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58분 “밥 먹었엉” 문자, 엄마는 얼굴 보고도 못 믿었다제1443호 무뚝뚝해 보이지만 다정했던 열일곱 살 동규는 가족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나자마자 가족의 품을 떠나 조그만 손에 링거주사를 꽂아야 했다. 외할머니 정애자(67)씨는 “동규가 기다린다”며 하루 두 번씩 면회를 가서 눈물을 글썽였다. 다행히 잘 커서 동규는 엄마와 친구 같은 모자지간이 됐다...
네가 가고 내가 아빠가 되었구나제1443호 아빠는 아이가 어질게 세상을 살아가길 바랐다. ‘어질 현’에 ‘펼 서’, 현서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아빠 이호곤(48)씨의 바람대로 현서는 너그러우면서 착하게 자랐다. 현서에게는 15살 터울인 막냇동생을 포함해 여동생 셋이 있다. “아빠가 없으니까 네가 아빠 역할을 해야 한다. 내가 오토바이를 타니까 ...
수의가 되어버린 하얀색 웨딩드레스제1442호 그는 2018년 한국에 왔다. 이제 막 간호전문대학을 졸업한 스물한 살이었다. 어려서부터 친구처럼 지낸 두 언니를 따라온 한국에서 4년을 지내는 동안 그에겐 또 다른 가족이 생겼다. 미래를 약속한 애인 예고르(27)씨와, 반려묘 살라몬이다. 스물다섯 김옥사나는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 했다. 옥사나는...
“새벽 5시55분, 깨울 아들이 없으니까 그냥 울어요”제1442호 그날 이후, 엄마 김호경(58)씨 꿈에 처음 나타난 의현은 친구와 함께였다. “엄마, 세웅이(친한 친구)한테 내 검은 점퍼 줬어?” 엉뚱했다. 의현다웠다. “꿈에 갑자기 나와서 ‘엄마 보고 싶어’도 아니고, 친구한테 뭘 줬냐니. 의현이가 그런 애이기는 했어요.” 빈소를 내내 가득 채운 동네, ...
“나는 아직도 차가운 딸의 얼굴만 만지던 그 구급차 안”제1441호 열아홉 살 가영은 ‘옷으로 엮어내는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목원대 섬유·패션디자인학과 2학년 박가영. “엄마, 나 패션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어. 그러려면 옷을 알아야만 할 것 같아.” 잊혔던 독립운동가가 21세기 도시 한복판에 재현되고 발달장애인이 스스로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일들이, 옷과 패션...
이태원에서 멈춰버린 상은씨의 버킷리스트제1441호 상은은 1997년 6월29일에 태어났다. 2022년 스물다섯. 어릴 때부터 밝고 예쁜 아이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잘 웃었다. 사진 찍을 때면 으레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고 웃었다. 어려서부터 친구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상은과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 한 번도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2...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펴지지 않은 양손 “얼마나 아팠을까”제1441호 어릴 때 지연은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엄마 아빠가 지연이 중학교 3학년 때 일부러 연기학원에 보냈다. 처음엔 영 흥미 없어 하는 듯 보였다. 아빠는 “한 달만 더 다녀보자”고 구슬렸다. 연기학원 선생님은 지연의 목소리가 “밝고 예쁘다”며 칭찬했다. “연기에 소질이 있다”는 칭찬에 일주일 내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