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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일본은 아시아 일원으로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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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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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비경쟁과 안보 딜레마의 원인은 서세와 결탁한 일본의 역내 장악 구조

▣ 한승동 한겨레 선임기자 sdhan@hani.co.kr

“통일한국의 국내 정치는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을 밀어낼 것이다.”

“새로운 한국은 중국과 대륙적 연대를 모색할 것이다.”


“일본과 긴장이 고조되면 한국은 중국 편에 설 것인데, 그 이유는 한국의 부활된 민족주의와 새로운 군사역량이 결합되면 역사적 숙적인 일본과의 안보 딜레마를 촉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구학적으로 늙은 나라인 일본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고립되며, 이 지역에 남아 있는 마지막 미국의 전초기지로서 편치 못한 상태에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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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북핵 퍼즐>의 통일 이후 해법

빅터 차와 데이비드 강이라는 유명한 한국계 미국 동아시아 전문 정치학자들은 자신들이 공동 집필한 <북핵 퍼즐>(Nuclear North Korea: A Debate on Engagement Strategies·따뜻한손 펴냄)에서 남북한 통일 이후 전개될 정세 변동의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를 이렇게 정리했다. 이들은 이런 시나리오가 “충격적”인 것이라며, 그 이유는 그렇게 될 경우 미국 국익이 심하게 침해당하기 때문이라 했다. 또 약해지고 고립된 일본은 아시아 최후의 미국 군사 식민지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리고 싶어할 것이며 결국 안보 자주화를 선택할 수 있고, 이는 다시 중국과 한국에 군비경쟁을 유발시켜 핵무장까지 포함하는 군비증강으로 역내 안보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점쳤다.

그래서 해결책은 한-일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한-미-일 삼각 공조체제를 공고히 하는 걸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며 미국은 이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동아시아 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번 따져보자.

‘한반도 통일 → 일본과의 안보갈등 → 통일한국과 중국의 연대 → 일본, 주일미군 내보내고 핵무장 등 군비증강 → 역내 군비경쟁 가속화 → 미국, 동아시아 교두보 상실.’

이 모든 과정은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사태를 원천봉쇄하려면 남북한의 통일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그게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최대한 늦추되 장차 통일한국을 미-일 동맹 자장 내에 포섭해 한-미-일 공조체제를 강화한다. 이게 저자들이 내놓은 해법이다. 지금까지 미국 주도의 한-미-일 공조체제와 기본적으로 다를 바 없지만 이번엔 한반도 전체를 포섭한다는 점에서 새 공조체제는 훨씬 더 위력적이다. 과연 이렇게 되면 동아시아 군비경쟁을 피할 수 있을까? 중국과 러시아는 안도감을 느낄까? 오히려 훨씬 더 치명적인 군비경쟁으로 치닫지 않을까? 지난 60여 년처럼 여전히 끝없는 긴장과 소모가 되풀이되는 그 최전선에 한반도가 있고 일본은 그 뒤에, 미국은 더 한참 뒤에서 조종할 것이다.

그래도 좋다. 한-미-일 결속은 더욱 강화될 것이고 한국, 일본의 미국으로의 경사도 더욱 심화될 것이다. 미국이 손해볼 것은 없다. 하지만 그게 우리에게도 유리할까? 이쯤에서 한국계 미국인들의 정체성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빅터 차는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 조지타운대학 정치학과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이자 아시아연구기금 책임자로 있다. 부시 정권 2기가 시작되기 바로 전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국장이라는, 한국계로서는 미국 정부 안보담당 최고위직에 올랐다. 북핵 6자회담 미국 차석대표로도 활동하다 올해 4월 말 대학으로 복귀했다. 데이비드 강은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다트머스대학 정치학과 부교수, 경영전문대학원 국제비즈니스센터 겸임교수 및 연구책임자를 맡고 있다. 이들이 중립적 관찰자일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미국은 정말 동아시아 안보의 중립적 균형자인가?

더 근본으로 들어가보자.

동아시아 근대의 비극은 1840년 아편전쟁이 상징하듯 일방적인 서세동점에서 비롯됐다. 더 큰 비극은 서방 제국주의국들과 손잡고 아시아 침탈에 나선 일본이 그들의 행태를 답습하면서 아시아의 근대를 이중으로 왜곡하고 유린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런 행태는 패전 뒤에도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중국이나 한국의 민족주의는 주로 거기서 촉발됐다. 일본은 처음에 영국과 손을 잡았고 나중엔 미국과 손을 잡았다. 20세기 초 일본과 손잡았던 또 하나의 신흥제국 미국은 일본이 만주 점령과 중국 침략으로 동아시아 이권을 독점하려 하자 알력을 빚었고 마침내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으로 결전에 돌입했다. 미국은 승전 뒤 일본을 사실상 군사식민지로 육성했고(그 부담은 거의 전적으로 일본 국내 식민지인 오키나와가 졌다), 일본 지배세력은 천황제 존속을 조건으로 이를 수용했다.

홀로 이익을 향유하는 악순환 구조

이 구조, 즉 동아시아 역내의 일본이 역외의 서세와 결탁해 역내를 장악하려는 구조야말로 지난 1세기 동안 끝없이 안보 딜레마를 낳고 군비경쟁과 편짜기를 야기하지 않았던가. 그 덕에 한반도는 식민과 분단과 전쟁과 이산과 남북 대치로 얼룩졌다. 한반도의 통일은 단순한 민족 재결합이 아니라 이런 구조, 외세가 일본을 이용하고 일본은 거기에 편승해 주변의 고통을 대가로 홀로 이익을 향유하는 메이지유신 이래의 그 악순환 구조를 날려버리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분단 기획자’ 미국은 한반도의 비극에 책임을 느껴야 하며, 일본을 앞세운 동아시아 패권전략 놀음을 그만둬야 한다. 일본은 패권국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한 안보체제 대신 아시아의 일원으로 복귀해 상호 신뢰와 우호를 토대로 인적, 경제적, 문화적 교류를 강화하는 동아시아 연대 및 평화체제를 추구해야 한다. 그게 일본이 천황제와 과거사의 덫에서 놓여나는 길이고 미국 역시 패권 망상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일본의 탈미입아(脫美入亞)가 다 함께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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