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은진씨는 현진과 죽음에 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비해서, 서로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공유하자고 했다. 지금 은진씨는 매일 현진의 휴대전화를 들고 다닌다. 현진의 휴대전화엔 수많은 일기와 생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현진이 보고 싶을 때 은진씨는 천천히 그가 남긴 기록을 들여다본다. 외출할 때면 현진의 옷이나 물건을 한 개 이상 꼭 챙겨서 나간다.
기록하기를 좋아하던 현진은 손으로도 많은 일기를 썼다. 2022년 10월25일, 현진이 손으로 써서 남긴 가장 마지막 일기엔 “요즘처럼만 지낸다면 살아갈 만하다. 행복하다. 요즘 사는 것에 만족한다”고 적혀 있었다.
현진은 2016년 4월 쓴 ‘꽃의 생 그리고 삶’이라는 글에서 삶을 꽃에 비유했다. ‘피어나고 지는 것, 개화와 낙화. 이 아름다운 순환은 사실 우리의 삶과도 같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생에서는 알 수 없는 곳에서 또 다른 탄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 다른 생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생을 활짝 피우다 그렇게 낙화하는 것이다.’ 1992년 7월14일 태어나 이번 생이 마지막인 것처럼 배우고, 읽고, 쓰고, 도전했던 현진은 2022년 10월, 이태원에서 낙화했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생인 박은진씨(오른쪽)와 현진씨. 유가족 제공
<은진씨가 현진씨에게 쓴 편지>
내 사랑, 나의 반쪽, 나의 전부인 현진이. 현진이는 나와 영혼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다고 항상 말했고,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어. 우리는 한 몸이라고 항상 말했잖아. 어떤 음식을 먹고 싶거나, 전시를 보러 가거나, 여행을 가고 싶을 때면 항상 언니와 똑같은 생각 하곤 했는데. 그러고선 둘이 항상 놀라며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너도 그런 생각을 했어? 어떻게 항상 똑같은 생각을 하지?! 진짜 신기하다!”면서 둘이 깔깔거리면서 좋아하고 모든 순간을 함께했잖아. 이게 30년을 가까이 같이 산 사람의 연대인가 하면서 좋아했는데. 둘이 함께 여행을 가거나 데이트하면 어린애들처럼 신나서 깔깔거리고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별일 아닌 것에도 웃음이 끊이지가 않았는지.
혼자 집에 있을 때면 네 생각이 많이 나. 집에 오면 먼저 잠들어서 닫혀 있는 내 방문 앞에 와서 노크를 했지. “자~? 들어가도 돼?” 하면서 내 방에 들어와서는 조잘조잘 오늘은 누굴 만났고, 누구 때문에 힘들었고, 회사가 어떻고, 별의별 이야기를 늘어놓고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잖아. 서로에게 모든 걸 털어놓으면 언제 기분이 안 좋았냐는 듯이 기분이 좋아져서 이제 그만 잔다고 잘 자라며 사랑한다며 뽀뽀하고 돌아가서 잠들었잖아.
이제 와 생각해보니 내가 몇 년 전만 해도 일하는 게 너무 바쁘고 집에 와도 잠깐 잠만 자고 가니까 현진이랑 시간을 많이 못 보내서 현진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그래서 더 힘들었을까 싶어. 최근에 이직하고 현진이랑 보내는 시간이 많이 늘고 더 자주 붙어 있어서 현진이가 많이 행복하다고 했던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 내가 더 들어주고 챙기고 현진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낼걸….
그래도 생각해보면 너랑 함께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어. 평일마다 같이 운동이나 수영을 가고 저녁이면 먹고 싶은 걸 시켜서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틀어두고 같이 껴안고 누워서 봤는데. 여행이 가고 싶으면 가장 먼저 네가 생각나서 자주 여행도 다녔는데. 우리 같이 안 다닌 곳이 없었잖아. 유럽, 일본, 동남아, 러시아, 제주도, 진주, 태안 등 진짜 많이도 돌아다니고. 우리 현진이는 여행을 너무 좋아해서 해외나 국내나 다 돌아다녔는데.
항상 나랑 여행할 때면 다른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지만 가장 마음이 편한 건 나라고 이야기하면서 온전히 현진이 그대로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네가 했던 모든 말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너무나 같아서 더 사무치게 그립고 생각이 나.
우리 현진이는 늘 글을 쓰고 적는 것을 좋아했지. 꼭 등단해서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 했는데. 우리 현진이 글들은 너무나 따뜻하고 사랑스러우며 강한 느낌이어서 너무 좋아. 네가 남기고 간 글들과 책들을 차근차근 읽어보고 있는데 네가 얼마나 엄마와 아빠를 애정했는지,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이렇게 큰지 몰랐어. 항상 우리 집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속상해하고 힘들어하는 모습만 봐와서 네가 가족에 대한 애정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미워하는 마음은 어쩌면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너의 글들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몰라.
네가 사랑한 가족을 내가 더 많이 애정하고 사랑하면서 단단하게 지키기 위해서 노력할게. 우리 가족에 너의 자리가 비워졌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네가 없다고 해서 내 마음속에 우리 가족들 마음속에 비워지지 않았다고 생각해.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너의 말처럼 의지를 가지고 너의 순간순간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울지 않고 웃는 날이 오기를 기다릴 거야. 우리 웃으면서 대화하는 날을 기다려보자. 이 세상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나에게 사랑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생각이 나는 그런 존재. ‘미쁘고’ 예쁜 현진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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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은 참사 한 달째부터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추상화로 뭉뚱그려졌던 이야기를 세밀화로 다시 그려내기 위해서다.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었던 것이 수사 과정에서 어떻게 배제되고, 가족을 위한다고 만든 행정 절차가 어떻게 그들을 되레 상처 입히는지 <21>은 기록한다. 재난의 최전선에 선 가족들의 이야기는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록하는 우리 사회의 묵직한 사료가 될 것이다. 희생자의 아름다웠던 시절과 참사 이후 못다 한 이야기를 건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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