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사건…최종조처를 통지해주시오제1016호“친애하는 채명신 장군.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전쟁범죄에 관한 주장이나 불만이 제기되면 적절한 절차에 따라 모든 미군에 대해 지시할 권한이 있습니다. 이는 제네바협약의 서명국으로서 미국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것입니다. 내 지시에 따라 미 해병제3상륙전사령부 소속 군인들은 제네바협약에 대한 ...
죽은 엄마 품에서 잘도 자던 아이제1014호【꿈결】 포근한 엄마의 품. 젖을 먹는 아기. 자장가를 불러주는 엄마. 졸음이 몰려오는 아기. 농부들은 모를 심고, 물소 떼가 지나가고, 강아지들이 어슬렁거리고, 들고양이는 논둑에 숨고, 햇살은 따뜻한데, 꿈나라로 간 아기. 그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슬슬 논일을 시작하려는 엄마. 목가적인 들녘...
똑똑히 보았다 불길 속 성난 해병대원들제1012호생생한 클로즈업이었다. 시뻘건 불길을 배경으로 총을 든 한국 해병대원들의 성난 표정이 잡혔다. 노인과 부녀자, 아이들의 주검은 끝없이 나타났다. 살려달라 애원하는 부상자들의 일그러진 얼굴도 보였다. 실물보다 대여섯 배로 확대된 그 처절한 광경에 더 이상 눈을 붙이고 있을 수 없었다. 남베트남 민병대원 응웬사(…
망명객 혹은 ‘홈리스’ 김진수제1010호김진수(22·이하 괄호 속 숫자는 당시 나이)는 홈리스 신세였다. 1968년 1월1일, 그는 소파에 누워 쪽잠을 자다 눈을 떴다. 24시간 영업하는 도쿄 중심가 신주쿠 심야다방의 창문으로 새해 첫 햇살이 비쳐들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빗으며 화장실로 가 세수를 했다. 몸을 눕힐 거처...
알랭 들롱의 사인처럼제1008호슝슝슝. 머리 위로 폭탄이 날아갔다. 최영언(26) 중위를 비롯한 병사들은 귀를 막았다. 조금 뒤 경기를 일으킬 듯한 폭발음이 연이어 울렸다. 쾅! 쾅! 쾅! 쾅! 폭탄은 1분 간격으로 날아가 목표물을 수차례 때렸다. 전방 200여m 지점의 작은 숲은 초토화됐다. 그곳에 무언가 생명체가 있다면 ...
총성만 남기고 사라지는 유령제1006호왔다. 드디어 왔다. 몇 시간을 기다렸던가. 몸을 마음대로 뒤척이지 못해 얼마나 갑갑했던가. 수풀 속에 엎드린 그는 오른팔로 소련제 AK47 소총을 감아 끌어당겼다. 적의 예상 이동경로 부근에서 매복하는 중이었다. 얼굴엔 고구마 줄기를 짠 물로 검은 칠을 했다. 둥근 갈색 챙 모자엔 나뭇잎을...
주검에 면역된 듯 내 눈은 곧 무감해졌다제1004호나는 사진을 찍었다. 사진작가냐고? 아니다. 나는 군인일 뿐이다. 미합중국 정부의 명령에 따라 베트남에 왔다. 해병 제3상륙전부대 소속인 나는 남베트남 제2의 도시 다낭으로 입국해, 남쪽으로 25km 떨어진 꽝남성 디엔반현 1번 국도에 위치한 연합작전중대 산하 경비대에 배치되었다. 일명 ‘캡소대’라...
다행이야, 한 명만 죽어서제1002호엄마. 소녀는 뛰었다. 무작정 뛰었다. 머릿속은 엄마의 얼굴뿐이었다. 엄마를 찾아야 해. 엄마, 엄마, 엄마. 들판을 가로질렀다. 옆구리를 손으로 누르며 뛰었다.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손은 핏물로 흥건했다. 뛰다가 자꾸만 넘어졌다. 찢어진 옆구리 사이로 창자가 삐져나왔다. 손으로 눌러 집어넣고 다시 ...
벌레들 편에서 싸우다제1000호통통배가 출렁거렸다. 겨울바다는 싸늘했다. 오다 마코토(36)는 작은 어선 한 척에 몸을 싣고 항구에서 출발했다. 고기를 잡으러 온 것은 아니다. 바다의 정취를 만끽하려는 여행도 아니다. 배는 멀리 나아가지 않았다. 항구 주변에 있는 목표물로 곧장 향했다. 배 위엔 뜻을 같이한 네댓 명의 사내들이...
적 11명 사살, 운이 좋았다제998호“너도 죽자, 이 새끼야!” 정글 한가운데서 김 중사가 악을 썼다. 소대 2인자인 향도하사관이다. 그는 M16 소총을 들어, 미군 메디백(Medevac) 조종사의 이마를 겨눴다. 철커덕. 노리쇠까지 장전했다. 오른손 검지가 방아쇠에 닿았다. 미군 조종사는 사색이 되었다. 메디백은 환자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