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논리학… ‘잠언’ 아닌 사상투쟁의 결과로 읽어야
공자의 ‘정명론’에 이어 이번호부터는 노자의 ‘무명론’(無名論)을 검토해보려 한다.
왕디엔지(汪奠基) 등 중국 고대 논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노자의 논리사상을 ‘무명론’이라고 부른다. 고문헌 가운데는 위진시대 진(晋)나라의 학자 하안(何晏)이 <무명론>(無名論)이라는 책을 썼다는 기록이 있지만 오늘날 전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내용이 <열자>(列子)에 대한 장잠(張湛)의 주에 일부 인용돼 있어 그 논리를 엿볼 수는 있다. 하안은 이렇게 말한다. “백성들이 명예롭게 여기는 바는 이름이 있는 것이다. 백성들이 명예롭게 여기지 않음은 이름이 없는 것이다. 대저 성인은 이름 없음을 이름으로 삼고, 명예 없음을 명예로 삼는다. 이 말은 이름 없음이 길(道)이 되며 명예 없음이 큼(大)이 된다는 말이니, 그러므로 대저 이름 없음이 (오히려) 이름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으며, 명예 없음이 (오히려) 명예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짧은 말이지만 이 구절만 보더라도 노자의 ‘이름 없음’(無名)에 대한 하안의 이해란 단순히 ‘나서서 이름 날리려고 설치지 않음’ 정도의 범속한 이해에 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노자의 무명론이란 하안 식의 이해가 아니라, 노자의 논리사상 전반을 말하는 것임을 우선 밝혀두기로 하겠다.
형식논리학 바깥의 논리학
노자라는 할아버지에 대한 일반인의 이미지를 두고 볼 때 그의 ‘논리사상’을 논한다는 게 좀 뜻밖으로 보일는지 모르겠다. 탈속(脫俗)의 경지를 추구한 노자 할아버지가 좀스럽게 무슨 ‘논리’를 따졌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노자 할아버지가 아니라 노자 할배의 할배라 해도 자신의 사상을 세상에 펴길 원한다면 어떤 논리학이 됐든 그 논리학의 규율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논리학이란 고대 그리스의 철인들이 정리한 형식논리학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비롯한 형식논리학만이 유일무이한 논리학이라는 주장은 (매우 간파하기 힘든 것이긴 하지만) 유럽중심주의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의 각 대학에서 교양 과목으로 개설한 모든 ‘논리학 개론’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뼈대는 거의 100% 서양의 형식논리학이다. 그러나, 프랑스 여성학자 이리가레이의 말투를 빌리자면, “우리가 같은 논리학만을 되풀이해 받아들일 때 우리는 같은 역사를 되풀이할 것”이다. 우리가 형식논리학만을 ‘보편적인 논리학’이라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 결론까지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형식논리학의 결론을 넘어선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할 때, 우리는 형식논리학과는 다른 논리학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때의 ‘다른’ 논리학이 반드시 형식논리학과 모순을 일으킨다고 볼 필요는 없다. 형식논리학을 포함하면서 형식논리학으로는 근접할 수 없는 다른 세계나 경지를 말하는 어떤 논리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계 독일인 언어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의 끄트머리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지어다”(Whereof one cannot speak, thereof one must be silent. 7)라는 말을 남겼다. 인간의 사유는 언어의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더러 어떤 인간의 사유는 언어로 구성할 수 있는 세계를 넘어서서 사유하기도 한다. 그런 사유에 도달한 철학자는 더러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냄으로써, 또는 새로운 어법을 고안해냄으로써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려 해왔다. 그렇다면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말할 수 없는 것”이란, 말하는 사람이 속한 논리학의 세계에서 “그 논리학의 규율 안에 머무를 때는 말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가령 플라톤이 헤라클레이토스를 두고 “그리스어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 하고 있다”고 했을 때 그는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묶인 프로메테우스>에서 프로메테우스가 비통함을 토로할 때, 인간과 신의 언어 두 가지에 모두 능통한 메신저 헤르메스는 이렇게 말한다. “슬프다? 그런 말은 신에겐 없는 말인데….” 아이스킬로스는 이 한 마디 말로 신과 인간의 세계가 어떻게 다른지 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어떤 언어에 어떤 사태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면, 그 언어 사용자들에게는 그 사태에 대한 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럴 때 비트겐슈타인은 침묵을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의 침묵이 사유의 중지를 의미하는 게 아님은 물론이다.
공자의 드러남과 노자의 숨음
노자 할아버지가 만약 이른바 ‘탈속’의 경지를 추구한 철인이었다면, 그리고 그런 탈속의 경지를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여 <도덕경>이라는 글을 남겼다면, 그는 범속의 논리학과는 다른 탈속의 논리학을 자기 사유의 세계에 전제로 빚어두어야 한다. 그의 사유가 형식논리학을 포함해 다른 기성의 논리학의 규율을 따를 필요도 없고, 반드시 충돌을 일으킬 필요도 없다. 만약 그가 형식논리학과는 다른 어법으로 이 세계에 대해 성공적으로 발언하고 있다면, 그의 사유에는 어떤 다른 논리학의 규율이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런 노자의 논리사상을 ‘무명론’이라고 부르겠다.
