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길 위에서 주운 한 마디]
모범답안이 정해진 나라를 떠나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일본인 청년 히데키를 만난 건 자이푸르의 동네 식당에서였다. 그때 난 역시 일본인 친구 마미코와 여행하던 중이었다. 셋 다 70년생 개띠, 동갑내기였다. “아니, 그 나이면 지금쯤 자기 나라에서 결혼해서 아이도 하나쯤 낳았고, 슬슬 옆구리 주변에 집중되는 살이 부담스러워지는데도 운동은 안 하고, 점점 ‘예스맨’이 되어가는 스스로를 부담스러워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너도 인생이 안 풀려서 떠돌아다니는 거야?” 그런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본인 친구들과 나의 여행 중독
나이 서른여섯에 우린 셋 다 싱글이고, 집도 없고, 모았다 하면 나가서 써버리고 돌아오느라 통장도 지갑도 늘 얄팍하기만 하고, 변변한 직장도 없는 상태였다. 오직 담보처럼 지닌 거라고는 아직 꺾이지 않은 고집과 튼튼한 두 다리, 세상과 사람을 향한 열정과 호기심뿐. 남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지만, 가끔 남들이 가진 게 부러워지기도 하는 나이. 새 꿈을 찾기엔 왠지 늦은 것 같고, 지금껏 지녀온 꿈은 꿈으로 남겨둬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애매한 나이. 그래서일까. 우리는 이야기가 잘 통했다.
히데키는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파리-다카르 오토바이 랠리’를 보고 무릎을 쳤다. “저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라고. 스무살 때였다. 하지만 ‘참가비 2억원’이라는 말에 눈물을 머금고 꿈을 접었다. 그 뒤 대학을 졸업하고 우편물 배달 회사에 취직해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돈을 모았다. 1억원이 모이던 날, 그는 오토바이 혼다 XR 400을 구입한 뒤 러시아로 떠났다. 지난 2년 반 동안 러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동, 이란,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에 들어왔다.
이제는 제법 낡아버린 그 오토바이로 앞으로 3년 정도 더 오스트레일리아와 미대륙을 돌아볼 계획이다. 그에게 이 여행은 스무살 시절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기에 고된 여정도 행복을 앗아가지는 못한다. 일본에 돌아가서 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남미에서 정착하고 싶다는 히데키. 며칠 뒤면 현재 오토바이로 세계여행 중인 일본인들(그들은 3년째 혼자 여행 중인 여성, 2년째인 커플, 1년 반을 넘긴 남성이다.)이 바라나시에 모일 예정이라 설레며 기다리는 중이란다.
내 친구 마미코는 어떤가. 8년 전 베트남 북부의 산간지역 사파에서 만난 마미코는 만나자마자 마음이 통해 베트남을 함께 여행했다. 그 인연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는 그녀 역시 결혼할 생각도 없이, 정규 직업을 갖지도 않고, 아르바이트나 계약직으로 이 회사 저 회사를 전전하며 돈을 벌어 일년에 몇달은 꼭 여행을 나오는 여행 중독자의 삶을 살고 있다. 마미코와 편지를 주고받다 보면 늘 어딘가를 여행 중이거나 여행을 준비 중이었다. 네팔을 여행하다 만난 네팔 청년과 사랑에 빠져 결혼과 정착을 꿈꾸기도 했던 그녀. 결국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운 어머니로 인해 끝내 사랑을 접어야만 했다.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자라 부모의 가슴에 차마 대못을 박지는 못하고 어정쩡하게 타협해왔지만, 언제나 아직 발 딛지 못한 지구의 저편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대학 졸업 뒤 살길이 막막해 처음 떠났던 유럽 여행이 삶의 방향을 틀어버렸다. 그 뒤 기를 쓰고 해마다 한달씩 한반도 밖으로 나갔다. 길 위에서 채워오는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으로 팍팍한 일상을 견뎌갔다. 그럴수록 갈증은 심해졌다. 마침내는 하고 싶은 일도, 잘할 수 있는 일도, 오직 여행뿐인 것 같아 방 빼고, 사표 쓰고, 적금 깨서, 남들이 정착하는 나이에 유목민이 되어버렸다. 언제 정착민으로 돌아갈지는 알 수 없다.
배낭족들이여 지치지 말지어다
조국은 우리를 모른다지만, 어쨌든 조국을 위해 시간이든, 열정이든 뭔가를 바치고 있어야 할 우리를 밖으로 내몬 것은 무엇일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일 뿐이라고 답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우린 셋 다 자신들의 나라가 답답하다고 했다. 모범답안이 정해져 그 답안에 충실할 것이 요구되는 나라. 그 길 바깥의 삶에 대해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나라. 한 개인이 소신껏 살아가기에는 ‘사회적 감시망’(?)이 너무 촘촘해, 내 목소리보다는 남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곳. 땅은 좁고 변화는 느려, 자유의 깃발에 목숨을 거는 젊은이들은 정착하고 싶지 않은 나라. 어쩌면 잘못된 건 부적응자인 우리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나는 꿈꾸어본다. 이렇게 길 위에서 헤매는 자발적 일탈자, 사회적 아웃사이더들이 점점 늘어나 마침내 고종석의 표현대로 ‘변방을 넓혀 중앙을 없앨’ 수 있기를. 지금도 낡은 배낭을 메고 지구 위를 홀로 걷고 있을 이 땅의 모든 배낭족들이여. 부디 길 위에서 그대들이 찾던 것과 대면하기를, 이 순례의 길에서 자유에 지쳐 쓰러지지 않기를, 고미숙의 말처럼 ‘앉아서 유목’할 땅 한평을 발견해 끝내 어디에든 정착할 수 있기를!

"내 안의 자유를 찾아 유목민으로 살아간다." 일본인 청년 히데키가 얼굴을 찡그린 채 간식을 먹고 있다.

인도 자이살메르에서 붉은 해를 바라보는 마미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