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무엇이 어떻게 대단한데? 그리고 그런 분들을 보면서 넌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거니? 그냥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해보고 아빠나 친구들한테 표현해봐도 좋을 거 같아. 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러면 아빠가 느낀 점을 이야기해볼게. 아빠는 안창호, 김구, 이봉창, 윤봉길 같은 분을 참 좋아해. 유명한 사람들이라고? 그치. 하지만 유명하다고 해서 좋아하는 건 아니고,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 안창호는 대화와 타협이 무엇인지 보여준 독립운동가야. 안창호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했거든. 3·1운동으로 인해 여러 곳에서 임시정부가 만들어졌어. 정부가 여러 개면 안 되고 하나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상하이에 모였거든. 막상 모이니까 의견 차이가 너무 심한 거야. “군사력을 확장하여 무장투쟁을 해야 한다! 세계 열강들을 설득하여 외교적으로 독립을 해야 한다! 일단 실력을 쌓으면서 독립을 준비해야 한다!” 여러 입장을 두고 갈등이 생겼어. 또 정부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등등등! 안창호는 이러한 갈등을 잘 조정해 정부 수립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 그런데 임시정부가 만들어지니까 주변 사람들이 질투를 하는거야. 이렇게 해서 대통령 되려고 하는 거 아니냐고. 안창호는 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하지만 이런 다툼을 막기 위해 본인은 내무부장, 노동국 총판 같은 낮은 지위를 선택했어. 멋지지 않아? 대화와 타협을 아는 안창호 이봉창과 윤봉길은 의열 활동으로 유명한 분들이야. 이봉창은 일본 도쿄에서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졌지만 아쉽게 실패했고, 윤봉길은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 고위 관료와 군인들을 향해 폭탄을 던져서 큰 타격을 입혔어. 많은 사람들이 이분들의 업적만 이야기하더라고. 물론 대단해. 도쿄까지 잠입하여 일왕 마차 바로 뒤에서 폭탄을 터뜨려서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니까. 윤봉길의 의거로 타격을 입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살펴보는 재미도 있고 말이야. 근데 아빠는 다른 부분에서 두 사람에게 마음이 가더라고. 이봉창은 원래 일본인이 되려고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이야. 어차피 일제강점기이니까 열심히 노력해서 개인적으로 성공하려고 했거든. 일본어를 잘했고 일본인처럼 살았어.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조선인이라는 사실이 탄로 나면 쫓겨나고, 같은 일본인에게 친절한 사람들이 조선인에겐 함부로 굴고…. 결국 고민하다가 임시정부를 찾아가거든. 태어날 때부터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랑 똑같은 사람인데 갈등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무척 동감이 되더라고. 윤봉길의 경우에는 죽음이 너무너무 가슴 아파. 일본으로 끌려가서 곳곳을 돌아다니며 고문당하거든. 놀랍게도 윤봉길이 고문당했던 지역이 오늘날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지이기도 해. 6개월 정도 심한 고문을 받았는데 십자가 같은 데 묶여서 이마에 총을 맞고 죽었어. 사람들이 윤봉길의 업적을 얘기하면서 그를 칭찬하지만 아빠는 그가 감당해야 했던 개인적인 고통에 눈길이 가더라고.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팠을까. 우리가 이때 태어났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그런 거 생각하면서 몸서리쳤고, 고민도 되더라고. 김구도 마찬가지야. 민족의 해방을 위해 무려 38년여를 중국에서 살거든. 평생을 민족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는데 해방이 되자마자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이 되었지. 이때 김구는 분단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우리나라 최초로 통일운동을 벌였다고 해야 하나? 안창호의 리더십, 이봉창의 솔직함, 윤봉길의 고통, 김구의 애국심. 이것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 아들도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 배움의 힘으로 미래를 꿈꾸고 희망을 이야기했으면 좋겠어. 우리나라 최초의 통일운동 ‘김구’ 물론 아빠도 최선을 다할게. 바쁘다고 핑계 대지 않고, 시간 내서 책을 열심히 읽고,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아빠의 현장에서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책임 있는 모습으로 살아갈게. 주말에 피곤해도 너하고 꼭 놀아줄게. 이왕 노는 김에 신나고 화끈하게 놀아보자. 아빠도 틈틈이 시간 내 열심히 공부하면서 아빠로서의 책임을 다할게. 시간이 지나 우리 아들이 더 커서 아빠에 대해 냉정히 바라보게 될 때 부끄럽지 않고 존경스러운, 역사 앞에 ‘정의로운 아버지’가 되도록 말이야. 너무너무 사랑해, 우리 아들. 우리 함께 노력해서 멋진 역사를 만들어가자고~. 심용환 역사&교육연구소장 ※카카오톡에서 <한겨레21>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