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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 티베트인의 환한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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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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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길 위에서 주운 한 마디]

“마사지는 기술이 아니라 너의 맑고 건강한 기운을 나눠주는 일이야.”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그의 발은 더러웠다. 때에 절어 새카만 발이 꼬리한 냄새까지 스멀스멀 피워올리고 있었다. 얌전히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그 발을 선뜻 잡지 못하고 나는 오래 망설이고 있었다. 타이의 북부 도시 치앙마이에서였다. 타이 마사지를 가르치는 학교의 첫 수업일. 조단은 내 파트너였다. 그의 더러운 발바닥이 시작부터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새삼스레 열두 제자의 발을 일일이 씻어주신 예수에게 존경심이 일었다. 나는 예수라도 된 심정으로 그의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스위스 입양아가 불교를 만났을 때

선생의 시범을 본 뒤 상대방과 번갈아 실습을 하는 수업 방식은 하루 종일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낯선 남자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떡 주무르듯 만져야 하는 상황이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겨울 냇가에서 여자를 업어 건네준 스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게 못내 마음에 걸린 상좌가 스님에게 따졌다지. “스님, 어찌 여자를 업고 강을 건넌단 말입니까?” 그때 스님이 상좌에게 하신 말씀. “나는 벌써 그 여인을 내려놓았는데 너는 아직도 지고 있구나.” 내가 그 상좌 같았다. “이건 남자의 몸이 아니라 그냥 떡이야, 떡.” 중얼거려도 봤지만 여전히 조단의 발 냄새는 코를 찌르고, 떡이 되지 못하는 그의 몸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스노 라이언 재단’을 설립해 티베트 고아와 타이 고산족을 돕는 티베트계 스위스인 조단이 마사지를 시연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만나는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고 따뜻한 미소를 보낸다.

그렇게 일주일간 조단과 함께 마사지를 배우며 한두 마디씩 말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는 티베트계 스위스인이었다. 그가 태어나던 해에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했다. 중국군에 의해 부모를 잃고 세살 때 인도로 망명한 그는 다섯살이 되던 해에 스위스로 입양되었다. 스위스에서의 어린 시절을 묻는 나에게 “쉽지는 않았어”라고 조단은 담담하게 말했다. “부모님은 누구에게나 좋은 분이셨지만 나를 친자식처럼 대하지는 않았어”라는 말이 잠깐의 망설임 뒤에 이어졌다. 조단의 손목에 남아 있는 깊은 칼자국, 한 마디가 잘려나간 왼손 검지가 티베트인도 스위스인도 되지 못한 채 방황한 그의 소년 시절을 말해주는 듯했다. 성년이 된 뒤 혼자 살면서 겪어야 했던 지독한 가난은 그가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건축회사를 운영하던 그는 4년 전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로 건너갔다. 절에 기숙하며 불교의 가르침에 귀의하고, 잊어버렸던 티베트어를 배우는 동안 그는 새로운 삶에 눈을 떴다. 그 뒤 자신이 운영하던 건축회사를 대가 없이 친구에게 넘긴 후 티베트 고아들을 위한 ‘스노 라이언 재단’을 설립해 운영해왔다. 그는 재단의 두 번째 사업으로 타이의 고산족을 위한 병원 설립을 위해 치앙마이에 머무는 중이었다. 불교에 귀의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스위스에서 물질주의적인 삶을 살고 있었을 거라며 웃는 조단의 얼굴에는 평화가 가득했다.

지금 이 자리가 가장 소중한 순간

그의 더러운 발만을 보고 쉽게 사람을 판단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마사지를 배울 때 기술과 순서를 외우기에 급급하던 내게 그는 말했다. “마사지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너의 에너지를 나눠주는 일이야. 그러니 기쁘게 몸과 마음을 다해야 네 좋은 기운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겠니?” 그런 마음으로 하는 그의 마사지가 어찌 뛰어나지 않겠는가. 내 마음자리를 가다듬을 생각은 안 하고 선생이 그에게만 “Very good!”을 연발하는 것을 보며 샘을 내고, 마사지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마사지를 배우러 다니는 일주일 내내 조단은 내게 마사지와 삶을 동시에 가르쳤다. 그의 마사지를 받을 때면 내 몸과 마음은 더없이 편안해지고는 했다. 수업이 끝난 뒤 그와 나누는 차 한잔과 정담. 그의 따뜻하고 진심 어린 미소는 축복처럼 내 마음에 깃들고는 했다.

타이 치앙마이의 거리 풍경. (사진/ 김남희)

그렇게 마사지 학교를 마친 뒤 어느 날 시내의 식당에서 우연히 조단을 만났다. 내 손을 잡고 “방금 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너와 같이 배울 수 있어서 참 좋았어”라며 환한 미소를 짓는 조단. 그 말을 들은 한 한국인 남자가 중얼거린다. “선수네. 작업은 저렇게 해야 하는데. 한국 남자들은 저런 말을 할 줄 몰라”라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자나 깨나 ‘작업’에만 열중하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들리는 걸까.

조단은 그런 사람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그가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고, 가슴에서 우러나는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 미소는 보는 사람을 언제나 행복하게 만드는 미소였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고,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얼굴이 가장 귀한 인연임을, 그 자리에 꽃이 피어나고, 천국이 내려앉는다는 것을 조단은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가끔 막막한 길 위에서 조단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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