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이라 아프다 [뉴스 큐레이터]
등록 : 2022-09-23 02:34 수정 : 2022-09-23 08:41
풍년이 반갑지 않은 이들이 있다.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이다. 2022년 쌀값은 1977년 이후 45년 만에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9월5일 기준 산지 쌀값은 20㎏당 4만1185원이다. 2021년엔 5만4758원이었다. 1년 만에 24.8%가 떨어졌다.
농민으로선 농사지을수록 손해다.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쌀생산자협회에서 제출받은 ‘2022년 생산비 조사 자료’를 보면, 올해 벼농사를 지으면 논 한 마지기(200평, 660㎡)당 16만4750원 손실을 볼 것으로 추정한다. 이를 전체 벼 재배면적 72만7158㏊(통계청)로 환산하면 전체 쌀 농가의 손실은 1조8120억원에 이른다. 벼 40㎏ 포대당 가격은 2021년 6만4천원에서 2022년 4만5천원으로 떨어지고 농기계 삯, 제초·방제 비용, 차량 유류대, 인건비 등은 나란히 오른 탓이다.
농민은 쌀값 폭락 원인을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과 정책 실패에서 찾는다. 정부가 쌀 수급량을 조절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공급량 조절을 위해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고,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 보조금을 지급해 농민들이 밀·콩 등을 재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의 ‘쌀값 정상화 태스크포스(TF)’는 한발 더 나아가 쌀 의무수입 물량을 정부가 적극 조정하고 수입쌀을 공적개발원조(ODA)용으로 돌리자고 주장한다.
정부는 쌀이 과잉생산되고 이에 반해 소비는 부진하다는 점을 쌀값 하락의 원인으로 꼽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9월21일 정부가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을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이렇게 나설 경우 상대적으로 재배가 쉬운 쌀을 택하는 벼 농가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고, 이는 쌀의 과잉생산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 작물을 재배하면 보조금을 지급하고 쌀 소비 촉진 방안을 찾겠다고 농림부는 밝혔다.
양쪽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에도 농민의 절박함은 더해졌다. ‘수확의 계절’이지만, 농민들은 수확 대신 벼를 갈아엎으며 쌀값 안정화 대책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밥 한 공기(100g)당 적어도 300원은 될 수 있도록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현재 농민에게 돌아오는 밥 한 공기 쌀값은 206원이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뉴스 큐레이터는 <한겨레21>의 기자들이 이주의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뉴스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