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공항은 2002년 4월 개항했다. 동해안권 관광자원을 활용한 외국 관광객 유치와 통일 대비 거점 공항으로 육성하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소규모 공항인 강릉공항과 속초공항을 양양공항으로 대체하려 했다. 실제로 두 공항 모두 2002년 양양 공항 개항 뒤 폐쇄됐다. 그렇게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부지 248만8500㎡(약 75만 평)에 연 317만 명의 여객이 이용할 수 있는 국제공항이 지어졌다. 공항 건설엔 국비 3567억원이 투입됐다.
양양공항이 지어지기 전 강릉공항과 속초공항을 찾는 수요는 제법 있었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강릉공항 2000년 여객 수송 실적은 51만 명, 속초공항은 13만 명이었다. 직전 연도인 2001년에도 각각 41만 명과 8만 명이었다. 김영식 강릉원주대 교수는 “없던 걸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합쳐서 하나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연 317만 명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양양공항은 첫해 약 22만 명이 이용했다. 1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쳤다. 이마저도 이후 꾸준히 감소했다. 단 3천여 명만 이용한 해(2009년)도 있었다. 김영식 교수는 수요 예측 실패의 가장 큰 이유로 달라진 접근성을 들었다. “2001년 영동고속도로가 4차로로 늘어나고, 양양고속도로가 2017년 양양까지 연결되었어요. 2018년엔 KTX까지 놓이면서 항공 수요가 왕창 줄어든 거죠.”
국내 수요 부족을 해결할 대안은 국제노선의 활성화였다. 하지만 양양공항은 국제노선을 활성화하기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짧은 활주로였다. “활주로 길이가 2500m밖에 되지 않거든요. 180석 정도의 작은 기종 외에는 이착륙이 안 되는 거예요. 동남아 정도는 갈 수 있지만 그 이상 가려면 비행기가 커야 하는데 띄우질 못해요.”(김영식 교수) 대한항공을 비롯해 여러 항공사가 취항해 국제노선을 만들었다가 단항하기를 반복했다. 양양공항에 노선을 운영했던 한 항공사 관계자는 “강원도는 인구도 적고 국외에서 찾아가는 여행지도 아니기 때문에 수익성이 불투명하다”며 “기본적으로 수요가 없고 수익이 나지 않을 것이 뻔히 보이는데 항공사가 취항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운항이 중단된 양양국제공 항 체크인 카운터에서 관 계자들이 보수작업을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강원도 등에선 개항 직후 2004년부터 재정지원에 나섰다. ‘양양국제공항 활성화 재정지원사업 경제적 파급효과 분석용역'에 따르면 2004년 1억1700만원을 시작으로 2015년까지 약 140억원이 운항장려금과 손실보전금 명목으로 지원됐다. 조례를 만들어 지역공항을 지원하는 것은 강원도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다만 지원 규모가 달랐다. 전라남도가 무안공항 개항 이후 2008년부터 2022년까지 항공사에 지원한 금액은 약 36억원이었다.
양양공항을 이용한 승객의 여행 형태는 지원금의 실효성을 의심하게 했다. 구자열 전 강원도 의원이 2016년 행정사무 감사 과정에서 재정지원 정책의 재검토를 요구했다. 양양공항 이용객의 93%가 강원도 체류 기간이 1박2일에 불과했고 지역 상인의 60%가 공항 활성화 정책에 따른 매출 증가를 느끼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2019년 플라이강원의 취항을 계기로 지원 규모는 더 커졌다. 플라이강원은 2016년 플라이양양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뒤 2018년 사명을 바꿨다. 처음부터 양양공항을 활성화하겠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항공사였다. 플라이강원이 항공 면허를 얻은 것부터 강원도와 양양군이 힘을 실은 결과였다. 국토부는 2017년 2월 재무적 위험 발생 가능성, 같은해 12월 수요 확보 불확실성을 이유로 면허 신청을 반려했다. 2018년 세 번째 도전을 앞두고, 강원도는 국토부에 면허 발급의 당위성에 관한 의견서를 냈고, 도민들은 서울에 가서 집회를 열고 여론몰이에 나섰다.
그렇게 플라이강원은 면허 허가를 받았다. 강원도는 플라이강원의 면허 취득에 맞춰 2018년 도내 공항 모기지항공사 육성 및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기존 ‘강원도 지역공항 이용 항공사업자 재정지원 조례'상으로는 손실보전금과 운항장려금, 공항시설 사용료만 지원이 가능했으나 새 조례로
지원 가능한 항목이 8개로 늘었다. 이렇게 도내 공항 모기지항공사의 육성을 지원하는 조례를 만든 것은 강원도가 처음이었다. 2020년엔 조례를 개정해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경우 긴급재정지원을 할 수 있다는 조항도 만들었다.
2020년 317억원 영업손실을 낸 플라이강원은 2021년과 2022년에도 각각 158억원과 34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여러 차례 임금체불 문제도 겪었다. 2023년 6월14일 양양군에서 만난 김동일
시민단체 미래양양 대표는 “애초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했다. 그는 양양공항이 처음 개항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쭉 지켜봐온 인물 중 하나다. “떡잎부터 잘못된 항공사에 우리 돈을 쏟아부으면서 한 것이 문제예요.”
