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길 위에서 주운 한 마디]
“세상이라는 다리를 건너되, 그 위에 집을 짓지는 말라.”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인도를 여행하면서 아그라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그라는 인도의 상징이 되어버린 위대한 건축물 타즈마할이 있는 도시이다.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은 아내 뭄타즈마할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그녀가 14번째 아이를 출산하다가 죽자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 되었다고 한다. “나를 위해 아름다운 무덤을 지어달라”는 아내의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 그는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 2만명의 노동자를 데려왔다. 그들이 22년에 걸쳐 완공한 그녀의 무덤 타즈마할은 6천만달러(약 700억원)짜리 초특급 공사였다. 무덤이 완성된 뒤 이 완벽한 아름다움이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샤 자한은 노동자들의 손을 자르는 엽기 행각을 자행해 다시 이름을 떨쳤다. 샤 자한의 최후는 비참했다. 아들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뒤 그는 야무나 강변의 붉은 성에 유폐되어 아내의 무덤만을 바라보며 쓸쓸히 죽어갔다.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듯한 두려움 8년 전, 한달간의 여름 휴가를 이용해 인도를 여행했을 때 단기 여행자들이 그렇듯 나 역시 마음이 급했다. 짧은 일정에 최대한 많은 곳을 보기 위한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아그라에서는 사흘을 머물렀다. 타즈마할 때문이었다. “사람의 손이 닿아서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도 있구나.” 새삼스런 확인이었다. (“신이여, 이 작품을 정녕 인간이 만들었단 말입니까?”라고 나를 절규하게 했던 건축물 세개를 꼽는다면, 이집트의 아부심벨 신전,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그리고 인도의 타즈마할이다.) 그래서인가.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 마치 첫사랑의 연인을 만나러 가듯 설렘은 두려움과 뒤섞였다. ‘그사이 변했으면 어떡하지? 기억 속에 각인된 것보다 훨씬 초라한 모습이라면? 아니, 건축물이야 변함이 없을 테니 내 감수성의 못이 메말라 그 앞에서 아무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아도 나이와 더불어 점점 무디어져가는 촉수를 더듬으며 때로 슬프기도, 기쁘기도 하던 터였다. 타즈마할과의 만남은 그 감수성의 날에 대한 시험 같아 아그라에 머무는 내내 나는 초조했다. 그래서 타즈마할을 찾는 일을 하루하루 미룬 채 주변의 유적지들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꼼꼼히 둘러볼 더 이상의 유적도 남지 않은 나흘째 되는 날, 타즈마할로 향했다.
첫 햇살에 깨어나는 타즈마할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에 그곳을 찾았다. 내 우려와는 달리 여명 속에서 타즈마할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아름다웠고 매혹적이었다. 빛살이 가 닿은 대리석은 시시각각 색을 달리하며 눈을 현혹했다. 그곳에 앉아 서투른 연필 스케치도 하고, 다른 여행자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몇 시간을 보낸 뒤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나왔다. 다시 들어가려는 순간, 경비원들이 관광객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유럽 어느 나라의 총리가 이곳에 들른다는 이유였다. 발길을 돌리면서도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
사랑을 하되 영원을 바라지는 말라
결국 8년이라는 세월이 흔적을 남긴 것은 타즈마할이 아니라 나여서, 이제 내 눈길이 오래 머무는 곳은 크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작고 낡아서 소박한 것들이었다. 완벽하게 보존된 유적은 심미안을 만족시킬지는 몰라도, 인간의 상상력이 개입할 틈은 주지 않는다. 버려지고 황폐화된 낡은 유적지, 몇개의 기둥과 회랑으로 남아 어렴풋하게 그 용도를 상상해볼 수밖에 없는 폐사지 혹은 폐궁 앞에서 마음은 젖어들고 상상력은 날개를 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발길을 돌려 아그라에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버려진 도시 파테푸르 시크리를 찾았을 때, 내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한때 무굴제국의 수도였다가 버려진 이 도시의 모든 것은 오래되어 낡고 황폐했다. 이 도시가 번성했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며 무너지고 부서진 건물들 사이를 거니는 기분은 충만했다. 도시의 아름다운 회교 사원의 출입구 ‘승리의 문’- 악바르 황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높이 54미터의 문- 아치에는 코란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세상은 다리다. 그 다리를 건너되, 그 위에 집을 짓지는 말라. 순간을 바라는 자는 영원을 바라게 될지도 모른다.’
내게는 그 말이 사랑에 대한 경구처럼 해석되었다. 사랑은 삶을 건너가는 다리와 같은 것. 사랑을 하되, 영원을 바라지는 말라.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며 아내의 무덤을 지었던 샤 자한의 비참한 최후. 그리고 이 버려진 도시의 운명이 말해주고 있었다. 영원을 바라는 일의 어리석음을. 화려한 무덤을 지어줄 남편은커녕 지상에 방 한칸 없는 나는 사이버 공간에 겨우 지은 집 한채로 빈한함을 자족하며 세상의 다리를 건너고 있다. 가볍고 사뿐하게.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듯한 두려움 8년 전, 한달간의 여름 휴가를 이용해 인도를 여행했을 때 단기 여행자들이 그렇듯 나 역시 마음이 급했다. 짧은 일정에 최대한 많은 곳을 보기 위한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아그라에서는 사흘을 머물렀다. 타즈마할 때문이었다. “사람의 손이 닿아서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도 있구나.” 새삼스런 확인이었다. (“신이여, 이 작품을 정녕 인간이 만들었단 말입니까?”라고 나를 절규하게 했던 건축물 세개를 꼽는다면, 이집트의 아부심벨 신전,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그리고 인도의 타즈마할이다.) 그래서인가.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 마치 첫사랑의 연인을 만나러 가듯 설렘은 두려움과 뒤섞였다. ‘그사이 변했으면 어떡하지? 기억 속에 각인된 것보다 훨씬 초라한 모습이라면? 아니, 건축물이야 변함이 없을 테니 내 감수성의 못이 메말라 그 앞에서 아무렇지 않다면?’

절대적 사랑에 대한 확신을 섬세하게 세공한 대리석 창 앞을 지나가는 모녀의 그림자. (사진/ 김남희)

지구상에 있는 건축물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타즈마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