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 가사노동 기록 참가자 5명이 보내온 가사노동의 흔적들. 각 참가자 제공

가정 교섭력과 연결된 노동시장 격차
대개 더 많이 포기하고 희생하는 쪽은 여성이다. “육아휴직을 4년 해서 동기들보다 승진이 느려요. 남편과 같은 대학을 나왔는데 박탈감도 있죠. 업무시간에도 늘 아이들 학원 일정을 체크해야 하니 정신이 없고요.”(김다영) “육아휴직을 쓰면서 동기들보다 승진이 많이 떨어졌어요.”(이윤미) “육아휴직을 하고 승진에서 누락됐죠. 저 나름대로 욕심이 있는데 한 번 밀려나니까 회복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반면 신랑이 육아휴직했을 땐 시어머니가 ‘회사에서 괜찮냐’며 충격을 심각하게 받으시더라고요. 제가 (휴직을) 할 때는 누구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유소희) “학원 강사 일을 다시 해달라는 요청이 왔는데 퇴근이 저녁 8∼9시다보니 섣불리 못 나가요. 만약 내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고 이 나이까지 (일을) 쭉 했으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죠. 제가 뭘 할 때 아무도 저한테 ‘애들은?’이라고 물어보지 않을 테고요.”(박정애) 악순환은 이렇게 시작된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부부 중 누군가는 돌봄과 양육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 결국 한쪽이 커리어(경력)를 희생하는 수밖에 없다. 여성의 평균 근속연수는 8.2년, 남성은 12.2년이다. 그러다보니 남성 1인당 평균임금이 7980만원, 여성은 5110만원으로 성별 임금 격차가 벌어진다.(2021년 2149개 상장기업 기준) 남성 평균 근속연수가 여성보다 긴 기업일수록 남녀 임금 차이도 대체로 크게 벌어졌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육아를 도맡아야 하는 30~40대에 뚝 떨어지는 M자형 그래프를 그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런 임금 차이는 가정 안에서 위계를 만들어낸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돈을 좀 못 버는 쪽이 집안일로 보상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성별 임금 격차 때문에 여성은 가정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교섭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성별 고정관념 등에 따라 ‘여성의 일’로 굳어진 가사노동과 양육은 여성을 노동시장에서 탈락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이는 다시 여성의 짧은 근속기간과 낮은 임금의 원인이 된다. 노동시장에서 이 구조적 격차는 다시 여성을 집안으로 옭아매는 덫이 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유소희씨는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힘들었던 ‘독박 육아’ 시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남편이 우리 둘 중 휴직했을 때 가정의 경제적 타격이 누가 더 큰지를 1순위로 봐야 한다고 했어요. 남편이 월급이 더 많은데 그걸 1순위로 꼽으면 내가 할 말이 없다며 싸웠죠.” 유씨 부부는 긴 싸움 끝에 결국 남편이 5개월가량 육아휴직을 하기로 결정했다.각자의 성격과 성향에 따라
얽히고설킨 매듭은 어디서부터 풀 수 있을까. 시행착오를 거쳐 남편과 나름 합의된 가사노동 기준을 만들었다는 정하윤씨는 말했다. “가사노동은 성별에 따른 역할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면 누구나 다 해야 하는 일이란 인식이 필요하죠. 앞으로 자녀가 생기면 아이에게도 이 역할을 가르칠 생각이에요. 또 이번 ‘가사노동 48시간 기록’ 실험처럼 다른 구성원의 부담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해서 같이 하려는 노력도 해야 하고요. 무엇보다 돈벌이 위주로 집안일을 분배하기보다 각자의 성격과 성향 등에 따라 나눠야죠.” 정씨의 말처럼 가정 안에서 가사노동을 평등하게 분담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노동자인 동시에 가정을 살피는 ‘돌봄자’로서 살아간다는 자각을 해야 한다. 누구는 주도하고 누구는 도와주는 관계가 아니라. 전문가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녀 돌봄을 위해 여성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시간제 노동자로 일하는 방식은 오히려 노동시장 내 구조적인 성별 격차를 심화할 뿐이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여성이 시간제로 일하는 걸 ‘노동시간 단축’이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이런 방식이 아니라 남성을 포함해 전체 노동시간이 줄어야 한다. 그동안 여성이 양육과 노동을 함께 하는 방식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택하게 했는데, 이게 보편적인 노동형태가 아니다보니 여성들이 계속 배제·소외·차별을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실제로 참가자 부부들은 ‘남편의 절대적인 시간 부족’을 불평등한 가사분담의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장현선씨는 “남편이 (가사노동을) 자발적으로 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닌데 임금노동자로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며 “오죽하면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건 어떠냐고 말해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맞벌이하는 남편 오기수씨도 “가사노동에 더 신경 쓰고 싶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은 야근하니 시간이 부족하다. 누군가가 도움을 주지 못하면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근무시간이 짧아지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털어놨다. 
돌봄은 누구의 몫인가
노동시장의 변화뿐 아니라 교육현장의 변화도 필요하다. “맞벌이가 아이를 키우려면 학원을 (뺑뺑이처럼) 돌릴 수밖에 없어요.”(박영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하교 시간이 당겨지는데 부모는 늦게 퇴근하니 ‘돌봄 공백’이 생긴다.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여성의 고용단절률이 극심하게 오르는 건 양육자가 퇴근하기 전까지 아이를 돌봐주는 기관이 학교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지금처럼 초등돌봄교실에 들어갈 자격을 맞벌이·저소득층·한부모 가정 등으로 한정해서 아이가 학교에서 생활할 수 있는 권리가 양육자에 따라 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모든 양육자가 집에 있을 거라고 상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난주 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가정에서 하는 비공식 노동은 가족끼리 책임을 나누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가족과 사회가 이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이냐는 점”이라고 짚었다. 특히 지금처럼 1~2인 가구가 절반이 넘는 사회일수록 가족의 책임에만 의존해서는 가사노동과 돌봄 모두 사각지대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는 특히 “코로나19 이후 (돌봄 공백으로) 가족생활이 피폐해지고 이런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알게 됐는데도 사회적 돌봄의 질을 높이는 문제는 얘기되지 않는다”며 “가사노동은 각자가 자기 삶에 책임지는 일이다. 자신도 돌보고 남을 돌보는 일이 삶의 기초가 되는데 이것에 대한 성찰과 논의가 없다”고 비판했다.여기서 다시 오래된 질문을 꺼낸다. 돌봄은 누구의 몫인가? 가족인가, 국가인가? 그렇다면 처음의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집안일은 왜 가족 안에서 아내의 몫일 수밖에 없는가? 김선식 기자 kss@hani.co.kr·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가족돌봄, 주말에 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