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의 모든 문제 망라한 2003년 방안
정진상 교수의 방안은 서울대를 포함한 전국의 국공립대와 일정한 조건을 갖춘 사립대를 하나의 대학 네트워크로 통합하는 방안이다. 이 방안은 대학 체제는 물론이고, 대학 입시제도와 교육과정, 지역 인재 채용, 고등고시, 사립학교 등 광범위한 개혁 과제를 담고 있다. 이 방안은 입시 과열, 대학 서열화로 대표되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을 제시한 대표적 아이디어로 꼽힌다.당시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방안이 나온 뒤 학계와 정치계에선 반응이 뜨거웠다. 민주노동당,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들과 진보 교육감들은 이 방안을 선거 공약으로 채택했다. 또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교수노조, 학술단체협의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교육·학술 단체들과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도 이 방안을 바탕으로 한 대학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2003년 이후 이 방안은 민주진보 진영의 대학 개혁 교과서였다. 문제는 적용 가능성이었다. 여러 대통령 후보가 공약했고 이를 공약한 대통령과 교육감들이 선출됐으나, 이 방안은 한 발도 내딛지 못했다. 이 방안은 파격적이었으나, 이를 실현할 주체의 역량이 부족했다. 특히 이 방안이 대학 개혁과 관련한 거의 모든 문제를 다룬 점도 걸림돌이었다. 김종영 교수의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정진상 교수 방안의 축약판이다. 정 교수의 방대한 개혁 방안 가운데 서울대 등 10개 거점국립대를 육성하는 내용만 뽑아냈다. 김 교수는 최근 펴낸 저서 <서울대 10개 만들기>에서 정 교수의 방안을 ‘최대주의’로 평가하면서 자신의 방안을 ‘최소주의’로 규정했다.두 방안의 가장 큰 차이는 정부의 예산 투입 문제다. 정 교수의 방안은 국공립대와 공영형 사립대를 중심으로 평준화된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재정 투입과 관련한 내용은 따로 없다. 반면 김 교수의 방안은 거점국립대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다. 또 거점국립대와 지역의 기업, 산업을 연계하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정 교수 방안이 ‘제도주의’라면 김 교수 방안은 ‘경제주의’다. 평준화된 대학 모델 대 3등급 차등 모델
두 방안은 모델도 다르다. 정 교수 방안은 유럽의 프랑스와 독일의 평준화된 대학이 모델이다. 그래서 전국의 대학 전체를 통합하려 하고 등록금도 무상으로 계획했다. 프랑스엔 평준화된 대학 외에 그랑제콜이란 명문 대학이 따로 있지만, 독일엔 명문 대학이 없다. 반면 김 교수의 방안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을 모델로 삼았다. 따라서 대학 체제는 평준화돼 있지 않고 연구-교육-직업 대학 등 3등급으로 차등이 있다. 또 대규모 정부 재정을 거점국립대에 우선 투입하고 중소 국립대나 사립대에 대한 재정투자는 미뤄놨다. 등록금 무상화 역시 연구 투자 다음이다.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