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길 위에서 주운 한 마디]
“한때는 꽃을 사모도 했으나 이제는 잎들이 더 가슴에 사무친다”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 라오스. 북으로는 중국, 서로는 타이, 동과 남으로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국경을 접한 나라. 짚으로 지붕을 올린 집에서 키 작고 순한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거리며 물고기를 잡고 논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땅이다. 아이들은 벌거벗고 멱을 감다가 손을 흔들며 “사바디!”(안녕)를 외치고, 어른들은 울도 담도 없이 가난한 살림을 너나들이로 나누며 살아간다. 저녁이면 TV가 있는 집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어깨를 끼고 앉아 타이산 드라마를 보는 나라.
울고 나서 더 맑아지고 깊어진
인터넷은커녕 전기도 저녁 나절 겨우 서너 시간 들어올 뿐이고, 전산화된 은행도 없어 ‘카드 인생’이 뭔지도 모르며 살아간다. 사려고 해야 살 물건도 없고, 쓰려고 해야 큰돈 쓸 일도 없어, 모두가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사회. 문맹률은 40%나 되고, 1인당 국민소득은 겨우 200달러인 이 가난한 나라가 지닌 가장 큰 재산은 타인에게 건네는 환한 미소이다. 이미 오래전에 우리가 잃어버린 삶, 속도전과 소비의 관성에 길들여지지 않은 삶이 남아 있어 잠시 찾는 이방인을 눈물나게 하는 곳이다.
‘달이 걸린 곳’이라는 고운 이름을 가진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역시 한 나라의 수도라기보다는 시골 읍내 같은 느낌을 준다. 고층건물이라고는 한 채도 없고, 거리엔 차량도 별로 없고, 거미줄처럼 촘촘한 체인망을 자랑하며 세계를 장악해가는 패스트푸드점 하나 없다.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은 낡고 오래되었고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빈한하다.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볼 것도 없어 세계에서 가장 심심한 수도로 꼽히는 이곳에 한 한국인이 머물며 여행자를 위한 작은 숙소를 꾸려가고 있다. 그 숙소의 옥상 벽에 쓰여 있던 글. “한때는 꽃을 사모도 했으나 이제는 잎들이 더 가슴에 사무친다.”
그 글을 쓴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만은 선연하다. 누구지? 어떤 상처와 아픔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기에 이런 말을 하게 된 걸까? 낯선 나라의 숙소 옥상 벽에 이 글을 적을 때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노을을 보기 위해 옥상을 오르내리며 그 글을 대할 때면 늘 발걸음이 느려지고는 했다. 멈춰 서서 가만히 그 글을 들여다보노라면 사랑 혹은 인생이라는 싸움터에서 지독하게 패배하고 혼자 울고 있는 이의 여윈 등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아니, 한참 울고 나서 더 맑아지고 깊어진 이의 넉넉한 품을 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때 내게도 화려한 꽃만을 사랑하고, 꽃 핀 나뭇가지만을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다. 살면서 이루고 싶은 일, 갖고 싶은 것도 많아서 그걸 다 가진 사람들, 혹은 그걸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끌리던 시절. 하지만 크고 작은 실수를 거듭하며 인생이 내 뜻대로 풀리는 것만은 아님을 배워가는 동안 나는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앓아본 사람만이 앓고 있는 이들의 아픔을 알아보는 것일까. 모두가 꽃이 될 수는 없는 세상에서 꽃만 예쁘다고 믿던 시절의 세계는 얼마나 좁고 얕았던가. 이제는 꽃 아닌 것들도 예쁘다. 이 척박한 세상에서 살아보겠다고 기를 쓰며 버둥거리는 모든 누추한 존재들이 다 예쁘다.
올 한해 새로운 인연을 꿈꾼다
이제 길 위에서 내 눈을 끄는 것도 더 이상 이국적인 풍경이나 화려한 거리, 색다른 풍물이 아니다. 골목 한 귀퉁이 작은 집에서 같으면서도 다 다른 일상을 꾸려가는 사람들, 틈 사이로 들여다본 그들의 웃음과 눈물, 문신처럼 남겨진 상처가 나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하는 것이다. 꽃 진 자리에 남은 작고 여린 잎에도 눈길을 주게 되는 것, 나이 들어가는 일의 미덕이 아닐까.
다시 새해가 왔다. 또 한살을 먹는다. 살 날이 또 한해 줄었다는 뜻이겠지. 어떤 깨달음은 세월만이 남겨줄 수 있음을 알기에 오는 새해가 두렵지는 않다. 다만 ‘나잇값’ 하며 사는 일의 쉽지 않음이 부담으로 남을 뿐. 배낭을 꾸려 길 위에 오른 지도 이제 햇수로 3년째에 접어든다. 그 길 위에서 고맙고 어여쁜 인연을 많이도 만났다. 가뭄날 삿갓 다랑이 논처럼 좁고 메마르던 내 가슴을 적시고 때로 넘치게 만들던 수많은 인연들. 올 한해 내가 길 위에서 새로이 만날 인연을 미리 꿈꾸어본다. 비루하고 남루하기만 한 존재는 없다는 것, 세상에 나온 모든 목숨이 귀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내게 가르칠 길 위의 스승, 길 위의 학교. 나는 다시 가방을 메고 신발끈을 조이며 기꺼운 마음으로 학교에 갈 준비가 되어 있다.
필자 김남희씨는 마흔까지는 ‘유목민’으로 살겠다며 서른넷에 방 빼고 적금 깨, 5년 예정의 세계여행을 위한 배낭을 꾸렸다. 2003년 1월11일 인천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여객선을 타고 중국으로 건너간 뒤 지금껏 아시아 변방을 헤매고 있다. ‘진심으로 지극한 것들은 다른 길을 걷더라도 같은 길에서 만나게 되는 법’이라는 말을 되새기면서도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삶을 함께 나누려고 한다. 이 연재물도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단상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지난 연말 김씨는 끙끙거리며 거닐던 발길을 잠시 멈추고 명상수행에 들어갔다. 국토종단 여행기를 묶은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을 펴냈다.

길 위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발견 한다. 모두가 꽃이 될 수 없음을 황량한 야산에서 깨닫는다.

오렌지색 승복을 입은 동자승이 수줍은 미소를 보이고 있다. (사진/ 김남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