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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명상, 혼자 앉아 있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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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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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길위에서 주운 한 마디]

“마음은 쓰레기가 가득 찬 집, 더러운 물이 가득한 컵. 새로워지기 위해 비워야 한다”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사람이 부박한 탓이어서일까. 어떤 형태의 종교적 수행에도 관심을 쏟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 몰입이 개인의 구원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사회의 구원에는 무슨 역할을 할까 싶어 애써 폄하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인도. 수많은 사두(고행 수도승)와 구루(영적 스승), 심지어 성자조차 넘쳐나는 곳. 드넓은 땅 곳곳에는 명상과 요가, 종교적 수행을 시도할 수 있는 곳이 가득해 많은 여행자들이 영적 비상을 위해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년까지 할애하는 곳이다. 이참에 나도 마음 닦는 공부를 한번 해보자는 발심이 일었다.


마하보디 사원을 걷고 있는 불교도.

다른 존재의 행복을 빌어본 날들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땅, 보드가야의 명상센터에 등록했다. 티베탄 절에서 운영하는 센터의 규칙은 엄했다. 살생, 거짓말과 도둑질, 성적 접촉, 음주와 흡연은 기본적인 금기고, 열흘 동안 외출 금지와 침묵을 준수해야 했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 일정마저 빡빡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밤 9시까지 명상과 불교 교리 강의, 요가와 토론, 강연이 이어졌다. 물론 반골 기질이 가득한 나는 센터의 규칙을 다 지켜내지는 못했다. 모기조차 죽이면 안 된다는 규칙을 따르느라 며칠 밤을 ‘강제 헌혈’에 시달리던 어느 날, 마침내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맹렬한 분노가 실린 손바닥으로 아홉 마리의 모기를 때려잡는 한밤의 학살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늦은 밤, 법당 앞에서 마주친 친구- 그녀는 북유럽의 어느 나라로 입양된 한국인이었다- 와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하며 아픔을 나누느라 ‘침묵’을 잠시 해제하기도 했다.

보드가야의 명상센터에서 평화로운 명상에 젖어 있는 사람들.

그곳에서 시간은 물처럼 고요하게 흘러갔다. 늦은 밤 법당에 홀로 앉아 마음다함의 명상을 하거나, 온 신경을 발걸음에 집중한 채 느리게 느리게 탑을 돌며 위파사나 명상을 할 때면, 이 세상에 나 홀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것 같았다. 그곳에서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세상 모든 존재들의 평화와 행복을 간구하고는 했다. 나 아닌 다른 존재의 행복을 그토록 빌어본 날들이 내 인생에서 또 있었을까? 소란스러운 바깥 세계와 격리된 채 법당에서 혼자 108배를 올리며 맞은 성탄과 새해는 완벽한 충만함이었다. 입으로, 마음으로, 몸으로 짓는 모든 죄들이 고스란히 내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생각하며, 좀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이 삶을 건너가야겠다고 마음 다지던 날들. 그리고 깊이 배우는 생명 존중의 마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많은 생명을 죽이고 있다.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과 물을 통해서도, 걷는 발걸음을 통해서도…. 그러니 이 씻을 수 없는 업을 씻어내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물론 센터에서 보낸 열흘의 생활이 내 삶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키거나 나를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시켜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정신없는 삶의 길에서 혼자 앉아 있는 연습을 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파스칼이 그랬던가. 인간의 불행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르는 데서 비롯되는 거라고. 끊임없이 몰려왔다 몰려가고, 솟구쳐올랐다가 곤두박질치기를 반복하는 내 마음의 파도를 들여다보고, 그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몰입하던 시간들. 내 마음이 쓰레기로 가득 찬 집이자 더러운 물로 가득한 컵임을 깨달으며, 마음 비우기를 시도하던 날들이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마음 역시 비워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삶 속에 우리 자신을 위한 여백을 마련해놓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외부 세계를 관찰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는 인색했다. 내 마음 속으로 들어가 생각의 고삐를 죄고 통제하려 한 시도만으로도 이미 맑고 깊던 날들이었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법문을 듣고 있는 티베탄 스님들.

삶이 고통이라 할지라도…

하지만 센터의 모든 가르침이 내 안으로 스며든 건 아니었다. 환생과 윤회, 열반, 이런 단어들은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삶을 고통으로 규정하고,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반에 이르러야 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내게 아무런 울림을 주지 못했다. 내 삶에서 가장 큰 스승은 언제나 고통이었고, 고통만이 나를 성장시키고 단련시켜왔기 때문이다. 삶이 고통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 나와 사랑하고, 상처 입고, 꿰맨 자리가 겨우 아물 무렵 다시 터지는 아픔을 반복하며 삶을 마감해야 한다 해도, 그 안에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 세상의 모든 등불이 한번에 켜지는 듯 환하게 밝아지는 그 찰나가 머무는 한, 삶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결국 고통에 대한 태도 역시, 내 마음자리 놓기에 달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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