죽을 운명은 아니었는지 지금 겨우 살아났다. 아~ 싫다. 가는 길마다 똥개인지 소인지 같은 것들 때문에 냄새 나고, 맨날 가던 식당도 몇번 헤매서 가야 하고. 인도 와서 뭔가 나의 비전을 찾아가려고 했는데. 엿~ 생존이 목표다. 혼자도 서러워 죽겠는데 그딴 거 생각할 시간 없다. 인도 꼬맹이들 귀엽다고 쓰다듬어주면 돈 내놓으라 그러고 뱃사공 잡넘들 배 떠나면 맨날 말 바뀌고, 역시 한국이 최고다. 돌아가면 국방의 의무나 열심히 해야겠다.”


“인도에 와서 마음속으로 가장 많이 한 말. “속았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속고 속아 넘어가면서 하는 인도 여행….”

“동정심을 계속 유발시키고, 끝내 무감각하게 만드는 인도.”

“왜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인데…. 한국에 내려놓고 왔던 것들. 돌아간다고 모두 다시 짊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도에 와서 느낀 단 하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많구나.”

“돌아가서 사랑해야지. 사람들을, 작은 것들을, 소중한 것들을, 그리고 내 삶을.”

-바라나시의 한국식당 ‘라가카페’의 방명록에서.

그악스럽게 온몸으로 부딪쳐 살아내는 생활에도 축복이 있을까. 인도 자이푸르의 어느 노점상.

나는 여전히 가진 게 너무 많아

인도에 머물렀던 6개월. 인도는 내게 풀지 못하는 수학 문제 같은 것이었다. 그곳에서 내 상식은 여지없이 흔들리고 깨어졌으며 사람에 대한 믿음, 변화와 발전에 대한 믿음 또한 늘 시험받아야 했다. 교양이나 부끄러움에 대한 어떤 인식도 없이, 그저 그악스럽게 온몸으로 부딪쳐 살아내기에 급급한 생활, 그 생에도 신의 축복이 깃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비루하고 남루한 생인데, 이들에게도 내일이 있고, 그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을까? 웃었던 다음날이면 울어야 했고, 행복한 하루가 저물면 어김없이 가슴 쓰린 날이 찾아왔다. 희망의 희미한 미소를 보았다 싶으면 어두운 절망이 길게 드리워지고는 했다.

그곳에서 나를 어렵게 만드는 이들은 아이들과 여자들이었다. 어떤 교육적 혜택도 받지 못하고 방치된 아이들, 구멍 난 독에 물붓기처럼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물긷기와 집안일에 치인 여자들을 대할 때면, 나는 흔들렸다. 그 가난한 여자들의 귀와 코, 목은 물론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의 수많은 반지, 팔목과 발목을 감싼 숱한 장신구들을 볼 때면, 어지러웠다. 20대의 나였다면, 보석으로 치장되고 가두어진 굴레를 벗고 나오라고 말하고 싶었겠지.

30대 중반의 나는, 그것들이 당신의 삶을 위안해준다면, 끌어안고 거기에 기대어 견디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혼율은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하는 반면 결혼한 여성의 자살률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이 땅에서, 당신을 위안해주는 것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그게 미망이든 미혹이든, 기대어 견디라고, 나는 가만가만 속삭이고 있었다. 그곳의 가난은 내가 자란 땅의 가난과는 달랐다. 세습되고, 확대되는, 벗어날 길 없는 참혹한 가난. 여성이든, 남자든, 노인이든, 아이든, 그곳에서 자유로운 삶은 보이지 않았다.

자유롭고자 하는 욕망마저, 다 내려놓고자 하는 열망마저, 내가 가진 욕심일 뿐이라는 것을, 아무것도 내려놓을 것이 없고, 자유에 앞서 생존이 위협받는 사람들 곁에서, 나는 여전히 가진 게 너무 많아서 안도하는 속물일 뿐이었다. 1797년에 괴테는 인도에 관한 이런 말을 남겼다. “십년만 젊었어도 나는 기필코 인도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내 자신 속에 있는 어떤 것들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200년의 세월이 더 흐른 지금, 인도가 주는 깨달음은 여전하다. 인도는 냉혹하게 드러냈다. 내 안에 숨어 있던 얄팍한 인내와 위선적인 관용, 그 턱없이 좁은 이해의 폭을.

고단한 삶을 위무하는 것은 미소 짓는 환한 얼굴이다. 인도의 여학생들.

견디는 법, 기다리는 법

인도가 내게 가르친 것은 견디는 법, 기다리는 법이었다.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고, 열리지 않는 인터넷을 기다리고, 숨 막히는 더위 끝에 올 비를 기다리고, 더러운 몸과 먼지투성이의 몸을 씻을 더운 물 한 동이를 기다리기. 적정인원을 격정적(!)으로 초과한 버스의 덜컹거림을 견디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구걸의 손길을 견디고, 더러운 식당과 넘치는 사기꾼들을 견디기. 그리고 끝내는 삶을 견디는 법, 삶에 기대어 위무 받는 법을 배워야 했다.

삶이 끝없는 기다림과 견디는 일의 연속이라 해도, 희망이 절망의 또 다른 얼굴이라 할지라도, 삶을 구원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미소 짓는 사람의 얼굴임을, 내게 내밀어진 더운 손길로 인해 삶은 살아볼 만하다는 것을, 인도는 내게 가르쳤다. 간디가 그랬다. ‘구루(영적 스승)는 만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만날 수 있다’고. 삶의 또 다른 창, 다른 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인도는 거대한 학교이자 끝나지 않는 삶의 수업을 가르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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