언뜻 보기에 공자와 노자 두 할아버지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공자는 세상에 숨기는 일이 없이 산 할배고, 노자는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는 데 성공한 할배다. 공자는 말한다 : “그대들은 내가 뭘 숨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난 뭘 숨기는 게 없는 사람이다. 내가 행한 일 가운데 그대들에게 드러내 보여주지 않은 바가 없는 자가 바로 나 구(丘)라는 사람이다.”(<述而> 23) 공자의 이 말은 과장이나 레토릭이 아니다. 그는 3천여 제자들의 6천여 눈동자가 살펴보는 가운데 살다 간 사람이다. <논어>에는 그가 생강을 좋아했다거나,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의 노래를 들으면 반드시 앵콜을 청한 뒤 자신도 답가를 불렀다거나, 심지어는 희대의 색정녀 위령공의 아내 남자(南子)를 독대했다거나 하는 따위의 일상적 삶의 모습들이 가감없이 기록에 남아 있다.
노자는 이와 반대로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는 데 누구보다도 성공한 사람이다. 치밀한 사실탐구의 정신으로 가득찬 중국 역사학의 기념비적 저작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노자의 자취는 자욱한 안개 속처럼 미궁에 빠져 있다. 잘 알려진 설화이지만, 노자는 주나라의 왕실 도서관장을 지내다 주나라가 개판 오분전으로 변해가는 꼴을 눈뜨고 보기 싫어 들꽃 속에 묻히려 한 사람이다. 그가 중국 서쪽의 험준한 함곡관이란 관문을 나서려는데 관문지기 윤희가 그의 사람됨을 알아보고는 소매를 부여잡아 5천자에 이르는 <도덕경>을 지어주고 홀연히 사라졌다는 게 그나마 노자와 관련한 가장 자세한 설화다. 그는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가 아니라 ‘얇디얇은 책 한 권으로 남은 사내’다. <도덕경>은 주인이 떠나버리고 텅 빈 채 남아 있는 잘 정돈된 방과도 같다. 그러나 아무리 잘 정돈된 방이라 할지라도 예민한 관찰자는 거기서 주인의 격정이나 고뇌의 흔적을 발견할 것이다. 가령 가지런히 놓인 음반 한 장에서도 그가 즐겨 듣는 음악을 통해 그의 감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말이다. 적절한 비유라고 주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개인적으로 솔직한 느낌은 이렇다. 자기 생각을 간결하고 정갈한 언어로 갈무리해둔 철학적 시편 <도덕경>에서 나는, 범행자가 잘 정돈해두고 떠난 살육 현장에서 타인의 머리카락이나 미세한 혈흔을 발견한 듯한 섬뜩한 느낌을 받을 때가 더러 있다. <도덕경>에서 격렬했던 당시의 사상투쟁의 흔적이 발견될 때를 말하는 것이다. <도덕경>을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여든한가지 이야기”로 읽는 것보다 이렇게 치열한 사상투쟁의 결과로 읽는 편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더 가까이 가는 길일 터이다.
한 권의 책으로 남은 사내
중국 고대 철학사에는 연구자들이 흔히 “그 사람, 그 책 문제”(其人其書問題)라고 부르는 게 있다. 가령 <관자>라는 책은 “관중 선생님”을 타이틀로 내걸고 있지만, 그 책의 지적소유권을 관중에게만 돌릴 순 없다. <장자>나 <순자> 같은 책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관중이나 장자, 순자의 글도 포함되어 있지만, 일쑤 제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사상적 필요에서 만들어낸 글을 끼워넣어 숫제 그 학파의 ‘논문집’으로 변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노자>의 경우는 “그 사람, 그 책 문제”가 가장 복잡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 문제는 우리의 주제와 조금 거리가 있기 때문에 상론할 겨를은 없다. 개인적으로 오늘날 전하는 <노자> 또한 다른 고대의 서물과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형성된 것은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그 사상의 원형을 제시한 어떤 인물은 있었다고 본다.
이제 노자의 무명론으로 들어가자. <노자>의 첫 장을 열면 거기서 우리는 금세 노자 당대에 벌어졌던 치열한 사상투쟁의 정점에 서 있는 발언을 만난다 : “길을 길이라 말하면 늘 그러한 길이 아니다. 이름을 이름지으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1장)

일러스트레이션/김성희.
노자라는 할아버지에 대한 일반인의 이미지를 두고 볼 때 그의 ‘논리사상’을 논한다는 게 좀 뜻밖으로 보일는지 모르겠다. 탈속(脫俗)의 경지를 추구한 노자 할아버지가 좀스럽게 무슨 ‘논리’를 따졌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노자 할아버지가 아니라 노자 할배의 할배라 해도 자신의 사상을 세상에 펴길 원한다면 어떤 논리학이 됐든 그 논리학의 규율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논리학이란 고대 그리스의 철인들이 정리한 형식논리학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비롯한 형식논리학만이 유일무이한 논리학이라는 주장은 (매우 간파하기 힘든 것이긴 하지만) 유럽중심주의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의 각 대학에서 교양 과목으로 개설한 모든 ‘논리학 개론’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뼈대는 거의 100% 서양의 형식논리학이다. 그러나, 프랑스 여성학자 이리가레이의 말투를 빌리자면, “우리가 같은 논리학만을 되풀이해 받아들일 때 우리는 같은 역사를 되풀이할 것”이다. 우리가 형식논리학만을 ‘보편적인 논리학’이라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 결론까지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형식논리학의 결론을 넘어선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할 때, 우리는 형식논리학과는 다른 논리학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때의 ‘다른’ 논리학이 반드시 형식논리학과 모순을 일으킨다고 볼 필요는 없다. 형식논리학을 포함하면서 형식논리학으로는 근접할 수 없는 다른 세계나 경지를 말하는 어떤 논리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계 독일인 언어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의 끄트머리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지어다”(Whereof one cannot speak, thereof one must be sil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