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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예수는 유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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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2-02-05 00:28 수정 : 2022-02-0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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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예비군 병역거부자 김형수의 재판 때 검사는 물었다. 아니, 공격했다. “강도가 당신의 가족을 해칠 때 당신 옆에 총이 있다면 쏘지 않을 겁니까?” 제아무리 평화주의자라도 가족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을 포기하는 신념은 없다고 생각했을 검사에게 김형수는 대답했다. “네, 쏘지 않을 겁니다.” 검사는 당황해서 재차 물었다. “당신의 가족을 해친 사람에게 복수할 기회가 있어도 하지 않을 거예요?” 김형수는 답했다. “그런 방식으로는 폭력이 단절되지 않습니다.”

예비군훈련 거부할 때마다 선고받는 벌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 또한 병역거부자이지만 저런 대답은 못한다. 김형수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대답이 아닐까 생각하며 방청석에서 나는 검사와 마찬가지로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재판 결과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400시간이었다. 견결한 종교적 신념에 더해 평화활동가로서 활발히 평화운동을 실천해온 김형수였지만 법원은 ‘병역거부를 하기에는 부족한 양심’이라고 판단했다.

김형수뿐만이 아니다. 김형수와 함께 평화주의 기독교 교파인 메노나이트 교회를 다니는 조성현은 예비군훈련을 거부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최근 대법원 선고로 벌금 300만원이 확정됐다. 예술가이면서 평화활동가인 이상은 벌금 300만원이 확정됐다. 예비군 거부자는 여러 차례 처벌받아도 해당 훈련이 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다음 차수 훈련까지 새롭게 부과되니 경찰 조사, 검찰 조사, 재판, 처벌이 수차례 반복된다. 조성현은 벌금 800만원을 선고받아 항소 중인 또 다른 재판이 남아 있고, 이상은 남은 재판이 6개나 된다.

메노나이트 교회는 세계적으로도 병역거부를 가장 열심히 실천하는 교단이며, 평화운동에 앞장선다. 이상은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하면서 제주퀴어퍼레이드를 조직하는 등 평화와 인권을 위한 실천을 오랫동안 해왔다. 나는 병역거부가 남다른 양심을 가진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경계한다. 그런데 법원은 양심의 등급을 나누고 김형수, 조성현, 이상의 양심마저 인정하지 못했다. 예수나 석가모니가 와도 한국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을 거라는 말이 농담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이들의 죄는 예비군훈련 거부. 누구도 해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국방력을 약화했다고? 코로나19로 2년 동안 중단돼도 아무렇지 않은 그 예비군훈련 거부가 국방력을 약화했다고? 국민의 의무를 저버렸다고? 이들은 오랫동안 병역거부 운동에 동참하며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장했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됐지만 이들이 대체복무를 하지 못하게 막은 것은 누구인가? 이들이 의무를 저버린 게 아니라 국가가 이들의 권리를 가로막았고, 국민의 양심의 자유를 지켜야 하는 국가가 자기 의무를 저버렸다.

속상함, 미안함, 안쓰러움 그리고 덤덤함
처음 예비군 병역거부를 결심할 때 처벌을 감내하기로 마음먹은 탓일까? 수십 차례 경찰 조사와 검찰 조사, 재판이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던 것이 일단락돼 오히려 홀가분했을까? 세 병역거부자는 유죄 선고에도 오히려 덤덤했다. 그 덤덤함이 속상함, 미안함, 안쓰러움 같은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다행히 이들은 혼자가 아니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벌금과 법률 지원 비용을 모금하겠다고 하자 십시일반 평화의 마음이 모이고 있다. 국가가 시민의 권리와 자기 의무를 외면한 자리에서 시민들은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일을 자발적으로 실천해나간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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