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도록 거대한 중국 황허강의 황제 얼굴, 북의 단군왕릉과 남의 사극 드라마 열풍은 그와 얼마나 다를까
▣ 한승동 한겨레 선임기자 sdhan@hani.co.kr
황제의 머리 위에 있는 사람이 정말 점처럼 작아 보인다. 황허강을 내려다보는 허난성 정저우시 근교 ‘황하풍경구’에 조성된 황제와 그의 의좋은 형제였다는 염제 두 거대 석상(얼굴상)의 높이는 무려 106m.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 산꼭대기에도 이와 비슷한 ‘큰바위 얼굴’들이 있지만, 염황이제상을 만든 중국 민족주의자들이 비교 대상으로 삼은 것은 뉴욕항 리버티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염황이제상이 이보다는 높아야 한다는 게 석상 크기를 정한 기준이었고, 그래서 8m 더 높게 만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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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BC 841년을 BC 2070년으로 <만들어진 민족주의-황제신화>(책세상 펴냄)의 지은이 김선자 교수는 아예 산 하나를 봉우리 중간 부분에서 두부 자르듯 통째로 잘라내고 나란히 앉혀놓은 황제와 염제의 거대한 화강석상 앞에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여기 황제는 ‘皇帝’(emperor)가 아니라 신화 속의 중국인 조상 ‘黃帝’다. 김 교수에 따르면, 10년여 전부터 시작된 ‘하상주 단대공정’과 ‘중화문명 탐원공정’ 등의 대규모 역사고고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 역사는 사마천이 확립한 기원전 841년 상한을 기원전 2070년으로 밀어올렸고, 황제 역사화 작업을 통해 다시 1천 년을 더 끌어올릴 작정이다. ‘공정’이란 고구려, 발해도 중국 역사로 몰아가는 ‘동북공정’의 바로 그 공정이다. 염황이제 거석 아래는 중국을 구성하는 56개 민족의 휘장과 소개말을 새긴 돌판들이 장식돼 있는데, 거기에는 장구를 상징물로 삼은 조선족 돌판도 있단다. 정저우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허난성 외에 허베이성, 산시성 등 중원 곳곳과 랴오닝성에서도 신화·전설 속의 인물들을 중국 역사 속 실존 인물로 만들어 역사 연대를 수천 년 끌어올리는 발굴 작업과 거대기념물 조성, TV 드라마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김 교수는 답사를 통해 그 현장들을 눈으로 확인했다. 워싱턴·제퍼슨·링컨·시어도어 루스벨트 등 미국을 일으켜세운 위인들을 새긴 러시모어산 큰바위 얼굴은 남북전쟁과 미국-스페인 전쟁,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이 제국으로 급부상하던 20세기 전반기에 만들어졌다. ‘중국의 세기’가 운위되는 21세기의 전반기에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심상찮다. 그런 점에서는 10년여 전부터 본격화한 일본이 한 수 빨랐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회장 니시오 간지가 1999년에 엮어낸 <국민의 역사>(산케이신문사 펴냄)는 일본판 큰바위 얼굴 만들기였는데, 그 기세가 대단했다. 선사시대 조몬과 야요이 문명은 물론 70만 년 전 전기 구석기 시대까지 일본 역사 시대 속으로 끌어올렸다. 한반도는 본래 일본이 지배했던 곳이고 조선을 아비규환의 폐허로 만든 저 임진년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조선 침략을 칭기즈칸과 스페인 펠리페 2세의 정벌과 동렬의 위대한 세계사 창조 반열에 올려놨다. 2000년 7월에 그들이 일본 역사 상한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후지모리 신이치 도호쿠구석기문화연구소 부이사장의 ‘신들린’ 구석기 유물 발굴이 몽땅 그가 스스로 묻고 파낸 완전한 날조극이라는 사실이 <마이니치신문> 카메라에 잡혀 들통났음에도 기세는 별로 수그러들지 않았다. 북쪽의 거대한 단군왕릉 조성, 남쪽의 사극 드라마 열풍이 그와 얼마나 다를까. <한국의 자주적 대북정책은 가능한가>(한울 펴냄)에서 지은이 안정식 기자는 가능하지만, 그것은 한-미 공조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며, “‘한-미 공조’가 반드시 ‘자주’에 반하는 것인지에 대한 좀더 깊은 성찰”을 촉구했다. 그는 미국이 한국의 의사에 반한 대북정책을 펼치려 할 경우 이를 무력화할 정도의 힘은 갖게 됐지만, 미국 역시 한국의 대북정책을 거부할 힘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고 싶지 않든 현실적으로 북한 문제를 주도하는 힘은 미국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냉전 이후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간의 갈등과 협력에 관한 깔끔한 정리를 토대로 한 안 기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미국이 여전히 주도권을 갖고 있는 현실에서 다른 수가 있겠는가. 미국이 ‘이이제이’를 구현할 절호의 기회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을 직시하자는 차원에선 그의 얘기는 반박의 여지가 없지만, 그런 논리가 자칫 무궁한 현상고착론에 복무하지 않을까. 우리가 약하다고 해서 강자에 기댈수록 약자로부터 탈출할 기회는 점점 더 적어지고 그래서 더욱 기대야 한다는 악순환의 논리로 빠질 염려는 없을까. 고영대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원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의 기만성과 대미 군사적 예속의 지속’은 작전통제권 환수를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군부 일각의 영원한 ‘약자 논리’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대북 정보든 장비든 미국에 기댈수록 자체 개발 여지는 적어지고 그래서 더욱 기댈 수밖에 없다면, 결국 ‘약자이기 때문에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궤변이 횡행하는 세계가 아닌가. 그런 논리는 동아시아 민족주의가 춤을 출수록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겁나는 중국 때문에, 일본, 북한 때문에 미군은 이 땅에 계속 남아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논리. 