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야구 안 보는 사람의 야구 이야기
그런데 현실과 사회운동은 게임이나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한 번에 승패가 갈리지도 않고, 한 번의 승패가 모든 것을 정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공약한 뒤 보건복지부는 이를 이행하기 위한 민관협의체 구성을 약속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약속을 믿고 1842일을 지속한 농성을 마무리했다. 농성을 끝내는 기자회견에 엄청나게 모였던 카메라가 합의의 증언자가 돼줄 것이라 믿었지만 이후 열린 민관협의체 첫 회의에서 보건복지부는 협의체가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으며,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여기서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만 내내 강조하고 돌아갔다.그때의 황당한 기분이란. 이번 게임은 이긴 줄 알았는데 막막한 세상이 똑같이 펼쳐졌다. 오랫동안 활동해온 사람들은 원래 여기서부터 또 시작이라며 나를 토닥였다. 무대에 조명이 꺼지고 다시 싸우던 사람들만 남았을 때 합의를 원점으로 돌리려는 시도가 시작됐다. 처음부터 퍼즐을 다시 맞춰야 했다. 힘없는 사람들은 합의를 이루기도 어렵지만 합의를 이행시킬 지렛대가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무수히 반복한 뒤에야 조금씩 변했다. 처음 약속보다는 훨씬 작은 형태로 말이다.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는 않다. 권력자의 의지나 큰 이익이 걸린 문제에서 속사포처럼 굴러가던 사회적 합의와 결정은 약한 사람들의 권리보장 앞에서는 바위처럼 멈춰 선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21년은 그렇게 지난했다. 긴 시간 참을성 있게 기다린 쪽은 장애를 가진 시민들이었다.그렇다고 그 시간이 의미가 없었냐 하면 그렇지 않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패배하더라도 ‘관계’가 남는다면 완전히 허무한 것은 아니라고 늘 말한다. 관계의 의미는 다양하다. 함께 세상을 바꿀 꿈을 꾸는 친구를 만나는 것도, 의견이 다른 사람과 논쟁해보는 것도, 집을 벗어나지 못하던 장애인이 세상에 나오는 것도 관계를 맺는 일이다.장애인을 만난 시민들도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휠체어 이용자 탑승에 맞춰 수축하고 팽창하는 저상버스의 높낮이를 느끼고 저상버스가 버스 몇 대마다 한 번씩 지나가는지 신경 쓰이기 시작할 때 새로운 관계가 열린다. 장애인의 투쟁은 달리는 열차에 질문한다. 이 열차가 지금까지 싣고 달린 것은 누구였는지, 왜 우리는 안전하게 지하철을 탈 수 없으며 열차를 타고 갈 수 없었는지에 대해. 단판승 경기가 아니라 답을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질문을 피할 수는 없다. 이 싸움은 단지 정부가 아니라 장애인을 배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굴러온 세상 전체를 상대로 하기 때문이다. 관계가 남는다면 완전히 허무하지 않다
정해진 패자도 만년 꼴찌도 없다. 이것이 굳이 게임이라면 내가 본 가장 멋진 경기, 2009년 한국시리즈처럼 끝나기를 바란다. 좋은 팀이지만 오랫동안 최약체 팀으로 놀림을 받던 기아타이거즈가 9회말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을 거머쥔 그날처럼 역전의 꿈이 있다면 스포츠든 세상이든 더 해볼 이유가 있지 않겠나.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이날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이름 붙이고 싸워온 장애를 가진 동료 시민에게 경의와 연대를 보낸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