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의 동맹을 위해 민족 비극은 안중에 없는 미국 조야, 아미티지와 마이클 그린
▣ 한승동 한겨레 선임기자 sdhan@hani.co.kr
‘배타적 민족주의, 대만해협 긴장, 한반도(남북) 문제, 영토분쟁, 필리핀·타이의 반군(내란) 문제.’
조지 부시 정권 1기 때 미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리처드 아미티지가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된 일본 <아사히신문>의 특별기획 시리즈 ‘새 전략을 찾아서’ 첫회분 인터뷰에서 지적한 ‘아시아가 안고 있는 5가지 문제’다. 그때 아미티지가 한 얘기를 다시 한 번 짚어보자.
‘민족주의’와 일본은 관련없다?
하나는, 미-일 동맹 얘기를 하면서 “일본이 최종적으로 헌법 9조 문제를 해결하면 양국 관계는 한층 더 대등해질 것”이라고 한 것이다. 헌법 9조 문제 ‘해결’이란 곧 9조를 없애버리든지 군대 보유와 전쟁 수행을 막는 내용을 바꾸라는 얘기다. 주한미군까지 포함한 전세계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가 지금 한창 진행 중이지만, 미국과 일본은 워싱턴주에 있는 미 육군 1군단 사령부를 일본 자마 기지로 옮기는 등 양국군 지휘체제 통합을 서두르고 있다. 목표는 미·일 자본주의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전 지구 규모(글로벌) 신속대응군을 만드는 것이다. 그 선결 조건으로 교전과 해외 파병이 가능한 일본 자위대의 ‘보통군대화’가 필수적이며, 그러기 위해선 9조를 없애야 한다. 평택기지 확장 등 주한미군의 재배치와 전략적 유연성 확보도 같은 맥락 아래서 추진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과거사 문제에 관한 것인데, 아미티지는 미국은 일본과의 과거사를 이미 다 해결했다며 “다만 몇 나라가 국내 문제 때문에 국민의 눈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있고 거기에 과거사 문제를 이용해먹고 있다”고 주장했다. ‘몇 나라’란 바로 중국과 한국, 북한을 가리킨다. 일본은 아무 문제 없다는 얘기다.
아미티지만 그러랴. 미국 조야에 중요한 것은 군사력을 나라 안팎에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는 ‘보통 국가’ 일본과의 동맹 강화다. 이를 위해선 헌법 9조 폐기에 반대하는 일본 내 여론을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 그래서 대두한 게 일본 민족주의, 곧 우경화다.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이용해먹고 있는 쪽은 미국과 일본 우파 지도부다. 일본의 위기의식과 선민의식을 부채질하는 한편 급성장하는 중국의 위협을 과장하고, 있지도 않은 한국 내 친북 좌파의 음모를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북한의 무력 도발과 예측 불가능성을 끊임없이 부각시켜야 한다. 미국이 일본의 과거사 왜곡에 제동을 거는 것은 우익들이 2차 대전 뒤 미군의 일본 점령과 미국 주도의 질서 재편을 정당화한 도쿄전범재판까지 부정하거나, 중국·한국 내 반일 감정을 지나치게 자극해 한-미-일 안보·군사 공조체제를 흔드는 등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 정책에 역풍이 불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때뿐이다.
아미티지는 거짓말을 했다. 문제는 오히려 자신들이 부추기고 있는 일본 민족주의이며, 그것이 부르는 일파만파의 연쇄작용이다. 그런 식의 접근은 미-일 동맹은 강화해주겠지만 남북한의 분열을 영구화하고 중국과 일본의 불화를 조장해 동아시아의 정세 불안을 항구화한다. 실은 그것이야말로 미군 주둔 정당화 등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 구실이 된다.
국내 ‘전문가들’과 짝짜꿍이 비극의 본질
냉전 붕괴 뒤 한때 흔들렸던 미-일 동맹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고 미국 내 일본통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넘버원 국가 일본>을 쓴 에즈라 보겔 국가정보회의 동아시아담당 분석관, 조지프 나이 국제안보담당 국방차관보(지금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 등이 그들이다. 그걸 토대로 아미티지가 주도해 만든 정책제안서가 2000년의 이른바 ‘아미티지 리포트’고, 2007년의 ‘2차 아미티지 리포트’다. 모두 일본 재무장과 미-일 군사동맹 강화, 미-일 관계를 동아시아의 미국-영국 관계로 만드는 것이 그 목표다. 이런 작업에 줄곧 실무 브레인으로 참여한 인사들 중 한 사람이 마이클 그린(46)이다. 1997년까지 미국 방위분석연구소(IDA) 연구원, 2000년까지 국방부 아·태국 선임보좌관, 같은 기간 <포린어페어스>를 발행하면서 미국 정부 바깥에서 가장 강력한 대외정책 싱크탱크 구실을 하고 있는 외교관계협회(CFR) 아시아 안보담당 선임연구원으로 있었다. 그리고 2004년까지 국가안보회의 일본·한국담당 부장이었고 2004년 1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2년간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부장 겸 동아시아담당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지금은 조지타운대 교수이자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부장이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도쿄대에 유학하는 등 일본어가 유창한, 고이즈미-아베-아소 다로로 이어지는 우익 편향의 일본통이다.
그런 마이클 그린이 지난 10월9일 <중앙일보>에 어이없는 글을 썼다(‘남북 정상회담의 다섯 가지 문제’). 내정 불간섭과 전쟁 반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북한 내 경제특구 확대 등에 관한 합의는 몽땅 북핵·인권 문제에 관한 부시 대통령 뜻을 “공공연히 거부”한 것이라며, 남북 정상 선언을 구속력을 가진 국제합의가 아니라 북한에 퍼주기를 하려는 좌파 진보세력의 국내용 “정치적 제스처”로 매도했다. 그러고는 모든 걸 다음 정권에 맡기라고 윽박질렀다. 다음 정권은 ‘자기 편’으로 예약돼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마치 해외 식민지를 관장하는 로마 귀족처럼. 그의 머리는 온통 미-일 동맹 강화와 이를 위한 한-미-일 공조체제 강화로 채워져 있을 뿐 한민족 분단의 비극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아니면 학문적 상상력이 형편없거나. 실은 그런 자들이 미-일 관계, 한-일 관계 그리고 대북 관계 등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좌우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공부한 국내 ‘전문가들’ 대다수와 보수언론들이 짝짜꿍치며 그들과 한통속이 돼 움직이고 있는 것이 비극의 본질일지 모른다.

지난 2005년 6월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마이클 그린 당시 미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국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 백승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