김 대표는 특히 플라이강원이 누적 적자 등으로 상황이 좋지 않았음에도 화물사업을 하겠다며 공항 내 화물청사까지 만들어달라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강원도와 양양군은 공항 화물터미널 구축에 307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다. 지방소멸 대응기금 공모사업에 양양군이 공모해 선정된 사업인데 국비가 107억원, 강원도비 160억원, 군비 40억원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양양공항의 최근 5년간 화물수송량은 5329톤(t)으로 인천공항을 포함한 15개 공항 중 뒤에서 네 번째다.
양양군 20억 지원 하루 뒤 기업회생신청 발표
강원도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플라이강원에만 약 145억원을 지원했다. 최근 양양군은 플라이강원에 20억원을 지원했다. 마지막으로 급하게 틀어막은 지원금이었다. 그러나 살아남지 못했다. 플라이강원 주원석 대표는 20억원을 받은 다음날인 2023년 5월16일 임직원 간담회에서 기업회생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5월23일 재무구조 개선과 신규 투자를 유치하려 한다며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 개시 신청서를 냈다.
당시 양양군에서 협약서 내용을 변경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지원한 정황도 드러났다. <한겨레21>이 확보한 플라이강원과 양양군 사이의 최초 협약서를 보면 ‘재정지원금의 사용 용도는 플라이강원 임직원의 급여 지급으로 엄격히 제한된다'는 문구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수정된 협약서엔 ‘재정지원금은 플라이강원의 초기 안정화를 위한 운항장려 및 손실보전을 목적으로 한다'고 변경됐다. 도내 공항 모기지항공사 육성 및 지원 조례상 지원 가능 항목엔 임직원의 급여는 없다. 그런데 재정재원금은 인건비를 지원하는 데 쓰였다.
양양군 관계자는 “처음 협약서엔 인건비를 명시했지만 법률 검토를 해본 결과 조례 문구를 인용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 바꿨다”고 말했다. 이어 “플라이강원이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그런 차원에서 지원해준 것인데 이렇게 빨리 기업회생을 신청할지는 군도 몰랐다”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양양군의회 반대도 없었다. 양양군의회에서 유일한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박봉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플라이강원 직원들도 저에게 와서 지금 지원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도와주려면 새로운 경영진이 온 다음에 도와줘야 한다고요. 망해가는 회사에 돈을 지원하는 셈이니 새 경영진이 구성되면 지원하자고 발언을 신청했는데 거부당했어요.” 그는 양양군 누리집에 글을 올리고 1인시위를 하며 20억원 지원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박 의원은 20억원 지원과 관련해 군민 3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공익감사청구를 할 계획이다. 그는 “알 만한 군민들은 다 아는 사실을 양양군과 양양군의회만 몰랐다”며 “몰랐으니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양양공항은 주변 자연 여건이나 첨단시설 면에서 인근 속초나 강릉 공항을 능가, 결항률이 3% 정도로 예상된다. 앞으로 항공회담을 통해 국제노선이 들어오면 강원지역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2002년 양양공항 개항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입장이다. 공항이 있는 양양군 주민들도 기대감이 컸다. “처음엔 다들 좋아했죠. 국비 사업이고, 국가에서 지어준다고 해서 좋았죠.” 김동일 대표가 말했다.
“공항 입주 식당과 스낵코너, 수산·농산물 판매점 등의 운영 상인들이 적자에 시달리면서 운영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 한 사람이 서너 곳의 점포를 맡고 있는 실정 (…) 속초·양양 등 주변 지역 상인과 주민들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불만.”(<한겨레> 2003년 7월13일 ‘양양공항 시름 깊어진다’) 개항 1년 만에 주민들의 반응은 이미 싸늘해져 있었다. 당시 속초소상공인협의회장은 “처음부터 수요 예측을 못하고 돈만 쏟아부은 셈”이라며 “식당 등 모든 업종이 공항 덕을 보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공항의 20년을 지켜봐온 주민들은 아예 기대도 희망도 없다. 1995년부터 공항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한 최아무개(62)씨는 “처음에 공항이 생겼을 때는 음식점에 들렀다 가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며 “공항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세금도 많이 들어가고 적자도 나는데 왜 계속 운영하는지 모르겠다”며 “장사하는 처지에서도 없어져도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인근 주민 김아무개(73)씨는 “말이 국제공항이지 실제 국제공항으로서의 기능이나 역할을 한다기에는 좀…”이라며 말을 흐렸다. 김씨는 “양양군민 입장에선 공항을 이용하고 말고를 떠나 공항이 양양에 있다는 것만으로 자부심이 있다”면서도 “국가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개항 비용이 많이 들었고 운영관리비도 많이 들어가서 애물단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도 갈 때 외엔 거의 공항을 이용하지 않는다. 공항 인근에서 숙박업을 하는 노아무개(63)씨는 “여기서 서울 가는 데 2시간이면 되는데 비행기를 타면 대기 시간이랑 김포공항에 내려 시내로 들어가는 시간까지 하면 네댓 시간 걸린다”며 “간단한 결론이다. (비행기를) 안 탄다”고 말했다.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 입장은 그래요. 공항이 있으면 공항 손님이 우리한테 올 확률이 0.1%라도 높아지잖아요. 그런데 공항에 들어가는 예산을 안 쓴다고 해도 그게 저희한테 돌아오나요? 어차피 그 예산은 나한테 돌아오지 않잖아요.”
양양·무안=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박기용 기자 xe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