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그대로인 주둔비용 지원금, 일본은 패전국이었으니 그렇다 치고 우리의 ‘오모이야리 예산’은 도대체 뭔가
▣ 한승동 한겨레 선임기자 sdhan@hani.co.kr
한국과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 주둔비용 지원금을 지난해 6804억원에서 451억원 올린 7255억원으로 하자고 합의하자, 각계 인사 400여 명이 국회에서 ‘절대 안 된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방위비 분담은 한-미 주한미군 지위에 관한 협정(SOFA) 5조에서 정한 ‘한국은 시설과 구역을 제공하고 미국은 주한미군 유지에 따르는 모든 경비를 부담한다’는 원칙마저 깨뜨린 불법이다.”
일본 잔머리 굴리기 도사들, 교묘하게 대주다
방위비 분담이란 게 뭔가? 이걸 알려면 일본 쪽을 먼저 살펴보는 게 좋다. 주일미군은 주한미군의 교본이다. 일본 참의원 외무위원회 조사실이 작성한 ‘재일미군주둔경비특별협정’ 중의 ‘이제까지의 주둔경비분담 경위’에 이런 게 있다. “거기(주일미군 지위협정)에는 시설·구역의 제공에 들어가는 경비는 우리나라가 분담하지만(24조 2항), 시설·구역 제공 뒤의 ‘미국 군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경비’(24조 1항)는 미국이 대는 것으로 돼 있다.”(<주일미군기지 수지결산>, 마에다 데쓰오) 우리나라 각계 인사들이 기자회견장에서 얘기한 ‘한국은 시설과 구역을 제공하고 미국은 주한미군 유지에 따르는 모든 경비를 부담한다’와 글자까지 똑같다. 아마 세계 다른 곳에 주둔하는 미군의 지위협정들도 모두 그렇겠지만, 바로 이 원칙을 농락하면서 ‘시설과 구역’뿐만 아니라 사실상 미군 ‘유지에 따르는 거의 모든 비용’까지 교묘하게 대주는 잔머리 굴리기의 도사들이 일본 정치인과 관료들이고 그들은 바로 한국 관료들의 선생이다. 2000년에 일본 정부가 부담한 주일미군 주둔 관련비는 6619억엔(우리 돈으로 5조원이 넘는다)인데, 여기에 오키나와 기지 정리 비용까지 합하면 6759억엔이나 됐다. 이 가운데 본래 지위협정 규정대로 한다면 시설정비비 960억엔, 노무비 1492억엔, 광열비·물값 등 297억엔, 훈련이전비 3억5천만엔, 오키나와 기지 정리 비용 140억엔을 모두 합해 총 2892억5천만엔은 미국이 냈어야 한다. 하지만 미군이 고용한 종업원 월급과 수당, 미군 가족 주택건설비와 전기·가스·수도 요금, 거기에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 포사격 훈련을 하러 간 미 해병대원들의 항공요금이나 배삯까지 몽땅 일본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했다. 미국이 책임지는 주일미군 활동 경비는 자국 군인들 기본급 정도밖에 없다. 이처럼 협정을 위반해가며 일본이 미군 쪽에 주고 있는 돈을 ‘오모이야리 예산’이라 하는데, 우리말로 ‘배려 예산’쯤으로 옮길 수 있다. 국회에서 기자회견한 사람들이 ‘불법’이라 한 게 바로 이 ‘오모이야리 예산’ 부분일 게다. 일본처럼 우리도 인건비·광열비까지 다 내고도 그들의 인사에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을 뿐 아니라 기지 전체의 운영과 유지, 이용과 점유, 경비 어느 것 하나 간섭할 권리가 없다. 치외법권지대다. 도쿄국제대학 교수 마에다 데쓰오는 “실상으로 보자면 주일미군 기지는 ‘군사조차지’ ‘미국 조계’라고 부르는 게 정확하다”고 했다. 상하이 등 중국 28개 지역에 설치됐던 조계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나 마찬가지였다. 중국이 조계 내 자국인에 대한 재판권은 갖고 있었지만 경찰권이 없는 상황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었다는 곳이다. 이 ‘조계’지 안쪽은 별천지다. 오키나와 쪽 가데나 기지, 캠프 즈케란에는 하이타워라 부르는 고층 맨션들이 치솟고 빨간 기와를 인 고급장교 전용 주택, 독신자 전용, 아이 없는 부부 전용 주택들이 띄엄띄엄 전원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한꺼번에 50명이 미팅을 할 수 있는 거실이 있는가 하면 해병대원들은 모두 각자 자기 방을 갖고 있다. 