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길 위에서 주운 한 마디]
인도 케랄라- “나에게 종교는 음악이다”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덥다. 이른 오전인데도 햇살이 맹렬한 기세로 달아오르고 있다. 바람이 분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습기 차고 짠 내 나는 바람. 포구에는 중국식 그물을 쳐놓고 고기를 잡는 어부들, 뭍으로 올라오면 갓 낚은 생선과 새우를 파는 작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회칠한 흰 벽과 선홍색 기와지붕, 푸른색 담장. 네덜란드와 포르투갈과 영국식 건물이 아무렇지 않게 뒤섞여 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 새파란 하늘 아래에는 뾰족 첨탑의 하얀 교회당.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곳. 하지만 이 마을이 숨기고 있는 가장 큰 보물은 늙은 나무들이다. 성스러운 느낌마저 불러일으키는, 오래되어 늙고, 품 넓은 나무들. 그 나무들이 일제히 꽃을 피워 거리는 환하다. 꽃 핀 나무들을 보면 내 마음의 가지에도 환한 등불이 내걸린다.
보름달 아래 피어나는 손짓들
여기는 남인도의 케랄라(Kerala)주, 바다를 접한 작은 포구 포트 코친(Fort Kochin). 이슬람 사원, 16세기의 유대교 회당과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 프란시스 교회가 어우러져 있고, 500년을 넘긴 포르투갈식 건물이 아직도 의연하게 서 있는 곳. 이 어여쁜 마을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카타칼리(Kathakali) 공연을 보러 가는 일이다. 분장에만 2시간이 걸리는 케랄라의 민속춤. 비록 관광객용으로 축약된 형태이긴 해도, 손짓과 눈동자의 움직임만으로 모든 이야기를 표현해내는 능력은 경이롭다. 화려한 의상과 다채로운 색깔의 분장, 의미를 담은 각각의 손동작들. 보름달 아래 밤을 새우며 12시간 동안 행해진다는 진짜 공연이 궁금해진다. 왕족만이 관람하던 무용, 왕실의 몰락과 함께 사라지던 카타칼리를 되살린 건 케랄라 출신의 시인 나라야나 메론이다.
언어로 삶의 숭고함을 노래하는 시인은, 언어 없이 삶을 재현해내는 춤에 매료되었던 걸까. 공연이 끝나면 음악회가 이어진다. 타블라와 금속타악기 데가, 탬버린처럼 생겨 북소리와 탬버린 소리가 같이 나는 겐제라, 그리고 피리의 합주. 13년 동안 타블라를 쳤다는 청년의 손가락 놀림은 정교했다. 남자의 손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한숨이 나왔다. 음악회가 끝난 뒤에 내 동행자- 그녀의 직업은 성악가다- 가 부르는 ‘새타령’에 손가락이 긴 청년이 반주를 넣었다. 돌아오는 길, 숨가쁘게 차오르는 부푼 달을 보며 우리는 말없이 싱긋 웃는다.
다음날, 물길 유람을 나선다. 개펄, 호수와 강을 가로지르는 운하의 거대한 연결망이 해변에서 내륙쪽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케랄라. 이 물길을 따라가는 ‘내륙 물길’(Backwaters) 여행은 케랄라 관광의 하이라이트. 사공이 노를 젓는 작은 배에 올라타 좁은 물길 사이를 헤치며 마을을 둘러본다. 수로 유람에서 돌아오면 다시 공연장으로 간다. 오늘은 시타르와 타블라 합주, 북인도 음악이다. 신의 은총을 주로 노래하는 종교적인 남인도 음악에 비해 북인도 음악은 왕실을 위한 궁중음악이 발달했다고 한다. 음악회가 끝난 뒤 한 일본인 관광객이 물었다. “자신의 종교와 상관없이 이슬람, 힌두 음악을 가로지르며 연주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시타르 연주자가 대답한다. “나에게 종교는 음악이다. 연주하는 사람에게는 신의 이름을 떠나, 음악 자체가 이미 위대한 종교이다.” 우문에 현답이 아닐 수 없다.
“여기 인도 맞아?”
사람들은 상아와 향신료를 얻기 위해 3천년 전부터 케랄라로 항해했다. 1498년에 바스코 다 가마가 이 땅에 상륙한 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인들이 향신료 거래를 선점하기 위해 아랍 상인들과, 자기들끼리 다투면서 유럽 식민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케랄라는 1957년 세계 최초의 자유선거에 의한 공산주의 정부를 수립했다. 토지와 소득의 공정 분배, 낮은 영아사망률 및 인도 최고를 자랑하는 91%의 식자율이 성취된 이곳은 인도에서 가장 진보적이며 부유한 주에 속한다. 그래서 케랄라를 여행하다 보면 ‘여기 인도 맞아?’ 하는 의문이 솟고는 한다. 거리는 놀라울 정도로 깨끗하고, 그악스럽던 걸인들도 사라졌고, 사람들은 여유 있고 친절하다. 바나나 잎에 담겨 나오는 탈리(인도식 백반)는 싸고, 양은 무제한이라 지갑이 얄팍한 여행자를 행복하게 한다.
풍경만으로도 충분한 포트 코친에서, 내게는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동행이 있었다. 그녀가 온 이후, 나는 한층 느긋해지고, 말도 많아지고, 자주 웃고 있었다. 그녀의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수다, 따뜻하고 쾌활한 마음, 타고난 밝음은 함께 있는 사람까지 전염시키는 힘이 있었다. 해병대 훈련보다도 더 ‘빡셌’던 남인도 일주기간 동안, 나는 가끔 화장실 같은 으슥한 공간에서 중얼거리고는 했다. ‘이렇게 행복해도 괜찮은 걸까?’라고. 완벽한 동행자로 인해 여행이 얼마나 상승 무드를 탈 수 있는지, 천국이 얼마나 가까이 내려앉는지를 체험하던 날들. 포트 코친은 내게 그녀, 혜준이가 들려주던 노래와 미소가 있어 인도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날들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케랄라는 음악과 춤과 물길의 도시다. 중국식 어망으로 고기를 잡는 어부들.

대사 없이 손짓과 눈짓으로 전달하는 춤인 카타칼리.

쪽배를 타고 수로 유람을 하는 관광객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