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도발로 가는 절차를 밟는 듯하다. 분명한 점은, 북한이 도발로 가는 길에서 굉장히 저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느낌이다. 자, 셋을 셀 동안 네가 답하지 않으면 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센다. 하나, 둘, 둘의 반, 둘의 반의반, 반의반의 반. 최근 ‘중대한’ 실험이나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자위적 국방력 발전’ 메시지가 그렇다. 셋 뒤에 벌어질 일이 자신의 본뜻이라면 뭐 하러 반의반을 세고 있겠나. 반전의 여지는 있는가. 미국이 나서면 된다. 새로운 셈법을 내놓으라는 북한의 요구에 무조건 대화에 나서라고 하는 지금처럼 동문서답을 해서는 안 된다.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약속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친서로 답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이 상황에서 중국이 일부 제재 완화 카드를 던진 것은 의미가 있다. 중국은 최근 북한이 과거 1978년 12월 중국공산당 3중전회에서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노선을 천명했던 때에 버금가는 노선을 채택했다고 여긴다. 그래서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한 상응 조치인 일부 제재 완화만 해도 도발 가능성을 낮추고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쉽게 말해 중국은 일부 제재 완화를 해줘도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비핵화 약속을 깨뜨릴 우려는 없을 거라고 본다. 아이러니한 것은 중국의 이런 태도가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고강도 제재 원칙에 반하지만 동시에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이롭게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북한 노동자 송환 문제만 해도 중국은 이를 사실상 유예하면서 북한에 숨 쉴 공간을 주려는 것 같다. 중국의 노력은 긴장을 일부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풍선이 부풀 대로 부풀어오른 그 끝에 피식 조금 바람을 빼면서 결국 터지는 건 막는다고나 할까. (중국과 달리) 미국은 여전히 더 강한 제재가 답이라고 보는 듯하다. 우리 안의 보수 진영도 마찬가지다. 그건 북한의 현실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고강도 제재로 (미국 뜻대로) 북한이 변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2~3년 동안 국가전략을 군사 우선에서 경제건설 중심으로 돌아선 다음, (대외) 개방은 문을 열어놓고도 국제사회의 제재로 효과를 보지 못한 게 맞다. 하지만 (대내) 개혁은 북 나름의 발전 동력을 얻었다. 고강도 제재 아래에서도 농업 분야만 보면 개별 농민이 생산과 분배 단위가 되는 호전담당책임제 등을 통해 최소한의 완만한 성장을 이뤘다. 삼시세끼 굶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북한에서 내놓은 자력갱생이란 말은 이런 현실에 기반했다. 북 자력갱생 가능… 강한 제재 안 통해 북한은 다가올 고강도 제재를 견딜 만큼 준비가 돼 있다는 건가. 분명한 사실은 그것의 가능 여부를 넘어 그 자체가 (개방보다)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북한도 그걸 잘 안다. 북한은 지난 2년이 경제 도약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핵을 포기하는 건 또 다른 생존의 문제였다.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리비아 사례(정권 붕괴)에서 봤다. 발전이 아닌 생존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북한의 준비는 상당한 수준이다. 최근 공개된 모습을 보면 사회적·사상적으로 준비하는 듯하다. 사회가 단결을 강조하면서 지도자 중심으로 가다보니 과거회귀적인 모습이 보인다. 이는 연말연초에 있을지 모르는 ‘조치’를 염두에 둔 듯하다. 이때 우리가 중재자 역할을 잃어버린 것은 안타깝다. 2018년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제대로 운전하지 못하면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요구를 받을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사실 ‘중재자다’ ‘운전자다’ 말 자체가 필요 없다. 우리 땅에서 벌어질 수 있는 비극이다. 우리 운명과 관련된 문제다.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미국을 향해 북한이 요구한 셈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중국과 러시아가 제시한 일부 제재 완화 결의안을 미국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이제는 공개적인 의사표시가 필요한 상황이다. 물론 물밑에서 논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긴박한 상황에선 강대국과 약소국이 밀실에 들어가면 논의가 약소국에 불리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공개적으로 말하면 미국은 싫어할 것이다, 왜 그런 걸 공개하냐고. 아무리 기울어진 국제정치 질서라도 공개적인 의사표시로 국제적인 공감대를 얻고 상대를 설득할 모멘텀을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한계는 분명해 보인다. 지금 상황이 파국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우리 모두 생각하고 있지 않나.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움직여 파열음을 내야 한다.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한반도에 위기가 닥쳐올지 모르는데. 중·러가 던진 일부 제재 완화 결의안과 미국이 생각하는 어떤 수준, 그리고 북한이 원하는 내용 그 어디에서 절충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북한이 셋을 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전 장관은 2004년 있었던 이라크 추가 파병 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으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이라크 추가파병안(자이툰 부대)을 만든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라크와 호르무즈해협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라크 파병 때를 떠올리며 “노무현 대통령도 정의의 전쟁은 아니라고 생각한 만큼 파병을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당시는 한반도 ‘평화’를 얻기 위해 선택한 고육지책이었다”고 했다. 이라크 파병과 달리, 이 전 장관은 호르무즈해협 파병에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라크 파병과 비교할 때 호르무즈해협 파병 문제는 명분과 실리 모두 우리가 손에 쥘 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우리 논리로 명확한 반대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재한 가운데 제7기 제3차 확대회의를 열고 국방력 강화에 대해 논의했다고 12월22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