자위대원은 최근에야 4인1실 방에서 2인1실 방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총비용을 군인 수로 나눈 1인당 비용을 보면, 주일미군은 1606만엔(인건비 등은 빼고), 자위대원은 1059만엔으로 미군 쪽이 50%나 더 많다. 몽땅 싸들고 나가시오! 중요한 건, 일본의 ‘오모이야리 예산’은 1970년대 일본이 미국한테서 오키나와를 반환받는 과정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그 무렵 ‘닉슨 쇼크’에 따른 달러급락-엔강세 영향도 있었지만, 일본이 사실상 “돈을 내고 (오키나와를) 샀다”는 얘기를 듣는 것도 그 때문이다.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놓지 않으면 한-미 양국이 합의한 미군기지 재배치 및 통합계획의 계획대로 안 할 수도 있다고 큰소리쳤다. 제 이득 보자고 와 있는 판에, ‘오모이야리 예산’을 늘리지 않으면 용산기지를 못 돌려주겠다고 협박하는 건가. 일본이야 패전국이었고, 패전국이 점령국한테 돈을 주고라도 빼앗겼던 땅을 돌려받은 건 명분이라도 선다. 더우기 미-일 동맹 강화를 통한 동아시아 패권 유지에 골몰하고 있는 일본 처지에서 그만한 돈쯤은 정말 ‘오모이야리’해도 손해볼 게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오모이야리 예산’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우리는 ‘조계지’ 안쪽은 물론 바깥에서조차 미군에 대한 경찰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 아닌가. 지금의 동아시아 안보체제 유지가 곧 한반도 분단체제 유지로 이어지는, 아니 분단을 ‘보장’하는 상황에서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미군을 붙잡아둬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차제에 버웰 벨에게 이렇게 통고하면 어떨까. “한 푼도 더는 못 내겠으니, 나갈 테면 아예 몽땅 싸들고 나가시오!”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4월24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놓지 않으면 이미 합의한 미군기지 재배치 및 통합계획을 깰 수도 있다고 큰소리쳤다.(사진/ 한겨레 강창광 기자)
방위비 분담이란 게 뭔가? 이걸 알려면 일본 쪽을 먼저 살펴보는 게 좋다. 주일미군은 주한미군의 교본이다. 일본 참의원 외무위원회 조사실이 작성한 ‘재일미군주둔경비특별협정’ 중의 ‘이제까지의 주둔경비분담 경위’에 이런 게 있다. “거기(주일미군 지위협정)에는 시설·구역의 제공에 들어가는 경비는 우리나라가 분담하지만(24조 2항), 시설·구역 제공 뒤의 ‘미국 군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경비’(24조 1항)는 미국이 대는 것으로 돼 있다.”(<주일미군기지 수지결산>, 마에다 데쓰오) 우리나라 각계 인사들이 기자회견장에서 얘기한 ‘한국은 시설과 구역을 제공하고 미국은 주한미군 유지에 따르는 모든 경비를 부담한다’와 글자까지 똑같다. 아마 세계 다른 곳에 주둔하는 미군의 지위협정들도 모두 그렇겠지만, 바로 이 원칙을 농락하면서 ‘시설과 구역’뿐만 아니라 사실상 미군 ‘유지에 따르는 거의 모든 비용’까지 교묘하게 대주는 잔머리 굴리기의 도사들이 일본 정치인과 관료들이고 그들은 바로 한국 관료들의 선생이다. 2000년에 일본 정부가 부담한 주일미군 주둔 관련비는 6619억엔(우리 돈으로 5조원이 넘는다)인데, 여기에 오키나와 기지 정리 비용까지 합하면 6759억엔이나 됐다. 이 가운데 본래 지위협정 규정대로 한다면 시설정비비 960억엔, 노무비 1492억엔, 광열비·물값 등 297억엔, 훈련이전비 3억5천만엔, 오키나와 기지 정리 비용 140억엔을 모두 합해 총 2892억5천만엔은 미국이 냈어야 한다. 