냉전 이후 오히려 증폭돼가는 동아시아 민족주의야말로 미군 주둔을 축으로 한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 각국을 갈라놓고 ‘이이제이’를 구현할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나 않은가. 중국에도 결코 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사마천의 BC 841년을 BC 2070년으로 <만들어진 민족주의-황제신화>(책세상 펴냄)의 지은이 김선자 교수는 아예 산 하나를 봉우리 중간 부분에서 두부 자르듯 통째로 잘라내고 나란히 앉혀놓은 황제와 염제의 거대한 화강석상 앞에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여기 황제는 ‘皇帝’(emperor)가 아니라 신화 속의 중국인 조상 ‘黃帝’다. 김 교수에 따르면, 10년여 전부터 시작된 ‘하상주 단대공정’과 ‘중화문명 탐원공정’ 등의 대규모 역사고고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 역사는 사마천이 확립한 기원전 841년 상한을 기원전 2070년으로 밀어올렸고, 황제 역사화 작업을 통해 다시 1천 년을 더 끌어올릴 작정이다. ‘공정’이란 고구려, 발해도 중국 역사로 몰아가는 ‘동북공정’의 바로 그 공정이다. 염황이제 거석 아래는 중국을 구성하는 56개 민족의 휘장과 소개말을 새긴 돌판들이 장식돼 있는데, 거기에는 장구를 상징물로 삼은 조선족 돌판도 있단다. 정저우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허난성 외에 허베이성, 산시성 등 중원 곳곳과 랴오닝성에서도 신화·전설 속의 인물들을 중국 역사 속 실존 인물로 만들어 역사 연대를 수천 년 끌어올리는 발굴 작업과 거대기념물 조성, TV 드라마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김 교수는 답사를 통해 그 현장들을 눈으로 확인했다. 워싱턴·제퍼슨·링컨·시어도어 루스벨트 등 미국을 일으켜세운 위인들을 새긴 러시모어산 큰바위 얼굴은 남북전쟁과 미국-스페인 전쟁,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이 제국으로 급부상하던 20세기 전반기에 만들어졌다. ‘중국의 세기’가 운위되는 21세기의 전반기에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심상찮다. 그런 점에서는 10년여 전부터 본격화한 일본이 한 수 빨랐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회장 니시오 간지가 1999년에 엮어낸 <국민의 역사>(산케이신문사 펴냄)는 일본판 큰바위 얼굴 만들기였는데, 그 기세가 대단했다. 선사시대 조몬과 야요이 문명은 물론 70만 년 전 전기 구석기 시대까지 일본 역사 시대 속으로 끌어올렸다. 한반도는 본래 일본이 지배했던 곳이고 조선을 아비규환의 폐허로 만든 저 임진년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조선 침략을 칭기즈칸과 스페인 펠리페 2세의 정벌과 동렬의 위대한 세계사 창조 반열에 올려놨다. 2000년 7월에 그들이 일본 역사 상한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후지모리 신이치 도호쿠구석기문화연구소 부이사장의 ‘신들린’ 구석기 유물 발굴이 몽땅 그가 스스로 묻고 파낸 완전한 날조극이라는 사실이 <마이니치신문> 카메라에 잡혀 들통났음에도 기세는 별로 수그러들지 않았다. 북쪽의 거대한 단군왕릉 조성, 남쪽의 사극 드라마 열풍이 그와 얼마나 다를까. <한국의 자주적 대북정책은 가능한가>(한울 펴냄)에서 지은이 안정식 기자는 가능하지만, 그것은 한-미 공조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며, “‘한-미 공조’가 반드시 ‘자주’에 반하는 것인지에 대한 좀더 깊은 성찰”을 촉구했다. 그는 미국이 한국의 의사에 반한 대북정책을 펼치려 할 경우 이를 무력화할 정도의 힘은 갖게 됐지만, 미국 역시 한국의 대북정책을 거부할 힘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고 싶지 않든 현실적으로 북한 문제를 주도하는 힘은 미국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냉전 이후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간의 갈등과 협력에 관한 깔끔한 정리를 토대로 한 안 기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미국이 여전히 주도권을 갖고 있는 현실에서 다른 수가 있겠는가. 미국이 ‘이이제이’를 구현할 절호의 기회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을 직시하자는 차원에선 그의 얘기는 반박의 여지가 없지만, 그런 논리가 자칫 무궁한 현상고착론에 복무하지 않을까. 우리가 약하다고 해서 강자에 기댈수록 약자로부터 탈출할 기회는 점점 더 적어지고 그래서 더욱 기대야 한다는 악순환의 논리로 빠질 염려는 없을까. 고영대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원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의 기만성과 대미 군사적 예속의 지속’은 작전통제권 환수를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군부 일각의 영원한 ‘약자 논리’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대북 정보든 장비든 미국에 기댈수록 자체 개발 여지는 적어지고 그래서 더욱 기댈 수밖에 없다면, 결국 ‘약자이기 때문에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궤변이 횡행하는 세계가 아닌가. 그런 논리는 동아시아 민족주의가 춤을 출수록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겁나는 중국 때문에, 일본, 북한 때문에 미군은 이 땅에 계속 남아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논리. 냉전 이후 오히려 증폭돼가는 동아시아 민족주의야말로 미군 주둔을 축으로 한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 각국을 갈라놓고 ‘이이제이’를 구현할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나 않은가. 중국에도 결코 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