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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오바마·힐러리가 바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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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17 00:00 수정 : 2009-01-0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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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진 미국, 교차 집권 대비가 극적으로 표출된 대북정책의 변화는

▣ 한승동 한겨레 선임기자 sdhan@hani.co.kr

북한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으로 날아가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난 게 2000년 10월. 뒤이어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으로 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클린턴의 방북까지 염두에 둔 것이었다. 북-미 관계 정상화는 시간문제로 보였다. 4개월 전인 그해 여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갔고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때의 기세 그대로 역사가 진행됐다면 남북 관계, 북-미 관계, 한-미 관계, 한-일 관계, 한-중 관계, 중-일 관계, 미-중 관계 등 한반도를 에워싼 정세 전반은 크게 요동쳤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 생활 전반과 세계관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2000년 10월 기세대로 역사가 진행됐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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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그 다음달 상황은 급선회했다. 재개표 논란 끝에 공화당 조지 부시가 민주당 앨 고어를 눌렀고, 북-미는 관계 정상화 문턱에서 다시 끝나지 않은 전쟁 상태, 휴전하의 준전시 상태로 되돌아갔다. 그 갑작스러운 반전은 광복 이후 첫 집권세력 교체, 첫 남북 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이 함축했던 모든 가능성을 뒤틀어버렸다. 부시는 클린턴이 짜놓았던 모든 계획표를 찢어버렸다. 많은 일이 오직 클린턴이 짰다는 이유만으로 부정당했다. ‘ABC(Anything But Clinton, 클린턴만은 안 돼).’

그때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 삶을 떠받치고 있는 체제의 주인이 우리 자신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착각이었는지 되새겨야 했다. 저마다의 ‘내 인생’이 어떻게 내 손이 닿지 않는 외적 변수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지 깨달았다.

우리는 여전히 그런 외생변수가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미국에서 공화당이 집권하든 민주당이 집권하든 무슨 본질적인 차이가 있느냐고 하겠지만, 정작 그들에겐 사소한 차이일지 몰라도 우리에겐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만큼 큰 해일로 증폭되는 그들의 변방에 우리는 놓여 있다.

8년 만에 다시 미국에서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졌다. 2기 연속 집권한 공화당 부시 정권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비극에서 보듯 세계와 미국을 갈라놓았다. 그들의 변방인 이 땅도 갈가리 찢어놓았다. 그들이 압박한 신자유주의와 네오콘적 패권주의가 남긴 상처는 깊고 험하다. 물론 어느 시대에나 당하는 자가 있으면 누리는 자도 있는 법. 좀 생뚱맞지만, 이런 노래가 불쑥 떠오른다.

“바빌론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다./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우리의 수금을 걸어놓고서,/ 우리를 잡아온 그 사람들이/ 그곳에서 노래하라 청하였지만,/ 우리를 끌어온 그 사람들이/ 기뻐하라고 졸라대면서/ ‘한 가락 시온 노래를 불러라’고 하였지만/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야훼의 노래를 부르랴!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말라버릴 것이다.”(성서 <시편> 137)

일제시대 이래 지금까지 눈물 흘리는 사람들 한편에선 수금을 뜯으며 점령군에게 기쁨의 노래를 바친 대가로 호사를 누리는 자들이 항상 있었다. 억압과 점령이 있는 곳 어디에나 바빌론은 존재한다.

2008년 미국 대선 관전법은 비교적 간단명료한 것 같다. 핵심은 민주당 흑인 주자 버락 후세인 오바마(47)와 여성 주자 힐러리 로뎀 클린턴(61).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나 첫 여성 대통령의 탄생은 많은 논점들을 뒷전으로 밀어놓을 만큼 충격파가 적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한때 ‘좌파적’이었다는 얘기를 듣는 힐러리, 힐러리보다 더 ‘리버럴’하다는 오바마. ‘변화’를 갈구하는 2008년 미국 대선 트렌드에 오바마와 힐러리는 분명 잘 먹혀드는 상품이다. 딕 체니 부통령도 뒷전으로 물러나 기성 유력 정치인들이 몽땅 빠지고 신진들이 정권을 다투기는 미국 대선 사상 80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재난의 지난 7년을 떠올리며 기대를 걸 만하다. 공화당 쪽은 근본주의 남부 침례교파 목사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주 지사가 한때 반짝했으나, 대체로 이런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다. 존 매케인은 부시의 이라크 정책을 때로 비판하지만 네오콘적 패권주의자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일본의 핵무장도 용인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버락 오바마의 중간이름 ‘후세인’

버락 후세인 오바마의 ‘후세인’은 할아버지 이름에서 온 것이다. 오바마는 프로테스탄트 기독교도지만 흑인, 무슬림 등 그와 연관된 이미지들은 최근 미국을 지배해온, 그리고 미국이 지배해온 네오콘적 패권주의 무드와 극적으로 대비된다. 그런 그의 극적인 부상은 기성 정치인적 이미지를 지닌 힐러리 쪽보다 분명 훨씬 더 큰 충격 효과를 지닌다.

오바마든 힐러리든, 그들의 민주당이 집권하면 달라질까. 오바마 역시 미국 주류사회의 주문을 따르겠지만 부시 방식의 이라크 개입에는 반대하며, 무차별 자본주의 세계화에 회의적이고, 자국 노동자 보호를 이유로 신자유주의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반대한다. 러시아와의 구체적인 핵무기 감축 방안을 얘기할 만큼 핵확산 금지와 그 운반 수단인 미사일 개발 배치 억제에도 공화당 정권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다. 대북정책에서도 이제까지와는 생각이 좀 다른 전문가들을 주변에 포진시킬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미국은 지난 10여 년간 정권교체기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정치세력이 교차 집권하는 묘한 상황이 계속돼왔고, 그런 대비는 특히 대북정책에서 극적으로 표출됐다. 부시 대 노무현만큼이나 이질감이 있는 오바마 또는 힐러리 대 이명박 구도가 등장할까. 미국이라는 외생변수는 우리에게 또 어떤 변화를 요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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