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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공교육 위기·학부모 갑질을 ‘아이들 인권’ 탓하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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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3-08-03 11:27 수정 : 2023-08-0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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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 교사와 시민들이 참석해 한 교사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의 20대 교사가 숨진 사건 이후, 교사들을 향한 학부모의 도 넘은 ‘갑질’ 사례들이 드러나고 있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은 2020∼2023년 사이 서이초에서 근무했거나 근무하고 있는 교사들의 제보를 받아 7월21일 공개했다. 제보에 따르면 서이초에서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는 A교사는 한 학부모로부터 “나 OO 아빠인데 나 뭐 하는 사람인지 알지? 나 변호사야”라는 말을 들었다. 이 교사는 학교폭력 민원과 관련된 대부분의 학부모가 법조인이었으며, 서이초의 민원 수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제보했다.

경기도의 한 공립유치원 교사와 학부모 사이 통화 내용도 화제다. 경기일보가 8월1일 유튜브에 공개한 녹취록을 들어보면, 해당 학부모는 교사에게 “뭐하시는 거예요, 배운 사람한테? 당신 어디까지 배웠어요? (내가) 카이스트 경영대학 나와가지고 MBA까지 했는데, 카이스트 나온 학부모들이 문제아냐고”라고 했고, 교사는 “어머니, 저 그런 적...”이라고 해명하다가 학부모가 말을 끊어 뒤를 잇지 못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누리집을 통해 ‘교권 침해 사례 제보하기’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는데, 해당 게시판에는 “선생님, 저희 애한테 ‘하지 말라’고 하지 마세요(라고 말한 학부모)”, “1학년 담임을 하면서 수많은 말을 반복해 목소리도 나오지 않던 제게 ‘마이크로 너무 큰 소리 내지 말라’고 명령하던 학부모”, “대학교 어디 나왔냐고 3번 캐묻던 학부모” 등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교육열이 높은 서초구 및 강남구 일대 지역은 초·중·고를 막론하고 교사들의 고충이 더 크다. 서울 강남구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교사는 <한겨레21>에 “국공립학교에선 ‘다른 지역으로 가야겠다’고 말하는 선생님들이 많다고 들었다. 아이들 학업 수준이 높은 만큼 학부모들도 성적에 굉장히 예민해서 시험문제 출제나 수업하는 데 훨씬 조심스럽고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초등학교 교사 전·출입 현황도 보면, 2022년 서울에서 가장 많은 선생님들이 빠져나간 지원청은 강남서초교육지원청이었다. 서초·강남구에서 교사 346명이 나가고 298명이 들어와, 전출 간 교사가 전입 온 교사보다 48명 많았다.

이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오세훈 서울시장 등은 ‘학생인권조례’를 문제의 핵심으로 부각하고 있다. 이와 관련, 조희연 서울시 교육청 교육감은 8월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후진국적 체벌, 두발 규제, 사랑의 매, 이런 시절이 있거든요. 그런 후진국을, 학생 인권을 존중한다는 그런 조례도 만들고 해서 지금 선진국으로 온 겁니다. 그런데 선진국이 문제가 없는 게 아니에요. 선진국형 문제가 새로 출현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학생인권에 학생의 책무성이라든지 교권에 대한 존중, 이런 부분을 추가로 넣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표현의 자유 등을 명시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건 10여 년 전이지만, 국제사회가 학생인권 보호에 관심을 기울인 역사는 더 오래됐다. 1989년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만들었는데, 이 협약에 ‘차별받지 않을 권리’, ‘의견을 존중받을 권리’ 등 내용이 담겨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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