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과학의 노래를 들어라, 제발

믿음과 불신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게 과학, 과학으로 재난의 파도 넘어야

1342
등록 : 2020-12-13 17:30 수정 : 2020-12-14 11:44

크게 작게

코로나19 2.5단계 조처가 취해지기 전날인 12월7일 영업 중단 안내를 붙인 술집 앞 거리가 한산하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방역은 믿음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과학으로서 방역만 강조하면 경제를 비롯한 사람들의 활동이 위축된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거리두기다.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갈수록 경제는 위축되고 특히 자영업자는 파멸적 위기에 봉착하기 때문에 방역만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일단의 자유주의자는 방역만 강조하는 건 시민의 자유와 활동을 억압한다며 그것에 저항하라고 촉구한다.

거리두기는 사랑을 보여주는 적극적인 행위
물론 거리두기로 인해 자영업자가 어려워지는 것은 맞지만 거리두기 이후 자영업자에 대한 무대책이 자영업자를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마찬가지로 서구의 조르조 아감벤 같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거리두기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더는 포옹도 키스도 못하게 하여 사랑을 억압하고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에 반박하며 정신분석학자 세르조 벤베누토가 말한 것처럼, 마스크와 거리두기는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적극적 행위다.

과학은 근거 없는 믿음을 따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을 무모하게 한다든가, 혹은 확률적으로 현저히 떨어지는 위험을 과대포장해 패닉(집단적 혼란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비록 모든 위험을 다 피할 수는 없지만 현명하게 자신의 활동을 조직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과학이다. 과학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억압하고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행동할 것을 권장한다. 마스크와 거리두기는 이 신중한 행동의 상징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과학은 사건 같은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삶의 방법론이다. ‘재난 시대의 공부’라는 주제로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과학 공부를 통해 ‘꼼꼼하게 기록하기’ ‘충분한 데이터를 모으며 기다릴 줄 알기’ ‘신중하게 행동하기’의 세 가지 습관을 지니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지금같이 온갖 유언비어와 가짜뉴스가 난무하며 사람들을 현혹하고 주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시대에 이런 태도가 자기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재난은 사람을 패닉에 빠뜨린다. 특히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재난일수록 더 그렇다. 초유의 재난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 지식을 무력하게 한다. 코로나19 확산 초창기에 건강한 사람보다는 아픈 사람이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말은, 이전 호흡기 질환을 근거로 하면 타당했다. 그러나 이후 좀더 엄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징은 이전과는 달랐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했고 이는 마스크뿐만 아니라 세계보건기구(WHO)나 한국 질병관리청 같은 제도의 정보와 지식에 대한 신뢰에 손상을 줬다.

좁은 미로가 우주 되는 ‘추천 알고리즘’
제도로부터 얻는 지식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과학 역시 한계가 있으며, 과학은 자신에게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과학의 핵심은 완전한 믿음이 아니라 언제든 새 증거에 의해 수정 가능하다는 것에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제도의 지식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사건이 벌어지면 제도가 견해를 수정하는 것을 보고 제도를 신뢰하는 계기가 되기보다는 그 불안한 틈을 타고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독버섯처럼 퍼진다.

더구나 지금 같은 초연결 사회에서는 과거였다면 믿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기 때문에 고립되기 쉬운 헛소리도 제법 규모를 갖출 수 있다. 아주 소수의 사람만 믿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에 흩어진 많은 사람이 믿는 듯해 ‘보편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추천 알고리즘’은 계속 같은 부류의 담론을 보도록 해서 뺑뺑 그 미로를 돌게 한다. 결국 그 좁은 미로가 세계가 되고 우주가 된다.

이 하나의 우주에 속하게 된 사람들을 지배하는 건 사실이 아니라 믿음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실의 단편들을 ‘팩트’라고 주장하며 그 단편이 전체인 것처럼 믿게 된다. 믿음을 의심하며 검증하려는 태도는 사라지고 오로지 믿음에 대한 열광만이 남는다. 이 믿음에 대한 열광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인간 결속이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강조하는 ‘부족주의’다. 부족주의는 믿음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믿음에 대한 열광을 공유한다. 부족은 의미가 아니라 의미에 대한 감정의 강도, ‘정동’의 공동체다.