하지만 미군이 고용한 종업원 월급과 수당, 미군 가족 주택건설비와 전기·가스·수도 요금, 거기에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 포사격 훈련을 하러 간 미 해병대원들의 항공요금이나 배삯까지 몽땅 일본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했다. 미국이 책임지는 주일미군 활동 경비는 자국 군인들 기본급 정도밖에 없다. 이처럼 협정을 위반해가며 일본이 미군 쪽에 주고 있는 돈을 ‘오모이야리 예산’이라 하는데, 우리말로 ‘배려 예산’쯤으로 옮길 수 있다. 국회에서 기자회견한 사람들이 ‘불법’이라 한 게 바로 이 ‘오모이야리 예산’ 부분일 게다. 일본처럼 우리도 인건비·광열비까지 다 내고도 그들의 인사에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을 뿐 아니라 기지 전체의 운영과 유지, 이용과 점유, 경비 어느 것 하나 간섭할 권리가 없다. 치외법권지대다. 도쿄국제대학 교수 마에다 데쓰오는 “실상으로 보자면 주일미군 기지는 ‘군사조차지’ ‘미국 조계’라고 부르는 게 정확하다”고 했다. 상하이 등 중국 28개 지역에 설치됐던 조계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나 마찬가지였다. 중국이 조계 내 자국인에 대한 재판권은 갖고 있었지만 경찰권이 없는 상황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었다는 곳이다. 이 ‘조계’지 안쪽은 별천지다. 오키나와 쪽 가데나 기지, 캠프 즈케란에는 하이타워라 부르는 고층 맨션들이 치솟고 빨간 기와를 인 고급장교 전용 주택, 독신자 전용, 아이 없는 부부 전용 주택들이 띄엄띄엄 전원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한꺼번에 50명이 미팅을 할 수 있는 거실이 있는가 하면 해병대원들은 모두 각자 자기 방을 갖고 있다. 자위대원은 최근에야 4인1실 방에서 2인1실 방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총비용을 군인 수로 나눈 1인당 비용을 보면, 주일미군은 1606만엔(인건비 등은 빼고), 자위대원은 1059만엔으로 미군 쪽이 50%나 더 많다. 몽땅 싸들고 나가시오! 중요한 건, 일본의 ‘오모이야리 예산’은 1970년대 일본이 미국한테서 오키나와를 반환받는 과정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그 무렵 ‘닉슨 쇼크’에 따른 달러급락-엔강세 영향도 있었지만, 일본이 사실상 “돈을 내고 (오키나와를) 샀다”는 얘기를 듣는 것도 그 때문이다.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놓지 않으면 한-미 양국이 합의한 미군기지 재배치 및 통합계획의 계획대로 안 할 수도 있다고 큰소리쳤다. 제 이득 보자고 와 있는 판에, ‘오모이야리 예산’을 늘리지 않으면 용산기지를 못 돌려주겠다고 협박하는 건가. 일본이야 패전국이었고, 패전국이 점령국한테 돈을 주고라도 빼앗겼던 땅을 돌려받은 건 명분이라도 선다. 더우기 미-일 동맹 강화를 통한 동아시아 패권 유지에 골몰하고 있는 일본 처지에서 그만한 돈쯤은 정말 ‘오모이야리’해도 손해볼 게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오모이야리 예산’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우리는 ‘조계지’ 안쪽은 물론 바깥에서조차 미군에 대한 경찰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 아닌가. 지금의 동아시아 안보체제 유지가 곧 한반도 분단체제 유지로 이어지는, 아니 분단을 ‘보장’하는 상황에서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미군을 붙잡아둬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차제에 버웰 벨에게 이렇게 통고하면 어떨까. “한 푼도 더는 못 내겠으니, 나갈 테면 아예 몽땅 싸들고 나가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