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우크라이나 소녀가 쓴 ‘전쟁 일기’
생일촛불 불던 날부터 포격세례 받던 날까지 쓴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
등록 : 2023-02-23 11:22 수정 : 2023-02-25 18:37
지난 1월28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부차의 한 건물 벽에 이탈리아 출신 도시 예술가 ‘티브이보이’(TVBOY)가 그리고 서명한 그래피티. 개전 뒤 러시아군이 점령했다가 철수한 부차에서는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집단학살한 사실이 드러나 러시아를 향한 국제 사회의 비판 여론이 거세진 바 있다. EPA 연합뉴스
“전쟁이란 건 너무 이질적이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폭격음, 집과 학교 위로 떨어지는 폭탄들. (…) 나와 친구들 모두에게 친근한 존재들이 가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설탕이 뿌려진 빵 한 조각이나 푹신한 인형과의 포근한 포옹이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이 됐다. 하지만 전쟁은 한 순간도 멀어지지 않았다.”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손원평 옮김, 생각의힘 펴냄)는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당시 우크라이나의 북동부 도시 ‘하르키우’에 살았던 예바 스칼레츠카(13)의 일기다. 예바는 폭격을 맞은 하르키우를 빠져나와 헝가리를 거쳐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피란을 갔다. 그 과정에서 영국 방송사 <채널4> 기자들과 수차례 인터뷰 하며 예바의 일기장이 방송사 전파를 탔고 책으로도 출판됐 다.
일기 속 예바의 일상은 러시아의 폭격이 시작된 2022년 2월24일 이후 완전히 달라진다. 열흘 전 생일케이크에 촛불을 불며 기뻐하던 열두 살 아이는 그날 새벽 “미사일이 들판을 가로지르는 광경”을 마주한다.
“쨍쨍 울리는 커다란 금속음에 잠에서 깼다. 처음엔 폐차장에서 자동차를 부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우리 집 근처엔 폐차장이 없기 때문에 사실 말이 안 되는 생각이었다. 바로 그때 그것이 폭격이라는 걸 깨달았다.”
예바와 할머니는 다른 마을 주민들과 함께 아파트 지하실로 들어가 하루를 지새운다. 그러나 이튿날 골목마다 우크라이나 탱크와 장갑차가 줄지어 선 것을 보고 지인의 집으로, 우크라이나 서쪽 국경으로 피란길에 오른다. 그사이 하르키우에 있던 예바의 집은 폭격으로 붕괴했고 할머니의 친구 남편은 물을 길으러 가다 집속탄을 맞아 숨졌다.
열두 살 아이와 할머니의 피란길은 순탄치 않았다. 주민센터 직원은 여권을 챙기지 못한 할머니에게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새 여권은 발급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렵사리 헝가리행 기차를 타러 온 예바는 부모의 출국 동의서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 아일랜드행 비행기에 탑승할 땐 옷 주머니에 코로나19 예방 마스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한다. 그때마다 “전쟁 상황이니 이해한다”며 필요한 물품을 건네고 예바의 피란을 도와준 이들이 있었다.
예바의 일기는 먼 나라 소식처럼 들려오던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낸다. 영국의 동화작가 마이클 모퍼고는 책 서문에 이렇게 썼다. “전쟁이 다만 기자들에 의해 보도되는 뉴스가 아니라는 것을, TV와 영화, 허구 속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예바의 일기가 일깨워준다. 예바는 마치 (<안네의 일기>를 쓴) 안네 프랑크처럼 우리가 들어야 하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왜요, 그게 차별인가요?
박다해 지음, 동녘 펴냄, 1만3천원
‘골프 여제의 출연’ ‘성폭행 저지른 그놈’ ‘차 안의 미모 여배우’. 이런 뉴스 기사 제목을 보고 어딘가 불편했다면? 이 책을 읽으며 정확한 이유를 알아가자. ‘쓰면 안 되는 말’을 가려내는 게 아니라 일상 언어에 담긴 성차별 의식을 되돌아볼 수 있다. <한겨레>에서 젠더를 맡았던 박다해 기자가 취재 경험을 녹여 집필했다.
조선사 스무고개
이윤석 지음, 한뼘책방 펴냄, 1만7천원
옛날 사람들도 얼음을 먹었을까? 이몽룡이 먹었다던 청어는 무슨 맛일까? <춘향전> <홍길동전> 등 한국 고전소설을 오래 연구한 이윤석 전 연세대 교수가 이런 질문에 답한다. 옛 문헌을 뒤적이던 그는 ‘연구 부산물’로 서민들의 재미난 생활 이야기를 발굴했다. 사극 단골 소재인 주막과 과거시험, 조선시대 점 보는 법 등 20가지 이야기를 엮었다.
긴즈버그의 마지막 대화
제프리 로즌 지음, 용석남 옮김, 이온서가 펴냄, 1만8천원
법과 판결로 여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했던 미국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25년 생애를 다룬 평전. 긴즈버그와 오페라를 보러 다닐 정도로 가깝던 법률 저널리스트가 썼다. 긴즈버그의 대외 활동을 다룬 다른 평전과 달리, 그가 지인에게 들려준 솔직한 이야기가 책에 담겼다.
주역, 타이밍의 지혜
김근 역해, 삼인 펴냄, 4만원
중국 전통 사상의 한 축인 <주역>은 추상적인 비유와 상징, 글자(단어) 사이의 관계가 명료하지 않은 중국어의 특성 때문에 난해하기 짝이 없다. 중문학자가 주역의 기원과 원리를 톺아보고 총 64개 괘사와 각 괘에 6개씩 모두 384개의 효사를 자세히 풀어 설명했다. 지은이는 역(易)을 생장과 소멸의 변화를 이해하는 ‘기다림’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