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길 위에서 주운 한 마디]
“인도를 알면 인생이 보인다”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언젠가 한 선배가 보내온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 인도를 다녀온 사람과 다녀오지 못한 사람. 그래서 인생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내가 인도에 머무른 시간은 이제 겨우 다섯달 남짓. 당연하게도 나는 여전히 인도를 모르고, 그래서 인생을 모른다. 단지 내가 아는 건 인도에서는 자기 자신과의 정면 대결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 정도이다. 가난한 삶이 어떤 건지, 계급이 어떻게 삶의 양식을 규정하는지, 생존 앞에서 자긍심이나 자존심 따위가 얼마나 무용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땅이어서일까? 인도에서는 지금껏 지니고 살아온 틀로 규정지을 수 없는 숱한 얼굴의 삶을 만나게 된다. 진보와 문명, 종교 같은 거창한 개념에 대한 총체적인 흔들림은 물론이고, 자신의 얼굴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곳이 인도이다. 자신의 한계가 바닥까지 드러나 미처 몰랐던 자신의 새로운 모습과 ‘맞장 뜨듯’ 마주쳐야 하는 곳. 그래서 인도에서는 자신은 물론이고 누구도 속일 수 없다. ‘인도병’은 인도를 떠난 뒤 시작된다 인도를 다녀온 이들은 누구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거리 한복판에서 현기증이 일며 그동안 삶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쨍그랑 소리와 함께 깨어져버리는 경험. 삶이 그 허울과 환상을 벗고 맨몸의 생채기와 비루함을 그토록 선연하게 드러내는 곳이 인도 외에 또 있을까. 성과 속, 선과 악이 모호한 경계를 이루며 어우러져 있는 곳이기에 그런 깨어짐과 만남이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인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은 두 종류이다.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과, 청소부마저 성자인 나라라는 생각. 어느 쪽도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 성자가 없는 사회도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없지만 성자가 많은 사회도 결코 행복한 사회는 아니라고 누군가 그랬다. 인도에는 그 많은 성자만큼 사기꾼 역시 넘쳐난다. 청소부로 변한 성자를 만났다 싶으면 호주머니의 먼지까지 다 털어가는 사기꾼과도 마주쳐야 하는 곳.
이 모습이 진정한 인도인가 싶으면 저 모습도 들고 일어난다. 소똥이 넘치는 거리에서 먹고 자는 수많은 걸인들의 모습뿐 아니라, 유럽식의 건물이 줄줄이 늘어선 해변도 인도이다. 10루피를 더 받아내기 위해 관광객과 실랑이를 벌이는 릭샤 운전사도,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쇼핑하러 가는 부자들도, 몇백년 전의 삶의 방식이 그대로 이어져온 산간마을도, 초고속 통신망이 깔리고 초대형 쇼핑센터가 들어선 도시도 모두 인도의 얼굴이다. 그 서로 다른 얼굴이 우리를 당혹케 하고, 때로는 분노케 하고, 결국에는 인도라는 ‘대륙’에 중독되게 만든다.
‘인도병’은 인도를 떠난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고 한다. 지긋지긋해서 출국날을 기다리게 만들던 땅에서 날아오르는 그 순간, 그리움은 시작된다. 어수룩한 사람은 증세가 일찍 시작돼 인도에 발을 딛고 있는 순간에 이미 인도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버스만 타면 들어야 하는 귀청 찢는 비음의 힌디팝을 어느 순간 흥얼거리고 있고, 부엌을 들여다보는 순간 식음을 전폐해야만 하는 탁월한(!) 위생 수준도 더 이상 문제될 게 없다.
하루에도 수십명씩 달라붙는 음충맞은 눈길과 기름기 가득한 목소리의 한량들마저 견딜 만하고, ‘인도 냄새’라며 거부하던 마살라 향을 끼니 때마다 찾게 된다. 표 한장 사려면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하고, 운 나쁘면 24시간씩 연착하기도 하는 기차를 기다리는 일도 습관처럼 익숙해진다. 빤히 드러나는 사기를 치기 위해 토끼눈을 하고 덤벼드는 릭샤 운전사들과의 실랑이마저 즐기게 되고, 인도에 대한 이 모든 불만을 토로하는 여행자들에게 “This is India, No problem!”이라고 설득하려 드는 단계에 이르면 분명한 중독이다. 다음 단계는 고국으로 돌아가 뼈빠지게 일해 모은 돈으로 다시 인도행 비행기표를 끊는 일만 남은 셈이다.
인도가 그대의 사랑을 검증해 줄 것이다
혼자 있고 싶어 떠나왔으나 단 1분도 혼자 있게 내버려두지 않는 곳.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교훈을 매일매일 짜릿하게 확인시켜주는 곳. 내 뜻대로, 계획한 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는 곳. 그래서 하루하루가 긴장과 모험의 연속이고, 아드레날린이 과잉 분출되는 곳. 슬프고, 화나고, 억울하다가, 어느 순간 웃고, 기뻐하고,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깨닫는 곳. 떠나는 순간 다시 돌아오고 싶어지는 마법 같은 땅.
내게는 야무진 꿈이 하나 있다. 함께 늙어가고픈 이를 만난다면 그를 끌고 인도로 오겠다는. 와서 그와 나의 밑바닥까지 다 들여다본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때는 남은 생을 그와 꿈꾸어도 되지 않을까?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이들이여, 인도로 오라. 인도가 그대들의 사랑을 검증해줄 것이다.
내가 인도에 머무른 시간은 이제 겨우 다섯달 남짓. 당연하게도 나는 여전히 인도를 모르고, 그래서 인생을 모른다. 단지 내가 아는 건 인도에서는 자기 자신과의 정면 대결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 정도이다. 가난한 삶이 어떤 건지, 계급이 어떻게 삶의 양식을 규정하는지, 생존 앞에서 자긍심이나 자존심 따위가 얼마나 무용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땅이어서일까? 인도에서는 지금껏 지니고 살아온 틀로 규정지을 수 없는 숱한 얼굴의 삶을 만나게 된다. 진보와 문명, 종교 같은 거창한 개념에 대한 총체적인 흔들림은 물론이고, 자신의 얼굴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곳이 인도이다. 자신의 한계가 바닥까지 드러나 미처 몰랐던 자신의 새로운 모습과 ‘맞장 뜨듯’ 마주쳐야 하는 곳. 그래서 인도에서는 자신은 물론이고 누구도 속일 수 없다. ‘인도병’은 인도를 떠난 뒤 시작된다 인도를 다녀온 이들은 누구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거리 한복판에서 현기증이 일며 그동안 삶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쨍그랑 소리와 함께 깨어져버리는 경험. 삶이 그 허울과 환상을 벗고 맨몸의 생채기와 비루함을 그토록 선연하게 드러내는 곳이 인도 외에 또 있을까. 성과 속, 선과 악이 모호한 경계를 이루며 어우러져 있는 곳이기에 그런 깨어짐과 만남이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인도의 서로다른 얼굴이 우리를 당혹케 하고, 결국에는 인도라는 ‘대륙’에 중독되게 만든다. 좌판을 차려놓고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 (사진/ 김남희)

델리 시내에서 굴렁쇠 놀이를 하는 아이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