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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갈아엎은 논에 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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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2-10-10 18:17 수정 : 2022-10-1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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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2022년 8월10일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부처 업무 보고를 했다. 농업인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석 달 전 통계청 산지쌀값 조사에서 쌀값이 전년보다 16.7% 하락해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운 터였다. 업무 보고 닷새 전에는 하락세가 더 가팔라져 23.6% 폭락했다. 쌀값이 최대 하락치를 기록했던 가장 최근은 농민단체들로부터 ‘정권 퇴진’ 구호까지 나왔던 2010년 5월(16.3%) 이명박 정부 때다. 업무 보고 뒤 브리핑에서 정황근 장관의 입에선 1번 과제로 ‘(소비자) 물가안정’이 나왔다. ‘쌀 농가 이익 보호’ 등 농업인들이 기다리던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고령화, 기후위기, 가격 폭등과 폭락 등 심각한 상황이지만 정부는 농업을 살려낼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 취재 과정에서 만난 농업인들의 공통된 탄식이었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무관세 수입 등으로 인위적으로 가격을 찍어누르고, 내리면 웬만하면 그냥 둔다. 최근 들어선 기후위기라는 변수가 거세게 개입하지만 정부 대책은 오리무중이다. ‘ㄱ국에서 수입 안 되면, ㄴ국에서 수입한다’는 식이다. 자급률이 19.3%(2021년)에 불과해 농산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처지에서 기후위기는 치명타다. 세계 곳곳의 이상기후 피해가 농산물 주요 생산국의 수출량 감소 내지 수출 금지로 이어지고, 이는 곧바로 국내 농산물 가격 불안정으로 나타난다. 가뭄 등으로 인해 2020년 3월 베트남이 쌀 수출을, 2022년 5월 인도는 밀 수출을 금지했다.

정황근 장관은 “식량 자급률을 상승 전환시키고 안정적인 해외 곡물 공급망을 확보해 식량주권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박흥식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농산물 수입을 ‘식량주권 확보’의 하나로 포함한 건 ‘식량주권’이라는 본래 말의 뜻을 흐리는 것이다. 농민이 표가 안 되니까 저렇게 막 나가는 것 아니겠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에서 완전 자급에 가깝게 유지되는 곡물은 쌀(92.8%)뿐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1433호 표지이야기

쌀값 폭락, 잘 자란 벼를 보면 한숨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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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농사는 ‘안 맞는 로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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