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의 시대 저물다
등록 : 2023-11-30 21:50 수정 : 2023-12-01 22:48
1980년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모습. AFP 연합뉴스
‘냉전의 종결자’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23년 11월29일 코네티컷주 켄트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100.
헨리 앨프리드 키신저는 1923년 독일 바이에른주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나치 정권의 탄압을 피해 15살 때인 1938년 미국으로 이민한 그는 뉴욕시립대 재학 중이던 1943년 징집돼 유럽 전장으로 보내졌다. 유창한 독일어 능력 덕에 보병에서 정보병으로 병과를 바꾼 키신저는 점령지역 행정 책임자까지 맡아가며 현실주의적 국제정치의 진면목을 목격한다.
제대 뒤 하버드대학으로 옮겨간 그는 미국 역대 대통령 6명을 보좌했던 역사학자 겸 국제정치학자 윌리엄 얜델 엘리엇의 지도 아래 1954년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교에 머물며 다양한 경로로 외교정책 자문을 하던 그는 1969년 1월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4년 뒤 국무장관을 겸직하게 됐고,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자진 사임한 뒤에도 자리를 지키고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보좌했다.
1970년대는 키신저의 시대였다. 그는 소련과 데탕트(긴장 완화)를 시도하는 한편, 소련을 고립시키기 위해 미-중 수교의 물꼬를 텄다. 21세기 국제정치의 뼈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베트남전 종전 협상을 주도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3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것이 키신저 이력의 빛이라면, 선거를 통해 집권한 첫 사회주의자인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배후 조종’한 것은 그가 만든 숱한 어둠 중 하나다. <뉴욕타임스>는 11월29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말을 따 “키신저가 만들어 놓은 세상을 고치느라 임기 내내 분주했다”고 전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뉴스 큐레이터: <한겨레21> 기자들이 이주의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뉴스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