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에 머문 ‘노동존중 사회’
[노동] ILO 핵심협약 비준, 전교조 합법화… 비정규직 해결 미완
등록 : 2021-03-24 19:51 수정 : 2021-03-25 11:01
2020년 7월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9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 결과 브리핑이 열렸다. 연합뉴스
노동존중 사회 실현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 창출성별·연령별 맞춤형 일자리 지원 강화실직과 은퇴에 대비하는 일자리 안전망 강화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생활의 균형 실현
2017년 5월12일. 취임 사흘째를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찾았다. 공항에서 일하는 노동자 1만500여 명 가운데 88%나 차지하는 비정규직 문제를 두고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노동자와 시민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문재인 정부 핵심 구호 가운데 하나인 ‘노동존중 사회’를 향한 빛나는 첫발이었다. 국정과제(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엔 “비정규직 감축을 위한 로드맵 마련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 종합적 해소 추진”이라고 적혀 있다. 같은 항목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실현 등도 담았다.
임기 4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6.4%(2018년), 10.9%(2019년)로 급가속한 직후 2.87%(2020년), 1.5%(2021년)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평가는 박하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급격하게 인상률을 높이고 반발이 심각해지니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해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을 막아버리고, 그다음 해의 인상을 포기해버렸다”며 “결과적으로 임금구조도 엉망이 되고, 임금 격차는 더 벌어졌으며, 심지어 최저임금이 올라야 하는 정당성마저 훼손하는 최악의 상황을 낳았다”고 평가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비롯해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노동사회학)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은 시행했으나 정작 민간부문에 대한 정책은 이뤄진 게 없다. 초기 국정과제에서는 기간제 사용 사유 규제, 차별시정제도 전면 개편, 원청 책임 강화, 특수형태근로자 노동기본권 보장 등이 제시됐으나 성사는커녕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포괄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 등의 문제를 들어 “노동시장의 극심한 이중구조 및 격차와 차별 극복을 위한 근본적인 정책의 방향 전환에 실패했다”고 했다. 그 이유로는 “미진한 재벌 개혁 및 중소기업과의 격차 심화 등 왜곡된 경제의 이중구조가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반면 얼마 전 국회를 통과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및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합법화 등 후진적 법제도를 개선할 가능성을 연 대목(이주희 교수)과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김혜진 활동가) 등은 문재인 정부가 노동 분야에서 거둔 일정한 성과로 평가된다. 고용 안전망을 확충한 것도 그렇다. 정이환 교수는 구직급여액 상향, 지급 기간 확대와 함께 “국민취업제도 도입도 (한계가 많으나) 고용 안전망에서의 의미 있는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