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길 위에서 주운 한 마디]
“나는 지금 너와 함께 있어서 행복해”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풍경 하나.
지옌넷을 만난 건 바간의 불교 사원에서였다. 사원 마당에서 꽃과 복권을 팔던 그녀가 타나카(북부 버마에서만 자라는 작은 나무를 돌판에 갈아 즙을 내 만든 천연화장품)를 발라보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돌판에 간 나무 줄기의 즙은 부드럽고 시원하게 얼굴에 스며들었다. 노란 분칠을 한 거울 속 내 얼굴은 우스꽝스럽기만 한데, 그녀는 예쁘다며 자꾸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사원을 나설 때,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서투른 영어로 자신의 집에 놀러오겠느냐고 물었다. 약속시간에 맞춰 그녀의 집에 들어서니 말똥 냄새가 먼저 반긴다. 나무로 얼기설기 지어올린 집 안으로 얼핏 보이는 단출한 살림살이에는 한눈에도 삶의 신산함이 배어 있다. 곧 온 식구가 모여들어 귀한 손님이라도 온 듯 과자며 과일을 분주하게 내온다. 잠시 뒤 그녀가 수줍게 웃으며 종이에 싼 무언가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포장을 뜯으니 타나카와 돌판이다. 복권을 팔아 그녀가 버는 한달 수입이 겨우 3천쳇(우리돈 4천원) 남짓이니, 이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꽤 무리를 했음이 틀림없다. 더 머물다가는 없는 살림에 민폐만 끼칠 것 같아 그녀를 데리고 근처 식당으로 가 저녁을 대접했다. 자신의 밥에는 거의 손을 안 대고, 내 밥 위에 반찬을 얹어주거나, 부채를 구해와 부쳐주느라 바쁘던 그녀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자꾸 물었다. “나는 지금 너와 함께 있어서 무척 행복해. 너도 행복하니?”라고.
풍경 둘.
인레 호수에서였다. 소수 부족이 사는 산간 마을로 트레킹을 나선 길이었다. 길가에서 연을 날리며 놀던 아이들이 “Hello!”를 외치며 다가와 나팔꽃을 한 송이씩 건네준다. 나팔꽃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한 송이를 건네주고 다시 꺾어와 또 건네주는 아이들 덕에 내 손은 순식간에 한 다발의 연보라색 나팔꽃으로 가득 찼다. 외국인에게 꽃을 꺾어 건네는 이 어리고 순정한 마음. 잠시 뒤 나를 가이드 해주던 본조가 아이들에게 길을 물은 뒤 미리 준비해온 과자를 나눠준다. 흙투성이 옷자락을 힘껏 벌려 과자를 받아드는 아이들과 한명도 빠짐없이 골고루 과자를 나눠주는 본조. 늘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다니는 본조는 내가 머물던 숙소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일꾼이다. 감기로 누워 있던 내게 가벼운 운동으로 땀을 흘리라며 숙소 주인이 그를 가이드로 붙여준 거였다. 그날 내내 본조는 내게 무언가를 해주기 위해 말 없이 애를 쓰고 있었다. 햇볕이 따갑거나 여우비가 내리면 서둘러 우산을 건네주고, 진창을 지나고 나면 신발에 묻은 진흙을 털어주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때면 혹시나 내가 놓칠까 손짓으로 짚어주던 본조.
풍경 셋.
북부의 산악 마을 칼로. 일 없이 거리를 어슬렁거리던 중이었다. 거리를 마주 보는 집 정원에서 중년의 부부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지나가는 나를 미소와 손짓으로 부르더니 밥상 곁에 앉힌다. 그리고 밥을 덜어 숟가락과 함께 놓아준다. 아주머니는 반찬 그릇을 내 앞으로 끌어다 놓고 가지나물이며 호박찜을 내 밥그릇 위에 덜어주시고, 아저씨는 열심히 닭살을 발라서 숟가락 위에 얹어주신다. 영어는 한 마디도 통하지 않지만 손짓과 눈빛으로 오가는 마음. 덕분에 안 먹는 고기도 먹고, 차까지 얻어 마시고 나오는 길. 한참을 걷다가 돌아봐도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고 계시는 아저씨와 아주머니.
내가 버마에 머무른 시간은 겨우 한달 남짓. 그런데도 이 나라를 떠올릴 때면 마음이 젖어온다. 타나카를 바른 여인들이 수줍은 미소를 짓고, 구장나무 줄기를 씹는 남자들이 새빨간 이를 다 드러내며 웃는 나라. 트럭의 비좁은 짐칸에 끼어가면서도 서로 자리를 양보하고, 지나는 여행자를 불러들여 더운 밥을 내놓고, 빈한한 살림살이도 나누며 살아가는 그들은 얼굴 낯선 이에게도 거리낌 없이 환한 미소를 건네곤 했다.
우리에게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아웅산 수치 여사로 인해 잘 알려진 버마. 1962년 네 윈의 군사 쿠데타 이후 장기 집권해온 이 나라의 군사정부 ‘국가 평화발전 위원회’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독재정부이다. 감시와 통제 속에 일상을 견뎌가고, 삶의 많은 부분이 선택이 아니라 수용해야만 하는 방식으로 주어지는 땅. 이 마른 땅 위로 자유와 정의의 물결이 넘쳐 흐르기를, 고난의 세월 너머 찬란한 무지개 하나 떠오르기를, 그래서 굽은 허리를 펴고 큰 목소리로 웃는 순박한 얼굴들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빌고 또 빌어본다.
지옌넷을 만난 건 바간의 불교 사원에서였다. 사원 마당에서 꽃과 복권을 팔던 그녀가 타나카(북부 버마에서만 자라는 작은 나무를 돌판에 갈아 즙을 내 만든 천연화장품)를 발라보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돌판에 간 나무 줄기의 즙은 부드럽고 시원하게 얼굴에 스며들었다. 노란 분칠을 한 거울 속 내 얼굴은 우스꽝스럽기만 한데, 그녀는 예쁘다며 자꾸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사원을 나설 때,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서투른 영어로 자신의 집에 놀러오겠느냐고 물었다. 약속시간에 맞춰 그녀의 집에 들어서니 말똥 냄새가 먼저 반긴다. 나무로 얼기설기 지어올린 집 안으로 얼핏 보이는 단출한 살림살이에는 한눈에도 삶의 신산함이 배어 있다. 곧 온 식구가 모여들어 귀한 손님이라도 온 듯 과자며 과일을 분주하게 내온다. 잠시 뒤 그녀가 수줍게 웃으며 종이에 싼 무언가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포장을 뜯으니 타나카와 돌판이다. 복권을 팔아 그녀가 버는 한달 수입이 겨우 3천쳇(우리돈 4천원) 남짓이니, 이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꽤 무리를 했음이 틀림없다. 더 머물다가는 없는 살림에 민폐만 끼칠 것 같아 그녀를 데리고 근처 식당으로 가 저녁을 대접했다. 자신의 밥에는 거의 손을 안 대고, 내 밥 위에 반찬을 얹어주거나, 부채를 구해와 부쳐주느라 바쁘던 그녀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자꾸 물었다. “나는 지금 너와 함께 있어서 무척 행복해. 너도 행복하니?”라고.

나무배들로 가득찬 인레 호수의 수상 시장. (사진/ 김남희)

무지개 떠 있는 버마의 들판. 고난에 찬 버마인들의 삶에도 무지개가 뜰까.

얼굴에 타나카를 바른 버마 여인. 낯선 이들에게도 환한 미소를 지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