제도로부터 정보와 지식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불신할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주변을 위험에 빠뜨린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번 독감백신 사태다. 독감백신 유통에 대한 정부 대처는 확실히 미숙했고 문제가 많았다. 혹독하게 비판받아야 하고 정교하게 시정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백신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가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제도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이 된다. 그럼에도 정부를 공격하고 무너뜨리고 싶은 사람들은 그 기회를 이용해서 백신 자체를 공격했고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려고 했다.

학생들에게 과학을 강조하는 건, 과학은 믿음에서도 불신에서도 인간을 해방시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학이 강조하는 것은 ‘증거-사실’이다. 사실에 근거하고 사실에서 출발하는지 따지는 것이 과학이다. 특히 ‘팩트’라는 이름으로 사실의 파편을 사실의 전체인 듯 호도하는 일에서 벗어나는 것도 과학의 중요한 일이다. 과학은 사실의 ‘지위’를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지금 팩트라고 주장하는 게 파편적인지 아니면 구체적 보편성을 갖추었는지 신중하게 따지는 것이 과학이다.

독감백신 접종 후 숨진 사례가 알려진 뒤, 10월21일 백신 접종을 하는 서울 강서구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서부지부 모습. 한겨레 김혜윤 기자

과학의 확률적인 것까지 받아들일 때
과학은 무엇보다 사실에 대해 꼼꼼하고 신중한 태도를 갖게 한다. 이를 위해 과학은 사실을 모으기 위한 관찰과 실험을 강조한다. 꼼꼼하게 관찰하는 태도야말로 과학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가장 큰 선물이다.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관찰력이다. 안다고 해서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꼼꼼하게 관찰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안다고 생각해서 습관처럼 움직이는 일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

꼼꼼하게 관찰하는 것에 이어 중요한 게 꼼꼼하게 기록하는 일이다. 한국의 글쓰기 교육은 관찰과 기록보다는 ‘표현’에 더 신경 쓰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에선 여전히 관찰과 기록을 강조하지만 이상하게 나이가 더 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수록 ‘표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관찰한 것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기록을 검토하는 것을 지루해한다. 기록과 검토 자체가 지루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습관’을 어떻게 들였는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꼼꼼하게 관찰하고 기록할 때 필요한 것이 기다리는 태도라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충분한 데이터’가 모일 때까지다. 언제가 충분한가? 패턴(유형)과 경향이 보일 때다. 반복되는 관찰과 실험을 통해 규칙성이 있는 패턴과 경향이 발견되면 그 데이터는 어느 정도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패턴과 경향은 절대적이지 않고 확률적인 것이다. 과학이 확률적이라는 것까지 받아들일 때, 과학은 ‘운명의 파도를 넘나드는’ 힘이 된다.

꼼꼼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고 충분한 양의 데이터가 모일 때까지 기다릴 줄 알고 그다음 신중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패턴이 보이기 때문에 판단하고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신중함은 오로지 이 꼼꼼함과 충분함에 바탕을 두었을 때만 진가를 발휘한다. 꼼꼼하지도 않고 충분하지도 않으면 신중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꼼꼼하고 충분하기 때문에 ‘과감하게’ 신중한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다. 신중함은 행동과 판단을 촉구하고 권장하지 그것을 막지 않는다. 그것을 막는 건 위축이다. 위축은 꼼꼼함과 충분함이 부족했을 때 나오는 태도이다. 사려 깊게 위축과 신중함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신중함은 우리를 활력 있게 움직이게 하지 위축시키지 않는다.

운명의 파도를 넘기 위하여
지금 과학은 무엇보다 나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현명함의 원천이다. 불안 때문에 부족주의적 정동으로 도망가서 주문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사려 깊게 행동하며 나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안전을 도모하는 일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어떤 패턴과 추세가 있는지 알려주고 내가 어떻게 이 상황에 적응하며 ‘운명의 파도를 넘나들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과학이야말로 재난의 시대를 헤쳐가는 인간의 힘이다. 이 힘을 발휘할 때 인간은 그저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적용하고 대처하며 운명을 변주한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이야말로 노래이며 이런 재난의 시대에 우리를 노래할 수 있게 한다. 과학의 노래를 들어야 한다. 누구보다 권력을 갖고 정책을 펴는 정부부터!

엄기호 사회학자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