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길 위에서 주운 한 마디]
인도 바라나시 - “사람들 속에서 신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을 때”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유구한 역사를 증명하는 장대한 유적, 전설처럼 남은 화려한 왕궁과 사원,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빼어난 자연경관. 이런 것들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면서, 해마다 수십만의 사람들을 인도와 전세계로부터 불러들이는 도시가 있다. “역사보다 오래됐고, 전통보다 오래됐고, 심지어 전설보다도 오래된 도시”라고 마크 트웨인이 묘사한 곳. 지난 2천년 동안 학문과 문명의 중심지였으며, 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도시로 꼽히는 바라나시(Varanasi)다. 이 도시에서 죽으면 모크샤(탄생과 죽음의 순환으로부터의 해방)를 얻을 수 있으며, 갠지스 강물에 몸을 씻기만 해도 이 생의 모든 죄가 사해지는 곳. (나 역시 그동안 지은 숱한 죄를 씻어버리고 싶었지만, 타다 만 시체토막이 둥실 떠다니는 그 물에 차마 몸을 담그지 못해 그냥 이 모든 죗값을 치르기로 했다.)
타다 만 주검이 떠다니는 강물
8년 전 여름, 처음 바라나시를 찾았을 때, 화장터 근처의 숙소에 방을 얻었다. 빈방이 없다면서 그 방을 내주던 직원의 애매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는데, 다음날 눈을 뜨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찌는 듯한 더위로 창문을 열고 잠든 사이 화장터에서 날아온 재가 온몸을 뒤덮은 거였다. 그날 아침의 화장터 풍경은 아직도 선연하게 남아 있다. 곡소리조차 없이 예사롭게 행해지던 화장, 불타는 시체의 손가락에서 슬쩍 반지를 빼내던 장작 때는 일꾼, 타다 만 시체가 떠다니는 강물로 양치를 하고 목욕을 하던 사람들. 화장하는 장면을 오래오래 바라보던 어느 순간, 윤회를 믿는다는 건 저토록 삶과 죽음을 경계 없이 받아들이는 것임을, 죽음은 삶의 또 다른 창을 여는 일일 수 있음을 깨달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지녔던 경계가 흐릿해져갔다. 죽음이 가까워져오면 어딘가로 사라진다는 코끼리들처럼, 사람에게도 어딘가에 생을 마감하기에 좋은 도시가 하나쯤 있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당시 바라나시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얼굴로 나를 흔들었다. 강가의 숙소에는 벽마다 이 도시에서 실종된 여행자들을 찾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타블라 같은 전통악기를 배우기 위해, 종교와 삶을 돌아보기 위해, 해시시를 피우기 위해,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그런 만큼 사고도 잦았다.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소문들은 끔찍했다. 화장터에서는 돈이 부족해 몸을 다 사르지도 못한 영혼들이 있는가 하면, 집 몇채의 가격이라는 백단나무로 온몸을 태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장 종교적인 도시에 잡범과 사기꾼이 우글거리고, 이곳에선 죽음조차 평등하지 않았다.
다시 찾아간 바라나시는 여전히 지저분하고, 더럽고, 소란했다. 미로 같은 골목으로 상여를 멘 사람들이 “람람 사떼헤!”(신은 진리다)를 외치며 지나가고,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길을 잃고, 소똥을 밟곤 했다. 이번에는 굳이 화장터에서 화장을 지켜보지는 않았다. 대신 밤마다 가트(강으로 난 계단)에서 행해지는 힌두교 예배를 참전했다. 강물 위로 꽃과 초를 띄우는 사람들 곁에서 망연히 앉아 있기도 하고, 예배를 보는 사람들 뒤에서 뜨거운 짜이 한잔을 마시며 의식을 지켜보고는 했다. 종교가 이렇게 인간의 일상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땅이 인도 말고 또 있을까.
이 도시의 종교는…
고백하건대, 내게는 힌두교를 향한 불신에 가까운 편견이 있다. 3억이 넘는다는 신들의 숫자, 코끼리 머리를 하고서 쥐를 타고 다니는 신, 소젖 짜는 소녀를 유혹하는 신, 부자가 되게 해주는 신, 공부를 잘하게 해주는 신이 따로 있고, 원숭이조차 신의 반열에 오른 종교. 역할을 나눠 인간의 자질구레한 삶의 영역을 속속들이 관장하는 신들이라니! 내 안에 남아 있던 엄숙주의가 인간의 모습을 한 신들은 그저 신화일 뿐이라고 속삭였다. 무엇보다 종교가 같은 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계급조차 줄을 세워 나누고, 그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종교는 인간이 홀로 침잠해 들어가는 저 높고 외롭고 쓸쓸한 것이라던 생각. 적어도 같은 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에게는 같은 대우를 약속하는 것. 그게 종교에 대한 내 기본적인 믿음이었다. 그런 믿음을 배반하는 이 도시가, 이 도시를 온통 아우르고 있는 종교의 색깔이, 나는 예나 지금이나 의심스러웠다.
베단타 신비주의자 라마크리슈나의 제자로서 세계인을 열광시켰던 인도인, 스와미 비베카난다는 말했다. “여러분이 만약 인간의 얼굴 속에서 신을 볼 수 없다면 구름 속에서 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겠습니까? 나는 여러분이 사람들 속에서 신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을 때, 그날부터 여러분의 신앙심이 깊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신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성스러운 죽음의 도시에서 들여다보는 인간의 삶은 여전히 비속하기만 했다. 그렇다 해도, 그건 오직 의심 많은 회의주의자, 나의 경험일 뿐.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돌아보고 싶을 때, 성과 속, 신성과 악성의 그 모호한 경계에 발 딛고 싶을 때, 바라나시는 한번쯤 머물 만한 곳이다.

하루 종일 시체를 태우는 연기가 타오르는 화장터 풍경.

강물에 꽃과 초를 띄우며 무언가를 기원하는 인도인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