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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도와줄 사람없어 3일동안 병원에 누워 있어”

중증장애인 정영만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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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1-01-16 16:47 수정 : 2021-01-1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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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만씨가 실내에서 전동휠체어 등을 이용해 생활하는 모습. 정영만씨 제공

‘몸무게 42㎏, 폐쇄병동 생활 20년.

’2020년 2월 국내에서 코로나19로 처음 사망한 ㄱ씨(당시 63살)를 설명하는 말이다.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정신병동(경북 청도대남병원)에서 나온 것은 상징적이다. 환기가 안 되는 ‘폐쇄성’, 여러 명이 한 병실에서 생활하는 ‘과밀함’, 침상이 없는 ‘비위생’, ㄱ씨가 사망 직전까지 머물렀던 공간은 감염병 시대의 대책과 모든 면에서 어긋났다. 이 모든 상황이 맞물린 청도대남병원에선 정신질환자 104명 중 102명이 확진됐다.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밀집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집단감염되는 출발점이다.2020년 11월 중순 시작된 코로나19 3차 대유행은 1·2차 때와 달리 감염병이 누구를 목표 대상으로 삼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교정시설, 장애인시설, 정신병원 등 한국 사회에서 인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격리시설에 거주하는 수용인이다. 본래 교정과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감염병을 통해 배제와 격리, 고립, 방치라는 격리시설의 본질이 어김없이 드러났다. 인권활동가들은 “한국 사회에 잠복한, 불평등과 차별이라는 문제를 바이러스가 드러내 보여줄 뿐”이라고 말한다.청도대남병원 이후 밀집·밀접·밀폐를 일컫는 ‘3밀 공간’의 집단감염이 계속 발생했지만, 정부는 ‘코호트(동일집단) 격리’라는 원천 봉쇄 말고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코호트 격리를 한 곳 가운데 이른바 n차 감염이 일어나지 않은 곳이 없다. 서울동부구치소에서 1193명(2021년 1월14일 기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247명(1월12일 기준)이 확진되고, 전체 사망자 1027명 중 정신질환자가 408명(1월6일 기준)에 이른다. 코호트 격리를 21세기 한국 정부가 집단감염 사태에서 취한 조처 가운데 최악이라 하는 이유다.지금이라도 죽음을 복기해야 한다. 기억하지 않은 잘못은 반복의 형태로 복수를 감행하는 까닭이다. ‘코로나19 시대 격리시설 보고서’를 시작한다._편집자주

“병원에서 어떤 신체보조도 받지 못한 채 누워 있어야만 한다고 하니까 코로나19보다 그 부분이 더 두려웠어요.”

근육장애가 있는 중증장애인 정영만(42)씨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하다고 했다. 24시간 활동지원사의 보조가 필요한 그는 확진 직후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한나절 이상 휠체어에 앉아 대기해야만 했다. 정씨 사례는 시설 거주 장애인뿐만 아니라 재가 장애인도 코로나19 상황에서 취약한 위치에 놓인다는 점을 보여준다. 2020년 12월16일 정씨는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전날 일하던 곳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직원들이 전수검사를 받았는데 양성이 나온 것이다. 오전 9시 보건소에서 “오후에 병원으로 이송될 테니 준비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당장 활동지원사와 아내가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정씨는 홀로 남아 추가 연락을 기다렸다. “휠체어를 타야 하는 장애인이고 혼자선 옴짝달싹 못한다고 보건소에 이야기했어요. 저녁 6시가 넘어서야 ‘오늘 이송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서울시사회서비스원에 전화해 활동지원사를 파견받을 수 있냐고 물었지만 “자가격리자가 아닌 확진자에겐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는 밥도 먹지 못하고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혼자 꼼짝없이 버텼다. 자칫 밤새 휠체어에 혼자 앉아 잠을 청해야 할 상황이었다. 보건소에 자초지종을 설명해 격리 중인 아내가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밤 10시, 아내가 도착해 보호복을 입고 그를 돌봤다.

다음날인 12월17일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서울의료원은 “병원 내에서 신체보조를 해줄 수 없다. 음성인 배우자가 병실에 올 순 없다”고 했다. 신변 처리도 어렵고 기저귀를 착용한 채 누워만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비장애인에게 사지를 묶어놓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정씨는 말했다. 그렇게 입원할 순 없었다. 마침내 보건소에서 “아내와 함께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12월18일 오전 119구급차로 태릉선수촌의 생활치료센터로 이송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삐거덕댔다. 전동휠체어가 있어야만 이동이 가능한데 휠체어가 구급차에 들어가지 않았다. 게다가 생활치료센터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계단을 오르는 게 불가능한데 방은 2층이고 엑스레이 검사실은 3층이었어요. 다른 센터에도 방이 없다고 하고. 결국 집으로 돌아왔어요.”

다시 하루를 꼬박 기다렸다. 12월20일 서울의료원에서 연락이 왔다. 활동지원사는 없지만 “병원에서 최대한 보조 서비스를 할 것”이라고 했다. 확진 뒤 99시간 만에 입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잘 때 주기적으로 몸의 자세를 바꾸거나 다리 스트레칭을 해야 하는데 간호사들이 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고통스러웠다. 신변 처리가 어려워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그는 음성 판정을 받고 12월22일 퇴원했다. 정씨는 “2020년 초 대구에서 장애인 확진자가 나왔는데 12월까지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2020년 12월31일 뒤늦게 장애인 확진자를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2021년부터 국립재활원에 장애인 전담 병상을 마련하고, 장애인 확진자가 병원이나 생활치료센터에 입원(입소)할 경우 활동지원사를 배치해 돌봄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표지이야기 - 코로나19 격리시설 보고서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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